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트로트 패션[간호섭의 패션 談談]〈38〉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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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요즘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트로트 가수들은 국민 스타가 됐습니다. 또한 그들이 입는 패션도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트로트 패션’은 트로트라는 음악 장르의 특성상 화려하고 과장된 의상들이 주를 이룹니다. 의상에는 스팽글이나 구슬같이 반짝이는 재료가 많이 쓰이고 옷감도 광이 나면서 몸의 실루엣을 잘 드러내는 실크 같은 소재가 인기입니다.

한 방송에서 인기 트로트 가수의 옷방을 공개했을 때 방송 출연자들 모두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놀랐죠. 화려함과 독특함에 놀랐고, 의상들의 가격에 놀랐고, 큰 방을 한가득 채운 옷의 가짓수에 놀랐습니다. 이 가수는 무대에서 직접 공연하는 횟수가 많다 보니 커다란 무대를 채워야 하는 화려한 의상들이 꼭 필요한데, 이런 화려한 의상들은 워낙 임팩트가 강하다 보니 두 번 이상 입을 수 없는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잘나가는 유명 트로트 가수들 중에는 금전적으로 넉넉지 않은 후배 가수들에게 무대 의상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 음악의 장르에 따른 패션은 늘 존재해 왔습니다. 헤비메탈이란 장르에는 검은 가죽 팬츠에 과감한 금속 장식들 그리고 컬이 풍성한 장발이 떠오르죠. 힙합 장르에는 머리에 두건을 두르거나 스냅백이라는 야구 모자를 쓰고 히프까지 내려오는 빅사이즈의 청바지가 대표적인 패션이죠. 아예 음악 장르의 명칭을 그대로 딴 패션 아이템도 많습니다. 히프는 펑퍼짐하다가도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바지는 일명 디스코 바지입니다. 디스코라는 음악 장르가 풍미했던 1980년대 히트한 패션 아이템이죠. 당연히 트로트 패션도 이에 빠질 수 없습니다.

화려한 프린트와 강렬한 색상의 의상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고 반짝이 소재의 액세서리들도 인기입니다. 이제 트로트의 팬층이 중장년뿐만 아니라 10대에서 20대로까지 넓어진 탓에 할머니의 장롱을 뒤져 복고 패션 아이템을 발굴해내는 젊은층도 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할머니 패션(Granny Look)’이 뉴욕이나 파리에서 인기 있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한국적인 복고 패션으로 탄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간 인기 있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젊은 세대를 주 시청자층으로 했습니다. 촉망받는 패션디자이너의 경합, 신인 패션모델의 선발 그리고 스타의 등용문인 아이돌의 경연 등이 대부분이었던 것에 반해 트로트 프로그램은 의외의 발상이었죠. 어찌 보면 우리는 그간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기성세대 내지는 부모님 세대를 간과했던 게 아닐까요. 은근 촌스럽다고 무시했던 한국의 농기구인 호미가 그 기능성에 감탄한 전 세계 소비자들로 인해 ‘아마존’에서 대박 행진을 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주변에 늘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진정성 있는 트로트 패션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세계 어디에선가 이미 한국적 복고 패션으로 유행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트로트 열풍#트로트 패션#복고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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