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처럼 못하지만” 80세 고령이면서도 마라톤 포기할 수 없는 이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기자 입력 2020-04-11 14:00수정 2021-01-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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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영 이건산업 고문(가운데)이 2003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을 완주한 뒤 기념메달을 걸고 포즈를 취했다. 장문영 고문 제공.

서울대 재학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던 장문영 (주)이건산업 고문(80)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달리기를 즐겼다. 해외 출장을 가서도 달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서 마라톤 붐이 일었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감히 마라톤대회 출전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2001년 4월 열린 제105회 보스턴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우승한 것을 지켜본 뒤 마라톤대회 출전이란 목표를 세웠다. 이봉주는 당시 ‘케냐 군단’의 10연패를 저지하며 1950년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3위를 휩쓴 뒤 한국선수론 51년 만에 정상에 우뚝 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장문영 이건산업 고문은 2004년 보스턴마라톤을 완주했다. 그에게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마라톤은 출전 자체가 목표이자 행복이었다. 장문영 고문 제공.

“이봉주가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하는 감격을 보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마라톤에 접근하자는 결심을 했다. 독일 외무장관 오슈카 피셔가 쓴 ‘나는 달린다’는 책을 읽으며 마라톤은 틈이 나는 대로 연습해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언젠가 꿈의 보스턴마라톤에도 출전하겠다는 결심도 했다. 그리고 출근 전 피트니스센터에서 5km를 달렸고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은 퇴근하며 서울 성산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 10km를 달리며 차근차근 준비했다.”

장 고문은 그해 가을 춘천마라톤에서 10km, 동아경주오픈마라톤에서 풀코스, 중앙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달리는 목표를 세웠다. 적은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1주일 간격으로 열리는 3개 대회를 모두 완주하는 것에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맹렬히 연습했고 결국 다 완주했다.

장문영 이건산업 고문이 2007년 도쿄마라톤에서 질주하고 있다. 장문영 고문 제공

“2001년 10월 28일은 내 생애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경북 경주에서 열린 동아경주오픈마라톤에서 처음 42.195km 풀코스에 도전했다. 공교롭게 결혼 32주년 기념일이라 아내와 함께 내려갔고 힘겨운 레이스 속에 4시간 29분 02초에 완주했다. 당시 쓴 수기가 대회 주최측 공모에 당선되는 영광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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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린다는 것과 마라톤 완주는 달랐다. 105리의 레이스를 완주하면서 얻는 신체적 정신적 성취감과 자신감은 삶의 큰 원동력이 됐다.

“달린다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반성하게 한다. 난 달리면서 생각을 많이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달릴 때 나온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창작의 근원이 달리기라고 했다. 또 풀코스를 완주하고자 하는 정신력, 완주로 얻은 자신감은 회사나 가정에서 큰 활력소로 작용했다.”

이 때부터 장 고문은 ‘마라톤 전도사’를 자처했다. 회사 내에 마라톤동호회도 만들어 대회 출전을 장려했다.

장문영 이건산업 고문이 2008년 보스턴마라톤을 완주한 뒤 기념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했다. 장문영 고문 제공.

“난 회사 직원들이나 인생 후배들에게 동아마라톤 등 유명 대회 참가는 1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마라톤의 경우 도로를 막아놓고 서울 도심을 달릴 기회를 언제 가질 수 있겠나? 마라톤을 완주하며 건강을 챙기는 것을 넘어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장 고문이 마라톤에 빠진 이유는 또 있다. 속칭 마라톤대회에선 ‘계급장’이 없고 마라톤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마라톤 대회 현장에서는 차별이 없다. 모두 평등해진다. 부자, 가난한 사람, 지휘고하에 상관없이 러닝 복장에 번호표를 달고 달릴 뿐이다. 출발 신호가 울리면 참가자 모두는 ‘완주’라를 한 가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다. 또 마라톤은 정직하다. 훈련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완주할 수 없다.”

장 고문은 2003년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57분 39초의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며 이듬해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했다. 보스턴마라톤은 참가자를 제한하기 위해 연령별 기록제한을 두고 있다. 그는 2007년 동아마라톤에서 4시간 8분 31초로 보스턴마라톤 65~69세 참가 기준을 통과해 이듬해 다시 출전했다.

