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다가온 챔피언 꿈… “내 마지막 별명은 ‘우승택’될 것”

김배중 기자 입력 2020-10-24 03:00수정 2020-10-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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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기록의 사나이’ 박용택의 야구인생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팬 없는 경기장에서 은퇴할 줄 알았는데…. 더 힘이 나네요.” 13일부터 다시 ‘관중 있는’ 야구장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는 박용택(41·LG)은 연일 싱글벙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 시즌 대부분을 텅 빈 관중석을 바라보며 현역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었던 그였다. KBO리그 개인 통산 최다 안타와 최다 출전 경기 신기록을 경신 중인 데다 상대팀 선수들이 그와의 ‘마지막 경기’를 각별히 기념해줘 경기장에 훈기가 돌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가슴 한구석은 허전했다. 20년 가까이 응원해 주던 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20일 KT전에서는 좌타자에 약한 KT 선발 배제성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롯데전 이후 20일 만에 선발로 나서 팀의 4-3 승리에도 일조하며 활짝 웃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0년 야구를 시작해 휘문고, 고려대를 거쳐 프로에 이르기까지 30년을 꽉 채운 그의 마지막은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박용택이 6일 잠실 삼성전 9회말에 개인통산 2500번째 안타를 날리는 순간. 동아일보DB
○ 전무후무 ‘기록택’의 탄생


2002년 LG에 입단한 박용택은 올 시즌까지 줄곧 한 팀에서만 19시즌을 뛰며 23일 현재 2233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2, 2504안타, 213홈런, 1192타점, 1259득점을 기록 중이다. 이 중 출전 경기와 통산 안타는 새롭게 작성할 때마다 KBO 최다 기록도 갈아 치우고 있다. 현역 중 한화 김태균(38)이 2014경기, 2209안타로 그 뒤를 잇고 있었지만 최근 은퇴를 선언하며 박용택의 기록은 넘을 수 없게 됐다.

최근 KBO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젊고 실력 있는 선수들은 일정 기간 리그에서 활약한 뒤 메이저리그(MLB)나 일본프로야구(NPB) 등 큰 무대에 도전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박용택의 기록은 앞으로도 당분간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프로 19시즌 동안 LG 유니폼만 입은 박용택이 100경기 이상 출장, 100안타 이상을 달성하지 못한 시즌은 부상으로 신음했던 2008시즌(96경기, 86안타)과 선수 생활 말년인 2019시즌(64경기, 55안타), 2020시즌(88경기, 64안타)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즌에서는 꾸준히 좋은 기록 페이스를 유지했다.

8일 통산 2224경기에 출장하며 최다안타(2018년 6월 23일 롯데전)에 이어 최다 출전기록까지 갈아 치운 뒤 “기록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소감을 밝혔던 박용택은 “데뷔 당시에는 한 팀에서 부상 없이 오래 뛰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만 있었다. 사실 이런 기록들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며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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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이 ‘기록택’(기록+박용택의 합성어)으로 불릴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로 그는 ‘데뷔 후 이틀’을 꼽았다. “데뷔 날(2002년 4월 16일 SK전) 2루타로 통산 1호 안타를 신고한 뒤 1루타를 추가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첫 타석에서 볼넷으로 출루하고 이후 3루타와 홈런을 쳤죠. 데뷔 후 이틀에 걸쳐 ‘사이클링 히트’를 경험해 본 셈이에요(웃음). 출루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골고루 경험하니 야구가 재미있어지더군요. 많은 동기부여가 됐어요.”

김용달 타격코치(66·현 삼성 타격코치)를 스승으로 만난 것도 큰 힘이 됐다고 한다. 2007시즌 LG 타격코치로 부임한 김 코치는 교타자라기에 2% 부족했던 박용택을 붙잡고 약 2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씨름하며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양준혁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타자로 변모시켰다. 양준혁이 오랜 세월 갖고 있던 최다 안타 기록도 박용택에게 깨졌다.

박용택은 잔치가 끝난다는 말까지 듣는 30대에 접어들어 오히려 황금기를 누렸다. “20대까지는 잘할 것 같다가도 페이스가 처지고, 뜬금없이 잘하는 ‘계산이 잘 안 되는’ 선수였어요. 하지만 김 코치님을 만나고 3년째에 접어든 서른 살부터 야구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말처럼 데뷔 후 29세인 2008시즌까지 평균 타율이 0.279였던 박용택은 서른 살인 2009시즌 타율 0.372로 타격왕에 오른 뒤 2018년까지 10시즌 연속 3할 이상을 기록했다. KBO리그 역대 최장 3할 기록이다. 또한 2012시즌부터 2018시즌까지 7시즌 연속 150안타 이상을 때렸는데 이 역시 KBO리그 최장 기록이다. 30대 이후 박용택의 통산 평균 타율은 0.321로 오히려 20대 때보다 훨씬 좋다. 6일 삼성전에서 통산 2500안타 고지에 오른 박용택은 기록 달성 후 맞은편 더그아웃에 있던 자신의 ‘은인’과 대기록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했다.

