야구팬을 쇼핑팬으로… 정용진의 경영 승부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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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의 ‘유통 월드’ 야구장도 품은 이유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SK 와이번스 야구단 인수를 주도한 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하는 미래 소비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가에서는 정 부회장이 기존 오프라인 매장에 문화사업을 더한 ‘리테일 엔터테인먼트’ 구상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위험 요인이 여전하고 그룹 전반의 비용이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의 큰 틀을 바꾸는 정 부회장의 도전에 대해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 야구장-스타필드-이마트로 고객 잡아두기

이마트는 26일 SK 와이번스 지분과 야구연습장 등 부동산을 1353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SK텔레콤과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기업의 스포츠단 운영이 주로 마케팅이나 사회공헌 차원에서 이뤄졌다면 신세계의 야구단 인수는 철저히 고객 가치를 높이고 비즈니스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를 정 부회장이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소비자 경험 점유’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기존 유통 네트워크에 야구장이라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연결해 ‘고객의 시간’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평일 근무 후 금요일 오후는 야구장, 토요일은 스타필드, 일요일은 이마트에서 고객이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식의 구상이다.

실제 신세계그룹은 야구장을 다양한 서비스가 모여 있는 ‘라이프스타일 센터’로 바꿀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일본 프로야구단인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안방구장처럼 쇼핑은 물론이고 놀이, 숙박시설까지 갖춘 시설을 건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쇼핑 역시 경험을 위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여기는 MZ세대의 비중이 커지면서 콘텐츠와 충성 고객 확보가 중요해졌다”며 “야구단 멤버십 등을 통해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충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시험대 오른 정 부회장의 또 다른 도전

정 부회장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영자로 꼽힌다. 스타필드와 코스트코에 맞선 창고형 할인점 이마트트레이더스가 대표적 성공 사례다. 식품에서 외식사업 등으로 분야를 넓혀가는 자체브랜드(PB) ‘노브랜드’도 부침을 겪었지만 비교적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일본 ‘돈키호테’ 매장에서 착안한 잡화점 ‘삐에로쇼핑’을 포함한 전문점들은 가격과 상품 경쟁력이 부족해 연간 1000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내다 결국 사라졌다. 2017년 인수해 700억 원 넘게 투자한 주류업체 제주소주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SK 와이번스는 지난해 8억6000만 원의 순손실을 나타냈다. 하지만 신세계 측은 “유통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외에 야구단 운영만으로 흑자를 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인수에 대해 기대뿐만 아니라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코로나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데다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하면서 사업성 분석과 시장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 상임이사)는 “인수 규모가 제법 큰 이번 결정이 깜짝쇼처럼 일어난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며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특정인에 의해 즉흥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방증으로 보여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호텔 사업에 대한 증자와 테마파크, 스타필드 추가 건립에 이어 야구단까지 비용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위기를 공격적 투자 기회로 삼는 발상은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지나친 다각화가 불확실성을 높이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마트는 전 거래일보다 4.90% 내린 17만4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황태호 taeho@donga.com·사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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