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땀-바나나 냄새’ 맡는 능력, 인간이 ‘개 코’보다 낫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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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 뒤집는 인간의 후각능력

인간은 볶은 커피 향, 바나나·땀·양고기 냄새 등에 섞인 화학성분을 다른 동물보다 잘 맡는다. 냄새 성분에 따라 동물마다 인지 능력이 다른데, 이는 포식자의 분비물이나 주로 먹는 음식이 상했을 때 나는 냄새와도 관련이 있다. 위키미디어, pixabay, pexels 제공
인간은 볶은 커피 향, 바나나·땀·양고기 냄새 등에 섞인 화학성분을 다른 동물보다 잘 맡는다. 냄새 성분에 따라 동물마다 인지 능력이 다른데, 이는 포식자의 분비물이나 주로 먹는 음식이 상했을 때 나는 냄새와도 관련이 있다. 위키미디어, pixabay, pexels 제공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출근을 한다. 회사 근처 대형 커피숍을 지나는데, 고개가 카페 방향으로 자신도 모르게 돌아간다. 은은한 커피 향과 막 구운 빵 냄새다. 아침을 거르고 나온 B 씨는 코가 시키는 대로 카페로 들어가 커피와 빵을 사버렸다.

‘개’도 아닌데 어느 순간 ‘코’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는 인간이 생각 외로 ‘냄새’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보통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을 ‘개코’라고 부를 만큼 인간보단 동물이 냄새에 예민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인간의 후각이 동물 못지않게 발달했다는 예상을 뒤엎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인간의 후각이 약하다는 편견은 버려∼

인간이 쥐나 개, 원숭이 등 다른 포유류보다 냄새 맡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통념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1879년 프랑스 해부학자 폴 브로카는 인간이 다른 포유류보다 뇌 용량 대비 후각 담당 부위의 크기가 작다는 점을 발견했다. 인간의 뇌에서 후각신경구가 차지하는 부피는 0.01%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쥐는 뇌의 2%가량이 후각과 관련이 있었다. 브로카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포유류 중에서 지능이 높은 동물일수록 후각에 덜 의존하기 때문에 후각이 덜 발달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같은 통념은 후각 수용체 관련 유전자를 연구한 결과가 나오면서 더욱 강화됐다. 쥐와 개는 후각 수용체와 관련된 유전자가 1000개에 이르는 반면에 인간은 400개에 불과하다는 연구도 나왔다.

그런데 학술지 ‘사이언스’ 12일자에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후각이 떨어진다는 기존 상식을 반박하는 존 맥건 미국 럿거스대 심리학과 교수의 논문이 실렸다. 맥건 교수는 최근까지 나온 후각 관련 연구논문 101편을 종합적으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인간의 후각신경구에 있는 신경세포 수는 1000만 개로 쥐와 토끼, 원숭이 등 다른 포유류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맥건 교수는 “신경세포 수가 비슷하다는 것은 냄새를 인지하는 능력에 큰 차이가 없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인간이 몇몇 냄새는 다른 동물보다 잘 맡는다는 연구결과들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후각이 발달한 것으로 유명한 개보다 인간이 더 잘 맡는 냄새도 있다. 맥건 교수는 “후각의 절대적 능력이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 냄새 성분에 따라 동물마다 인지능력이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 사람은 ‘커피향’ ‘발냄새’ ‘바나나’에 강해∼

맥건 교수가 참조한 한 실험에서 인간은 볶은 커피 냄새에 섞인 ‘3-메르캅토-3-메틸부틸포메이트’를 쥐나 원숭이보다 더 잘 맡았다. 바나나 냄새의 주성분인 아세트산아밀을 인지하는 능력도 개나 토끼보다 나았다. 인간의 땀 냄새(발레르산)와 피 냄새, 양고기 냄새(카프릴산)에 섞인 화학성분도 쥐, 고슴도치, 원숭이, 개, 박쥐 등보다 잘 맡았다.

화학성분에 따라 해당 냄새를 가장 잘 맡는 동물이 달랐다. 고기 냄새나 마늘 냄새에 섞인 화학성분은 쥐가 가장 잘 맡았고 인간과 원숭이는 그보다 뒤떨어졌다. 식초 냄새에 섞인 화학성분은 쥐, 두더지, 인간, 개, 박쥐 순으로 잘 맡았다.

해당 실험을 주도한 스웨덴 린셰핑대 연구진은 “동물들은 자신의 포식자의 분비물에서 나는 냄새를 더 잘 맡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원숭이는 재규어 같은 고양잇과 동물의 오줌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주로 먹는 음식이 상했을 때 나는 냄새도 잘 맡는 것으로 나타났다.

맥건 교수는 “인간도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냄새 의존적이며 행동과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며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거나 동료를 선택할 때도 냄새가 생각보다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어떤 냄새에 특히 예민한지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자코’를 연구하는 권오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위해요소감지BNT연구단 선임연구원은 “후각은 냄새를 맡아본 경험, 즉 숙련도에 따라 인지능력에 큰 차이가 난다”며 “실험에 사용한 동물들의 숙련도가 일정하게 통제됐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개나 쥐가 인간보다 후각 수용체가 더 많기 때문에 맡을 수 있는 냄새의 종류가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지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here@donga.com
#인간의 후각능력#바나나#커피#땀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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