“저도 주관이 강한 선수고, 코치님 또한 자기 철학이 확고하신 분이에요. 처음에는 선수, 코치 사이가 맞나 싶게 타격 방법을 두고 많이 부딪쳤죠. 보통 그렇게 되면 코치가 선수를 멀리하게 돼요. 하지만 코치님은 뒤끝이 없으셨어요. 한창 의견충돌을 빚었던 날에도 밤 12시 넘은 시간까지 토스 볼을 던져주셨고, 제가 궁금한 게 있어 늦은 시간에 불쑥 연락을 드려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제가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해 주셨어요. 코치님의 조언들이 제 몸에 녹아들며 2009시즌 타격왕에도 올랐고요. 그런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역사택’의 잊지 못할 순간들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은 박용택에게 현역 시절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2013년 10월 5일”이라고 답했다. 박용택은 신인이던 2002년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다. 당연히 가을무대 단골손님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LG는 이후 오랜 암흑기에 빠졌다. 2013년은 박용택이 30대 중반의 나이에 개인 통산 2번째이자 11년 만에 포스트시즌(PS)에 진출한 해다. 박용택은 “이미 최소 4위를 확정해 PS는 결정돼 있었다. 두산, 넥센(현 키움)과 치열하게 2위 싸움을 벌였는데, 그날 두산에 역전승(5-2)을 거두며 2위로 플레이오프(PO) 직행이 확정됐다. 정말 오랜 만에 좋은 성적을 거둬 (이)병규 형(현 LG 타격코치) 등과 부둥켜안고 울다 웃다 했다”고 회상했다.

박용택은 별명이 많다. 앞서 ‘기록택’처럼 두세 글자 단어 뒤에 그의 이름 끝 글자인 ‘택’만 붙이면 입에 착착 달라붙는 신조어가 만들어진다. 2013년 PO 확정 뒤 눈물을 보이자 ‘울보택’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경기 후 인터뷰를 하던 동료 선수에게 물을 뿌리는 장난을 친 뒤엔 ‘서든어택’이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선수 생활 말년에 각종 기록의 주인공이 되자 ‘기록택’ 외에도 ‘역사택’, ‘전설택’ 등이 추가됐다. 별명이 워낙 많아 ‘별명택’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을 묻자 주저 없이 “팬덕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014시즌이 끝난 뒤 두 번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박용택은 LG와 4년 50억 원의 대형 계약을 맺었다. 이후 “팬들께서 만들어주신 계약이다”라는 소감을 밝힌 후 이 같은 별명이 붙었다. 평소에도 ‘팬 덕택’이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삼고 팬을 대하고 있단다. 가장 익숙해진 별명은 안타를 못 치거나 찬스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 생긴 ‘찬물택’과, 반대로 잘 쳐서 팬들을 열광에 빠뜨려 얻은 ‘용암택’이란다.

“통산 타율이 약 3할이니까 매 경기마다 7(찬물택) 대 3(용암택)의 비율이었던 것 같네요. 절대 잊을 수가 없죠. 하하.”

○‘별명택’이 듣고 싶은 마지막 별명은


코로나19로 관중석은 썰렁하지만 시즌 순위 대결까지 식은 건 아니다. 오히려 시즌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가을야구 티켓을 잡기 위한 경쟁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2013년처럼 선두 싸움보다 2위 싸움이 치열하다. KT, LG, 두산, 키움 등 4팀이 벌이는 2위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백전노장 박용택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12일 NC전에서는 1-3으로 뒤지던 8회 대타로 나서 안타를 치며 역전 드라마의 발판을 마련했다. 9월 1일(SK전)과 3일(NC전)에는 각각 홈런을 쳤는데, 당시 팀이 5, 6연승을 하는 데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올 시즌 박용택의 타율은 0.304로 은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 10경기에서는 타율 0.333(12타수 4안타)으로 평균 이상이다. 그의 활약에 LG팬들은 “은퇴 선언을 번복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데뷔 후 한 팀에서만 뛰겠다는 소망을 이뤄 후회가 없다는 박용택이지만 아직 한국시리즈(KS) 우승반지가 하나도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이승엽(전 삼성·KS 우승 4회)과 달리 KS ‘우승 스펙’이 없어 시즌 막바지에는 박용택의 은퇴투어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용택 본인이 직접 나서 은퇴투어를 고사해 일단락됐지만 “KS 우승을 하고 헹가래를 받는 ‘우승투어’를 하고 싶다”는 속내는 숨기지 않았다. 올해가 아니면 다시없을 우승 꿈에 한발 다가서기 위해 박용택 스스로도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투혼을 다짐하고 있다.

박용택은 ‘우승택’이라는 별명과 함께하는 화려한 피날레를 꿈꾸고 있다. “‘우승하고 싶다’고 여기저기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후배들이 고맙게도 부담보다 의지를 가지고 똘똘 뭉쳐주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정규시즌 1위는 NC와 격차가 커 힘들어 보여요. 하지만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야 한다’는 각오로 나선다면 KS 우승이 못 오를 산은 아닐 겁니다.” LG가 2020시즌을 마감하는 날은 박용택이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날이 된다. ‘우승택’으로 남고 싶은 간절한 바람은 이뤄질까.

2009년 정규시즌 시상식에서 수위타자상을 수상한 박용택.
박용택의 야구 인생 30년

●1990년 서울 고명초 5학년 때 야구 시작
●1992∼1997년 서울 휘문중고에서 선수 생활
●1998년 프로야구 고졸 우선 지명으로 LG에 지명
●1998∼2001년 고려대에서 선수 생활
●2002년 4월 16일 SK와의 문학 경기에서 프로 데뷔
●2005년 KBO리그 도루왕·득점왕
●2009년 KBO리그 타격왕
●2016년 8월 11일 NC와의 잠실 경기에서 역대 6번째 2000안타
●2018년 개인 통산 7번째(2003∼05, 2011∼13년) 올스타 베스트12 선정
●2020년 10월 6일 삼성과의 잠실경기에서 역대 첫 2500안타
●2020년 10월 8일 삼성과의 잠실 경기에서 최다 출장(2224경기) 기록
●통산 기록: 2232경기 타율 0.308(8136타수 2504안타) 213홈런 1192타점 312도루 792볼넷 18실책(23일 현재)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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