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캡틴마블 넘는 매력…웹버전 ‘냉소월’을 만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7일 15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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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넘나드는 리메이크 중 이처럼 신선한 시도가 있었을까. ‘아 뉴스데이’ ‘굿바이 미스터 블랙’ ‘레드문’ 등을 그린 ‘순정만화의 대모’ 황미나 작가(59)의 1991년 만화가 무협 소설계에서 가장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진산 작가(51)의 손에서 재탄생했다. 22일 카카오페이지에 공개된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 ‘취접냉월’이다. 웹툰과 웹소설이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 된 경우는 많았지만 2권의 만화책으로 출시된 작품이 소설책 5권, 웹소설 125화 분량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작업은 카카오페이지는 물론 업력 30년에 가까운 베테랑 진 작가에게도 첫 도전이었다.



취접냉월의 웹소설화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떻게?’라는 세 글자가 먼저 떠올랐다는 진 작가와 황 작가 두 사람을 14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취접냉월은 출시 당시부터 순정만화에 무협을 접목한 파격이었다. 순정만화를 연재하던 잡지 ‘르네상스’에 정통 순정만화가 아닌 무협 순정만화가 처음으로 실렸다. 유년시절 언니와 오빠가 읽던 무협소설을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무협이 내 몸의 기본기로 자리 잡았다”는 황 작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를 두건으로 가리고 ‘살수무정’(살수는 정을 가져선 안 된다)의 자세로 검을 휘두르는 주인공 ‘냉소월’을 만들어냈다.

어렸을 적 부모가 죽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한 소월은 원수를 갚고자 무술을 연마해 강호 최고의 여살수로 거듭나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원수가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남자 ‘백운비’임을 알게 된 뒤 죽음을 택한다.

황미나 작가
황미나 작가


“‘여자들의 만화’였던 순정만화에 무협을 가미한 첫 시도였어요. ‘여성들은 싸우는 장면이 들어가면 안 본다’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었지만 순정만화의 확장을 위해선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무협은 무술 자체에 집중했다면 취접냉월은 상대에게 칼을 한 번 휘두르더라도 그 안에 감정이 들어가도록 해 차별화를 꾀했죠.” (황미나 작가)

진 작가는 처음 리메이크를 제안 받았을 땐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했지만 “황미나의 무협 순정을 다시 세상에 선보일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고 1년에 걸쳐 리메이크를 진행했다. 웹소설은 원작과 비교해 세계관은 확장됐고 등장인물은 다양해졌다. 원작은 냉소월과 백운비 두 가문의 갈등에 집중했다면 웹소설에서는 강호 전체가 수십 년에 걸쳐 엮이는 음모가 등장한다. 조연의 역할도 강화됐다.

진산 작가
진산 작가


“원작이 주인공에 집중했다면 웹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인간상, 그들과 주인공이 만드는 풍부한 인간관계를 조망했어요. 원작에 없던 조연 캐릭터가 생기기도 했고, 극 초반까지 등장했던 조연 캐릭터가 끝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죠. 과거 무협에선 영웅이 홀로 싸우고 고독하게 죽었다면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어벤저스’에도 다양한 히어로가 등장하듯 취접냉월에서도 다양한 조연의 이야기를 강화했습니다.”(진산 작가)

목표 달성을 위해 무술을 연마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냉소월은 여성 히어로의 대명사로 불리는 원더우먼이나 캡틴마블을 뛰어넘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냉소월은 여성 캐릭터가 곤경에 빠졌다가 남성에 의해 구조되거나, 남성의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치는 과거 히어로물의 문법에 완벽히 반대되는 인물이다. 냉소월의 주체성과 강인함은 황 작가가 만화를 그릴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임과 동시에 진 작가가 리메이크에서 반드시 지킬 원작의 기준으로 삼았던 점이다.

“냉소월은 잘 단련된 특수부대의 여성 킬러와 같은 인물이에요. ‘이렇게 독한 여성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정도죠. 원수를 갚겠다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고, 나약해 지면 사정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여요. 이는 최근 콘텐츠의 여자 주인공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해요. 원작에서 그려진 냉소월의 특징을 최대한 강조해 쓰려고 했습니다.”(진산 작가)

진 작가가 쓴 웹소설 취접냉월은 웹툰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카카오페이지가 만화를 웹소설로, 웹소설을 웹툰으로 두 단계에 거쳐 리메이크하는 첫 사례다.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 더 깊어진 세계관과 풍부해진 캐릭터들로 독자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묻히기 아까운 옛날 만화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림체나 대사가 옛날 스타일이라 구닥다리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훌륭하죠. 과거 만화들이 웹소설과 웹툰으로,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고 소비자들을 만나는 게 원작자가 가장 바라는 것 아닐까요. 작품의 생명력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니까요.”(황미나 작가)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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