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오염수 방류 밀어붙이는 스가… 日서도 “안전 못믿어” 우려[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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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방류 조짐에 불안한 지구촌

일본 정부가 이르면 27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발생한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는 방침을 공식 확정한다. 현재 기술로 오염수 내 유해물질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가운데 후쿠시마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의 주민과 지방자치단체들도 바다 방류를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TBS방송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올해 4∼7월 이 문제에 관한 국민 의견을 받은 내용 406건을 분석했더니 해양 방류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74%에 달했다. ‘찬성’은 8%에 그쳤다. 자국 내에서조차 충분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왜 일본은 해양 방출을 밀어붙일까.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퇴임으로 전임자의 잔여 임기인 내년 9월까지 총리를 맡게 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반영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하는 총리’의 모습을 보여줘 정치인으로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쌓으려는 속내가 담겼다는 의미다.

○ 9년간 외면한 시한폭탄


후쿠시마 오염수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하면서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장치에 문제가 생겨 핵연료가 고열에 녹아 버렸다. 부서진 원전 건물 안으로 빗물과 지하수가 유입돼 매일 170∼180t의 오염수가 발생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은 이 오염수를 ‘다핵종(多核種) 제거설비(ALPS)’란 장치로 여과시킨 후 대형 탱크에 담아 원전 부지 안에 보관하고 있다. 9월 기준 저장량은 총 123만 t. 현재 속도라면 2022년 10월경 포화 수준인 137만 t에 다다른다.

주무 부처인 경제산업성은 2016년 11월부터 처리 방안을 논의해 왔다. 올해 2월 산하 전문가 소위원회가 해양 방출, 대기 방출(끓여서 증발)이란 두 개의 안을 권고했고 기술적으로 손쉬운 해양 방출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달았다. 정부 역시 해양 방출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16일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경제산업상이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다”며 이달 중 공식 발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이 해양 방출을 서두르는 표면적 이유는 ‘물리적, 시간적 한계’다. 탱크 포화까지 2년이 남아있지만 방출을 위한 각종 설비를 마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이달 중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저장탱크 증설을 주장하나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폐로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오염수 탱크를 추가로 들여놓으면 폐로에 따른 원전 폐기물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져 2041∼2051년으로 예정된 폐로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 ‘스승 아들’을 주무 장관으로 유임시킨 스가


지난달 16일 취임한 스가 총리가 내각과 집권 자민당의 주요 인사를 교체했지만 경제산업성 수장을 유임시킨 후 오염수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지야마 경산상은 스가 총리 본인이 수차례 정치 스승으로 꼽은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1926∼2000) 전 관방장관의 장남이다.

스가 총리는 2013년 아베 내각의 관방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스승의 묘소를 찾았다. 지난달 총리 취임 연설에서도 스승을 언급했고 가지야마 경산상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즉, 가지야마의 유임은 스가 총리가 그만큼 오염수 처리를 중대한 문제로 여기고 있으며,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에게 관련 업무를 맡기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스가 총리는 취임 후 줄곧 ‘국민을 위해 일하는 내각’이란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국민에게 인기가 없는 원전 정책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오염수 처리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스가 총리가 이 난제를 해결하면 일각에서 제기했던 ‘아베 아바타’ 꼬리표를 떼고 독자 치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역시 해양 방출 공식화 추진 배후에 현안을 조기에 처리하려는 목적이 깔렸다고 진단했다.

○ 유해 물질 거르지 못할 가능성


문제는 바다 방류의 위험성이다. 도쿄전력은 ALPS 과정을 거치면 삼중수소(三重水素·트리튬)를 제외한 세슘, 스트론튬 등 기타 방사성물질은 걸러진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하지만 마이니치신문은 “6월 말 기준 ALPS 과정을 거친 물 110만 t 중 정부의 방출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27%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방출 기준치의 100∼2만 배에 달하는 오염수가 6%에 달했다.

고토 시노부(後藤忍) 후쿠시마대 교수는 19일 “ALPS를 두 번 거쳐도 방사성물질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정부 주장대로 정말 문제가 없다면 후쿠시마 앞바다가 아니라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만에 방류하라”고 질타했다.

ALPS로 거를 수 없는 삼중수소도 문제다. 삼중수소는 수소, 중수소와 양자 수가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달라 방사성을 띤다. 물 분자보다 크기가 훨씬 작아 물리적으로 걸러내기 어렵고, 물과 분자 구조가 비슷해 화학적 분리 또한 어렵다. 환경 전문가들은 “발암물질인 삼중수소를 한 곳에 모아뒀다가 방류하는 일은 위험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 측은 “삼중수소는 정상적인 원전 가동으로도 배출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올해 5월 후쿠시마 관련 정부 보고서에도 ‘한국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도 연간 140조 Bq(베크렐·방사성물질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의 삼중수소가 배출된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원전 폭발로 발생한 삼중수소와 정상 가동된 원전에서 배출되는 삼중수소를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 안팎에서 거센 반대 여론


생계에 직접적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후쿠시마 주민 및 어업단체의 반발은 더 거세다. 후쿠시마 인근 바다에서는 올해 2월부터 전 어종의 조업이 가능해졌다. 사고 후 줄곧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현지 어민들은 내년 4월 본격적으로 조업을 재개할 예정이었다.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이런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소문에 의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어업협회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청하며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났고,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한다면 나도 한국 생선을 먹지 않겠다. 해양 방류는 어민 생계에 큰 타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후쿠시마와 인접한 미야기현의 무라이 요시히로(村井嘉浩) 지사 역시 19일 “정부가 아무 정보를 주지 않았다. 갑자기 보도가 나와 매우 당황스럽다”며 “후쿠시마와 인근 현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전국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반발했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 우려도 상당하다. 일본 가나자와대와 후쿠시마대는 2018년 국제학술지 ‘해양과학’에 후쿠시마 오염수가 동해로 유입되기까지 1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란 논문을 실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최근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의 영상 자료를 분석한 결과 극미량의 세슘이 방출 한 달 만에 제주도와 서해에 도달한다고 밝혔다. 이웃 국가가 민감해할 수밖에 없다.

한국 외교부는 16일 “국제사회와 공조해 대처하겠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역시 19일 “주변국과 충분히 협의해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바란다”고 우려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오염수 처리를 서둘러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고토 교수는 “원전 폐로 일정을 미루고 저장탱크를 더 지어 오염수를 장기 보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장탱크에 오염수를 넣으면 100년을 보관할 수 있고 이 긴 시간 동안 반감기를 거쳐 방사선량이 대폭 감소하므로 이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의미다. 일본 민간 싱크탱크인 원자력자료연구실 역시 이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저팬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시민 대상의 설명회와 공청회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측이 주장하는 의견 수렴은 관변단체를 통한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 만큼 해양 방출 결정을 미루고 사회 각계의 폭넓은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권고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김범석 특파원
#일본#원전#오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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