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언니’로 남아달라는 응원에 경제난 버텼죠”

고양=이호재 기자 입력 2021-01-13 03:00수정 2021-01-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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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책방 주인장 김이듬 시인
3년간 운영기 담은 에세이집 출간
월세 못낼 만큼 어려워 책방 이전
책 사랑하는 이웃들 도움이 큰 힘
경기 고양시 ‘책방이듬’에서 12일 만난 김이듬 시인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분들이 책방에서 스트레스를 풀면 좋겠다”고 했다. 고양=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쏟아지는 눈발을 헤치고 한 남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머리에 얹힌 눈을 훌훌 털어내고 책을 구경한다. 그러다 익숙한 듯 구석에 있는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다른 이가 들어오더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창문 밖 쏟아지는 눈을 찍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12일 찾은 경기 고양시 ‘책방이듬’은 독립 책방보단 아지트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책방 주인이자 책방 운영기를 담은 에세이집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를 펴낸 김이듬 시인(52)은 지난해 10월 시집 ‘히스테리아’ 영역본으로 미국문학번역가협회가 주관하는 전미번역상을 국내 최초로 받은 중견 작가. 그가 책방을 연 건 유럽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10년여 전 독일 베를린에 머물다 책방과 사랑에 빠졌다. 책방 주인과 손님이 어울려 낭독회를 열고 토론을 하는 힘이 문학을 키웠다고 생각했다.

2017년 10월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인근에 처음 책방을 열었다. 그러나 시인이 사업가가 되는 건 쉽지 않았다. 눈 딱 감고 책을 많이 파는 일에 집중해야 했건만, 참가비 1만 원짜리 낭독회를 열고선 9000원짜리 시집과 3000원짜리 커피를 주니 남는 게 없었다. 손님이 없는 날 달력에 치던 동그라미가 50개가 넘어가자 울음이 터졌다. 누군가 “중고, 대형서점이 코앞인데 장사가 되겠느냐”고 했다.

“한국에서 하면 잘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책 팔아선 월세도 안 나오더라고요.”(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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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한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 샤워한 뒤 하수구가 막힌 것을 발견했다. 머리카락이 잔뜩 끼어있었다. 머리를 숙이니 정수리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있었다.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랐다. 부모님을 만나러 가선 모자를 절대 벗지 않았다.

그럼에도 버틴 건 이웃 때문이었다. 뜨끈뜨끈한 삼계탕을 포장해 온 단골, 오는 길에 샀다며 사과를 주고 가는 손님. 깜짝 놀라 “왜 이러세요?”라고 되물었지만 이웃은 다가왔다. 이혼 도장을 찍은 날 책방에 와서 책을 고르다 간 한 손님을 그는 잊지 못한다. 강의와 책 판매로 번 돈으로 어찌어찌 책방을 유지한 건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 때문이다.

재정적 어려움은 계속됐다. 결국 월세를 포함해 200만 원이던 고정비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지난해 11월 고양시 대화동의 주택가로 책방을 옮겼다. 창고 매물이었던 이곳을 책방으로 바꾼 것도 이웃이었다. 이웃은 전기배선 공사를 해주고, 커다란 식탁을 용달차에 싣고 왔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는 서정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책방을 키운 건 팔할이 이웃’이에요. 건강한 ‘책방 언니’로만 남아달라고 하더라고요.”

3년의 암흑기를 버티며 기른 문학의 힘 때문일까. 이사한 뒤, 하루에 수십 권이 팔릴 정도로 조금씩 매출이 늘고 있다. 뜻밖에도 그는 손님이 자신의 책방보다는 동네 책방에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멀리서 찾아오지 마시고 가까운 책방부터 걸어가 주세요. 동네마다 책방이 자리 잡고 살아 숨쉬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고양=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독립책방#경제난#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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