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징계 없이 묻힐뻔한 ‘프랑스판 플로이드 사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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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업 종사 북아프리카 이민자, 1월에 교통규칙 위반 단속 걸려
경찰이 22초간 목 눌러 끝내 사망
가담 경관 4명 조사도 안 받아… 언론 제보뒤 이달에야 감찰 착수

올해 1월 3일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도로에서 경찰이 교통규칙을 위반했다며 아프리카계 이민자인 세드리크 슈비아 씨를 
진압하고 있다. 경찰이 목을 누르자 “숨을 못 쉬겠다”고 7번 외치다 의식을 잃은 그는 이틀 뒤 사망했다. 르몽드 홈페이지 캡처
올해 1월 3일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도로에서 경찰이 교통규칙을 위반했다며 아프리카계 이민자인 세드리크 슈비아 씨를 진압하고 있다. 경찰이 목을 누르자 “숨을 못 쉬겠다”고 7번 외치다 의식을 잃은 그는 이틀 뒤 사망했다. 르몽드 홈페이지 캡처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짓눌려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다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46)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프랑스에서도 벌어졌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찰의 과잉 진압 방식 폐지를 두고 프랑스 내 찬반 갈등이 커지고 있다.

24일 일간 르몽드 등에 따르면 북아프리카 이민가정 출신 세드리크 슈비아 씨(43)는 올 1월 3일 도로에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 배달업에 종사했던 그는 당시 오토바이를 타고 파리 에펠탑 인근 케브랑리 박물관 앞을 지나고 있었다. 경찰은 슈비아 씨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운전했고 식별이 불가능할 만큼 번호판이 더러운 점 등 교통규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다가섰다.

슈비아 씨가 “난 잘못한 게 없다. 친절하게 지시해라”라고 말하자 경찰관은 성적으로 모욕하며 맞받아쳤다. 슈비아 씨가 “경찰은 정부의 꼭두각시 인형”이라고 비난하면서 벌어진 실랑이는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경찰관 4명이 슈비아 씨를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목 뒷부분을 누르며 수갑을 채우려 했다. 슈비아 씨는 22초간 7차례나 “숨을 쉬기 어렵다”, “질식할 거 같다”고 외쳤다. 그럼에도 경찰은 멈추지 않았고 슈비아 씨는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었다. 의료진이 도착했을 때 슈비아 씨는 이미 혼수상태였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틀 후 사망했다. 부검 결과 외부 압력에 의한 질식과 후두부 골절로 판정됐다. 그는 5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그러나 4명의 경찰관은 이후 별다른 징계나 조사를 받지 않았다. 슈비아 씨 가족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경찰은 이달 17일에야 감찰을 시작했다. 이 사건의 전말은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이 프랑스 언론에 제보되면서 폭로됐다.

문제의 경찰관들은 “당시 ‘숨이 막힌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거칠게 저항해 정당방위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슈비아 씨가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운전했다는 경찰의 말과 달리 그의 오토바이에는 핸즈프리 장치가 부착돼 있는 등 경찰의 주장은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진압 방식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에는 아프리카 등 과거 식민지 국가에서 온 이민자가 많다. 경찰들은 백인에 비해 이들을 가혹하게 신문하거나 체포하는 경우가 잦다. 2016년 당시 24세 흑인 청년 아다마 트라오레가 파리 근교 보몽쉬르우아즈에서 체포되던 중 경찰에 가슴 부분을 짓눌려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비판이 커지자 프랑스 정부는 8일 “용의자의 목 부분을 눌러 체포하는 방식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찰노조 등에서 “테러나 강력범죄 대응이 어렵다”고 강하게 반발해 목 누르기 체포 방식 폐지는 유예된 상태다. 슈비아 씨의 딸 소피아 씨는 23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목을 눌러 제압하는 방식은 하루빨리 폐지돼야 한다”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책임을 지고 대책을 내놔라”고 촉구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프랑스#플로이드 사건#경찰 과잉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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