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판정후 모험의 인생… 또 하나 이뤘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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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 배현우씨 고졸검정 합격
초등 2학년때 근육장애 판정
자립센터 입소후 인터넷강의 집중
“누워서 눈으로만 문제 풀어… 계산해야하는 수학 가장 힘들더라”

중증장애인 배현우 씨가 지난달 23일 침상에 누워 ‘고졸 학력인정 검정고시’를 치르는 모습. 이동이 어려운 그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찾아가는 검정고시 서비스’를 제공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중증장애인 배현우 씨가 지난달 23일 침상에 누워 ‘고졸 학력인정 검정고시’를 치르는 모습. 이동이 어려운 그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찾아가는 검정고시 서비스’를 제공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장애 판정을 받은 날부터 제 인생은 언제나 모험이었어요. 오늘 또 하나를 이뤘네요.”

서울시교육청이 ‘2020년 제1회 검정고시 합격자’를 발표한 15일. 합격자 4138명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근육장애’라는 중증장애를 딛고 고졸 학력인정 검정고시에 붙은 배현우 씨(37)다. 인공호흡기를 단 채 대부분의 시간을 침상에 누워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 힘겹게 고졸 타이틀을 얻어낸 그를 15일 전화 인터뷰했다.

배 씨는 초등학교 2학년이던 8세에 장애 판정을 받았다. 또래보다 유난히 잘 넘어지고 다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부모가 병원에 데려갔다가 ‘근육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배 씨는 당시 의사가 “앞으로 악화될 일만 남았고, 호흡기까지 굳어지다가 20대엔 사망할 확률이 높다”고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그날 이후로 내 인생은 언제나 ‘남보다 늦은 첫 경험’으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남동생마저 같은 병을 앓았다. 형제를 간호하던 어머니의 건강도 점점 악화됐다. 경북 문경시에서 어머니의 간호 아래 살던 형제는 어느 날 장애인 친구로부터 “자립센터에 입소해서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고는 2015년 10월 서울의 ‘함께가자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초등 2학년 이후 학업이 끊겼던 배 씨는 인터넷 강의로 초졸 학력인증 검정고시 준비부터 시작했다. 4개월 남짓 공부해 합격했고, 이듬해 중졸 학력인증 검정고시도 붙었다. 올해는 세 달간 매일 5시간씩 집중적으로 공부한 끝에 고졸 학력인증 검정고시까지 통과했다. 특별히 올해는 다른 때보다는 편안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2018년 도입한 ‘찾아가는 검정고시 시험서비스’ 덕분이다. 고사장까지 이동하기 어려운 중증지체장애인 응시자 중 선정위원회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하고, 자택이나 본인이 이용 중인 복지관에서 시험을 진행하는 서비스다. 답을 말하면 감독관이 옮겨 적는 방식으로 문제를 푼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과목과 쉬운 과목을 묻자 각각 수학과 사회를 꼽았다. 꼼짝 없이 누워서 눈으로만 문제를 풀어야 하는 터라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수학은 난관이었다. 반면 사회 공부는 재미있고 적성에도 맞았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배 씨는 “어릴 적엔 20대에 죽을 병이라 했지만 그 사이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도 더 많이 생긴 덕분에 37세에 꿈을 이뤘다”며 “나와 같은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어린 학생들이 학업의 꿈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2020년 제1회 검정고시 합격자#중증장애 배현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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