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를 실현시키려면[임용한의 전쟁史]〈146〉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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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가 푸순을 점령하고, 명나라 세력을 요동에서 몰아내려고 하자 명은 전력을 기울여 누르하치를 공격했다. 참전을 요청받은 조선은 1만 명이 넘는 대병력을 파병한다. 1619년에 벌어진 사르후 전투에서 명의 대군이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만주를 상실하고, 결국은 멸망했다. 조선군은 유정이 지휘하는 동로군에 속해 전진했는데, 청군에 패해 유정은 아들과 함께 자살하고, 조선군의 절반 이상이 전사한다.

120근이나 되는 대도를 사용한 유정의 별명은 유대도였다. 임진왜란에도 참전했던 유정은 명나라에선 평이 제일 좋은 장수였다.

함양 출신의 의병장 정경운이 저술한 고대일록에는 그 지역에 시찰 왔던 유정을 만난 기록이 있다. 지역 유지들을 만난 유정은 전쟁으로 고통 받는 조선의 실정에 깊이 동정하고, 병사들이 약탈하거나 민간인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곤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아무리 엄하게 단속해도 내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불법이 발생할 것이다. 그걸 해결하려면 여러분이 신고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최대한 성실하게 처리하겠다.”

정경운은 유정을 좋게 평가했고, 이 말이 진심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누가 감히 신고할 수 있었을까. 유정의 군대가 함양에서 조직적인 약탈을 하거나 범죄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다만 기념품을 챙겨가는 좀도둑질, 우마 징발 등의 사건이 있었다. 정경운은 불평을 토로했지만 신고하지는 않았다.

리더가 아무리 선의를 갖고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선의가 실현되려면 정밀한 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호의로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도 있다. 리더는 선의라는 말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리더들이 선의를 남용한다. 선의를 내세워 감정에 호소하니 프레임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선한 리더에게 의존하지 않고 방법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선의#누르하치#푸순#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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