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와 실패에 꺾이지마” 서로 보듬는 평범함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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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 ‘복자에게’로 돌아온 소설가 김금희

김금희 작가는 간결하고 정확한 디테일로 인물의 구체성을 생생히 획득한다. 그 비결에 대해 “누군가를 만나면 기력이 완전히 빠질 만큼 몰입하는 편이고 인상적인 장면을 잘 기억한다”고 했다. 블러썸 크리에이티브 제공
김금희 작가는 간결하고 정확한 디테일로 인물의 구체성을 생생히 획득한다. 그 비결에 대해 “누군가를 만나면 기력이 완전히 빠질 만큼 몰입하는 편이고 인상적인 장면을 잘 기억한다”고 했다. 블러썸 크리에이티브 제공
《‘코로나 블루’의 시기, 이 소설을 펼쳤을 때 만나게 되는 세계는 놀랍다.

제주 본섬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딴 고고리섬의 그림 같은 풍광뿐만이 아니라 아픈 사연을 업고 이곳에서 만난 두 소녀의 우정, 선의를 매개로 이어진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가 선연하게 펼쳐진다. 소설가 김금희(41)의 두 번째 장편 ‘복자에게’(문학동네·사진)는 제주를 배경으로 삶의 부조리 속에 쓰러진 이들이 서로를 일으키며 보듬는 포옹을 그려낸다.》

소설 읽는 즐거움을 더하는 건 배경과 인물이 튀어나올 듯 생생한 현장감이 있다는 점이다. 취재에 오래 공들이는 작가 덕분이다. 작가는 최근 e메일 인터뷰에서 “제주에 관한 장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등단할 때부터 했는데 2018년 제주에 머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취재하게 됐다”며 “그 공간에 놓여 있는 것만으로 어떤 이야기의 화소(話素)가 달라붙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덕에 제주 청보리밭, 향긋한 귤꽃, 선착장 풍경과 “게염지 좁안 방물 물엉들이듯 헤수다” 같은 능청스러운 제주방언까지 섬 생활의 디테일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주인공의 직업이 판사인 것은 이야기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 단짝이었지만 오해로 멀어진 복자를 그리워하는 주인공 이영초롱은 법을 몰라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속이 부글대는 당차고 의협심 강한 인물. 결국 불성실한 변호사에게 “엿까세요”라고 말한 사건을 계기로 제주로 발령받는다. 주변에선 “사법계의 이효리가 된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명백한 좌천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의료원의 산재(産災) 사건 피해자가 돼 힘겨운 소송 중인 복자를 재회하게 된다.

이런 설정은 법원에서 가졌던 강연회가 계기가 됐다. 그는 “질의응답 시간에 판사들이 직업의 애환을 자세히 토로했는데 약자들을 지켜봐야 하는 데서 오는 인간적인 괴로움에 대해 ‘화가 난다’라고 했던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인간적 고뇌가 깊으면 ‘그래, 화가 나는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이미 소설의 어떤 인물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법대생이 보는 소(小)법전과 수업 교재를 사서 읽으며 인물에 몰입하기도 했다.

이 작품엔 제주에서 실제 있었던 한 의료원 산재 사건과 판사 블랙리스트 파문, 민주화운동의 상처와 개발을 둘러싼 갈등 등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문제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갈등이나 문제 그 자체보다는 세상의 부조리와 실패에도 낙담하지 않고 서로를 일으키는 평범한 삶의 강인함에 머문다. 무거운 사건을 다룰 때도 특유의 위트와 산뜻한 문체가 균형을 잡는다.

소설 속 복자는 위안, 그리움, 연대의 존재이기도 하고 건강한 부채감과 책무의 대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복자라는 존재를 “어떤 상황에서도 실패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사람” “좋은 미래의 날들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암시해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풀이했다. 그에게 그런 복자는 “당연히 독자분들”이란다.

“경험한 적 없는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만 이렇게 해서 한번 강하게 삶의 방향을 바꿔보라는 세상의 요구인 것 같기도 해요. 이 시간들이 결국 우리를 더 나아지게 하리라 믿어요. 아주 간절히, 독자들의 안녕을 빕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복자에게#소설가#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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