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논문만 집착하는 한국… ‘귀에 쏙’ 설명해줄 석학 드물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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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선 강연-연구 나눠… 지식전달의 중요성에도 비중
분야별 학자 육성 투트랙 전략
국내 대학, 논문비중 70%로 설정… 한국판 도킨스-하라리 출현 막아

국내 강연 시장이 커지면서 방송사들이 교양 강연 프로그램을 잇달아 편성하고, 수준 높은 강연에 대한 대중들의 수요도 늘고 있다. 그러나 실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강연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국내 학계에서 자신의 연구 내용을 대중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연구자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에선 리처드 도킨스나 마이클 샌델, 유발 하라리 등의 석학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내놓는 파워라이터이자 대중 강연자로도 명성이 높다. 지난해 11월 신간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를 출간한 하라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조망하는 국내 학회나 포럼들에 1순위로 초청되고 있다.

학계는 이런 차이가 지식시장 규모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출판·강연시장 규모가 큰 미국에선 학자들이 대중서와 강연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그만큼 크다는 것.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미국 출판시장 규모는 약 40조5000억 원으로, 우리나라(약 4조 원)의 10배가 넘는다. 일부 해외 석학의 국내 강연료는 수억 원대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A 교수는 “미국 석학들은 자신의 저서로 세계 각국에서 판매수익을 거두고 여기에 강연료까지 받는다”고 했다.

교수 양성 트랙의 차이도 영향이 크다. 미국 대학들은 교수 임용 시 연구전담과 강의전담으로 구분해 채용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전담 교수는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보다는 강의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반면 국내 대학들은 이렇게 이원화된 교수 양성 트랙이 없는 데다 교수 평가에서 논문 성과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학계에 따르면 국내 대규모 대학 중 상당수는 △SCI 혹은 SSCI급 저널에 발표한 논문 등재 건수 70% △수강생들로부터 받은 수업평가 20% △서적 발간 등 사회 공헌도 10% 정도의 비중으로 교수 평가를 한다. 아직 정년(테뉴어)을 보장받지 못한 소장학자들은 대중 학술서 발간이나 강연보다 논문 발표에 온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B 교수는 “일부 교수들은 논문 등재 건수에만 급급해 학문적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해외저널에까지 논문을 내고 있다”며 “이런 세태가 한국의 지식시장 발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자의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대중들의 지식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교수 양성 트랙이나 평가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학자의 대중서 발간과 강연은 일종의 사회공헌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C 교수는 “교수마다 특성에 맞춰 연구와 강의 중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학문 발전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일정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일군 시니어 교수들이 대중 강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연구 논문#한국#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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