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메르켈, 악수-볼키스 했지만… 본능적으로 차가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0일 03시 00분


獨-英-佛 정상 3인 ‘트럼프와 궁합’

“내 전임자(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는 일을 잘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곧 당신(독일)을 따라잡을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워싱턴에서 미독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 말에는 미국의 대독 무역적자가 큰 것을 강조하며 향후 관세를 포함한 통상 압박을 지속할 뜻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를 잇달아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7월 영국을 방문해 테리사 메이 총리와 만날 계획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15개월을 넘어가며 유럽 빅3 국가와 트럼프 대통령의 궁합에 서열이 정해지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궁합 서열은 독일-영국-프랑스였는데 트럼프 대통령과의 궁합 서열은 정반대로 프랑스-영국-독일 순으로 점차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주 메르켈 총리의 워싱턴 방문은 시작부터 굴욕이었다. 국빈방문 형태로 극진한 대접을 받은 마크롱 대통령이 떠난 지 불과 이틀 후 하루짜리 실무방문으로 워싱턴을 찾았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를 오바마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3월 메르켈 총리의 첫 워싱턴 방문 때 기자들 앞에서 악수를 하지 않아 결례 논란을 빚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는 웨스트윙 밖까지 마중 나와 메르켈 총리와 볼뽀뽀도 나눴다.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메르켈은 매우 비범한 여성”이라고 치켜세웠으나 영국 가디언은 “그들의 손짓과 몸동작은 본능적으로 차가웠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국내 정치 이슈를 독일과 비유해 메르켈 총리를 곤혹스럽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훈장관 후보로 임명됐던 주치의 로니 잭슨이 인사검증 과정에서 사퇴한 데 대해 “워싱턴은 아주 비열한 곳이다. 메르켈 총리는 그걸 몰랐지. 아주 형편없는 곳이야”라고 말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통역을 듣던 메르켈 총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어 “누군가가 우리 참전 군인을 나쁘게 대접하면 우리는 그들을 빠르게 해고할 수 있다. 독일에서 사람들을 빠르게 해고하는 것처럼”이라고 말하자 메르켈 총리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늘 불편한 만남이지만 메르켈 총리는 두 번이나 미국을 찾았고 언론 인터뷰 때마다 “우리와 함께할 파트너”라며 좋은 관계임을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번 방문에서 방위비 분담과 관세 압박을 줄이지 못했지만 “이는 전적으로 미국이 결정할 문제”라며 몸을 낮췄다.

마크롱 대통령에 이어 메르켈 총리까지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자 사설에서 “프랑스 리더가 미국 대통령과 일하는 방법을 보여줬다”며 메이 총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메이 총리는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먼저 만난 해외 정상이다. 당연히 영국 답방이 유럽 1순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 빅3 국가 중 마지막 방문국으로 밀렸다. 그나마 원래 추진했던 국빈방문이 아닌 하루짜리 실무방문 형태다. FT는 “메이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국빈방문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 눈치를 너무 보는 사이 스스로 미국에 자신의 말이 국내에서 통하지 않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주 미국 국빈방문 전 국내외 우려가 컸지만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 때는 ‘브로맨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진한 스킨십으로 친분을 쌓으면서도 의회 연설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FT는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그의 정책을 재고하도록 무리하게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친분을 쌓으면서도 동시에 본인의 정책 스탠스를 명확히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는 스타일도 본질도 매우 남성적이라 여성 대통령과의 궁합에 한계가 있다”며 “영국과 독일 정부 모두 허약한 연정에 의지하고 있는 국내 상황도 트럼프의 눈에는 지도자가 더 약해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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