장 고문은 2017년 3월 동아마라톤까지 42.195km 풀코스를 48회 완주했다. 그에게 대회 참가는 하나의 작은 목표였다. 동아마라톤과 보스턴마라톤 등 참가신청을 하는 순간부터 잘 준비해 완주하겠다는 목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훈련해 완주하면 목표가 완성된다.

“2009년 동아마라톤 때는 69세의 나이로 4시간40분 페이스메이커로 활약했다. 주위의 만류가 있었지만 더 열심히 준비했고 4시간 39분 26초로 임무를 완수했다. 그 나이에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아주 행복했다. 이렇게 계속 목표를 만들고 완수하며 살다보니 달리는 그 자체로 즐거웠다. 대회 출전할 때 최고의 목표는 연령대별 보스턴마라톤 출전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장문영 이건산업 고문(가운데)이 2012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을 완주한 뒤 지인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장문영 고문 제공.

장 고문은 2017년 이후 풀코스를 달리지 못하고 있다. 그해 동아마라톤에서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레이스를 펼친 뒤 지리산종주로 심기일전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부상을 당한 것이다. 병원을 찾았더니 오른쪽 다리에 족근관증후군(Tarsal Tunnel Syndrome)이란 판정을 받았다. 발 신경이 압박을 받는 질환이다. 수술까지 받았지만 불편했다. 그는 “의사들은 달려도 된다고 하는데 달리면 힘들다”고 했다.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2017년 동아마라톤에서 잠실대교를 지났는데 교통통제가 해제돼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 5시간 20분 만에 완주했는데 대회 주최측에서 완주증을 주지 않았다. 코스를 이탈했다고 했다. 그래서 체력적 정신적으로 무장을 하기 위해 지리산 종주에 나섰는데 역효과를 본 것이다. 지리산 종주는 3~4년에 한 번씩 하던 이벤트라 큰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장 고문은 당초 올 3월 동아마라톤 10km를 완주하고 가을에 하프, 내년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회가 취소되면서 무산됐다. 하지만 풀코스를 다시 한번 완주하겠다는 목표는 아직 유효하다. 지난해 10km 단축마라톤만 2회 완주한 그는 요즘은 한 달에 40만보를 걷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많이 걸을 땐 하루 최대 2만7000보, 주 5일 걸으니 하루 평균으론 1만8000보정도 된다.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나와 서래마을을 지나 한강공원으로 뚝섬까지 걷는다. 그는 “일단 걸으면서 다시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장문영 이건산업 고문(왼쪽에서 두 번째)이 2009년 동아마라톤에서 69세의 나이로 페이스메이커 자원봉사를 했다. 그는 마라톤완주라는 목표를 정한 뒤 체계적으로 훈련하며 심신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

“결국 욕심이 문제다. 달리다보면 오버페이스를 하는 게 문제다. 감기 등 몸이 좋지 않으면 대회 출전을 포기했지만 출발선에 선 뒤에는 포기한 적은 없었다. 내 성격상 더 잘 달리려 하다보니 고장이 난 것이다. 이젠 즐기며 달릴 생각이다.”

장 고문은 나이 듦의 설움을 몸소 느끼고 있다.

“나이가 먹으니 서글퍼진다. 과거와 같이 달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아직 젊어 보이지만 나이는 나이다. 이젠 5시간 이내 완주가 힘들다. 이젠 과거 같이 달릴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걷다가 1~2km 달려보지만 이젠 힘들다.”

하지만 장 고문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달릴 생각이다. 그는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론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몸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장 고문이 80세의 고령이면서도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원동력에 이런 확고한 목표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문영 이건산업 고문이 2014년 도쿄마라톤에서 질주하고 있다. 장문영 고문 제공.

목표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스포츠심리학적 관점에서 장 고문의 목표 설정은 큰 의미가 있다. 목표를 잘 세우면, 최선을 다한다는 집단에 비해 16% 정도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목표 설정은 세 가지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첫째, 목표에 집중하게 한다. 둘째, 어려움이 있어도 목표 달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셋째, 목표 달성을 위한 새로운 전략도 찾게 된다. 김 교수는 “목표를 세울 때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이유인 목적도 함께 찾아야 한다”며 “목적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고 사소해도 된다”고 강조한다. 장 고문의 경우 국내 최고 권위의 동아마라톤,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마라톤 완주를 통해 자기만족을 느끼는 게 목적일 수 있다.

장 고문의 사례에서 보듯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면 더 즐겁게 운동(스포츠)을 즐길 수 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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