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피가 모자라… 긴급한 수술 빼곤 미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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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로 생명 구합시다]
신종 코로나發 혈액부족 현실로… 병원 보유량 하루치 수준 바닥
“응급환자 다른병원 보내야할판”
헌혈 촉구에도 사태해결 감감… 환자가 직접 헌혈자 데려오기도

‘혈액 공급 중단.’

6일 오전 경북에 있는 A병원 의료진에게 아찔한 긴급 공지사항이 전달됐다. 공지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으로 인해 헌혈자가 감소해 혈액 수급이 악화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더 충격적이었다. ‘오늘 본원에서 주문한 혈액이 모두 취소돼 공급받을 수 있는 혈액이 없습니다.’

신종 코로나 여파로 헌혈 참여가 급감해 국내 혈액 보유량이 5일 위기 단계에 빠진 가운데 심각한 ‘혈액 공백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A병원이 속한 대구경북의 혈액 보유량은 1일분대로 떨어졌다.

A병원의 경우 이미 재고는 거의 소진됐다. 추가 주문마저 취소되면서 의료진은 향후 교통사고 등 수혈이 긴급한 응급 환자마저 받지 못하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공백 정도가 아니라 재난에 가까운 상황이다. 병원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로 인해 혈액 공급을 못 한다는 통보를 받은 건 처음”이라며 “재고마저 동나면 혈액이 필요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를 돌려보내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북의 B병원 역시 최근 혈액 보유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AB형이 심각하다. 병원 관계자는 “혈액 10건을 주문하면 겨우 2, 3건만 들어오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투석 환자나 응급 외상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걱정했다. 현재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은 비교적 사정이 나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평소에 비해 혈액 공급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이렇다 보니 환자가 직접 헌혈자를 데리고 오는 ‘지정헌혈’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10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이달 5일부터 나흘간 지정헌혈은 1806건에 이른다. 지난해 2월 전체 건수였던 2629건과 비교하면 하루 평균 5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주말인 8일 찾은 경기 고양시 헌혈의집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 이후 지정헌혈자가 크게 늘었다. 하루 방문자의 절반 이상”이라고 했다.

병원에선 긴급을 요하는 수술이 아니면 일정을 뒤로 조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의료진과 병원 직원들이 직접 헌혈에 나서기도 한다. 6일 서울에 있는 C병원도 다 함께 단체헌혈을 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혈액 수급에 문제가 생기자 지정헌혈이나 병원의 단체헌혈 등 자구책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와 대한적십자사가 헌혈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 효과는 미미하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미봉책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김현옥 연세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교실 교수는 “혈액 감소는 세계적 추세다. 특히 신종 코로나 같은 상황에선 헌혈이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의료기관의 혈액 소비를 조절하고, 혈액 보유 전문조직을 설립하는 등 정부가 중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혈액 부족#우한 폐렴#코로나 바이러스#수술#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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