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검게 탄 껍질 쓰윽 훑어내 드러난 속살 가위로 싹둑, 감칠맛 돋우는 ‘곰장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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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꼼장어주꾸미’의 산곰장어 소금구이. 석창인 박사 제공
‘강변꼼장어주꾸미’의 산곰장어 소금구이. 석창인 박사 제공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꼼장어가 맞는지 곰장어가 맞는지 많은 사람이 헷갈려 합니다. 표준말은 먹장어입니다. 일상적으로는 곰장어라고 하는데 대체로 꼼장어라고 발음합니다. 일본에서는 곰장어를 ‘장님장어’라며 메쿠라우나기(盲鰻)라 썼지만 장애인 비하 문제가 있어 ‘누타우나기’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누타는 점액을 뜻한다고 하네요. 곰장어는 피부 바깥의 수많은 누공으로 점액질을 분비해 먹잇감을 꼼짝 못하게 하거나 자신을 방어합니다. 우리말로 ‘곰’이나 ‘먹’은 ‘보이지 않다’ 혹은 ‘검다’라는 뜻이 있으니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뜻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곰이 꼼으로 더 불리는 것은 된소리가 발음하는 데 우세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소주를 ‘쏘주’로, 자장면을 ‘짜장면’(짜장면도 물론 표준말입니다)으로 부르는 게 편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발음해야만 그 맛이 떠오르거든요. 만약 ‘소주’라 부르면 인생의 고단함이 빠진, 알코올이 날아간 맹물만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곰장어를 먹기 시작했을까요? 6·25전쟁 전후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때부터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피혁제품을 만들기 위해 곰장어 껍질을 벗겨 일본으로 보냈는데 그 몸통을 처음에는 버리다가 양념에 발라 구워 팔기 시작한 곳이 부산 자갈치시장이라지요. 요즘은 국내산만으로는 부족해 해외에서 수입하는데 예전에는 일본에서 주로 들여왔습니다. 일본에서는 붕장어(아나고) 민물장어(우나기) 갯장어(하모)는 많이 즐기지만 곰장어를 많이 먹지는 않아 우리나라로 수출했다니 아이러니군요.

저는 대학 초년생 때 포장마차에서 처음 곰장어를 만났습니다. 처음 입에 넣을 때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해서 먼저 술을 한두 잔 마셔야 했지요. 얼핏 미꾸라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한데 실제 생물계통 분류상 어류에 속하지도 않는 일종의 화석생물입니다. 다른 장어 종류에서 볼 수 있는 턱도 없고, 빨판처럼 생긴 둥근 입이 특징이라 무악류(無顎類) 혹은 원구류(圓口類)로 분류되지요.

제가 경험한 가장 엽기적 음식 중에 부산 기장의 짚불곰장어가 있습니다. 가족과 같이 호기롭게 들어갔지만 정작 접시에는 검게 탄 뱀 혹은 썰지 않은 순대 같은 것이 올라 있어서 겁부터 살짝 났습니다. 아주머니가 목장갑을 낀 손으로 곰장어 껍질을 쓰윽 훑어내고는 드러난 속살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주시는 ‘몬도 카네’ 퍼포먼스에 다들 넋이 나갔지만 한 점을 맛보고 난 뒤에는 접시가 금방 비워졌습니다.

‘코로나 블루’를 이겨보고자 서울지하철 2호선 강변역 인근 산곰장어 집을 찾았습니다. 맛은 옛날 그대로인데 그 많던 손님은 다 어디로 갔는지….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곰장어처럼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고난의 시기를 잘 버텨야겠지요?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강변꼼장어주꾸미=서울 광진구 구의강변로 79. 산곰장어양념 4만6000원(2인분), 산곰장어소금구이 4만 원(2인분), 주꾸미양념 2만2000원.
#곰장어#먹장어#장님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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