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Topic] 마라도나 vs 꼬라도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8일 0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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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의 종횡무진 시간기행 ⑥


S회장은 밀라노에서 열리는 공작기계박람회를 둘러보려 이탈리아에 왔다. 원래는 CTO(기술담당 대표)가 가기로 했으나 S회장의 부인 J여사가 하도 이탈리아를 자주 들먹이기에 ‘나도 이 참에 이탈리아 구경 한번 해보자!’며 서둘러 출장을 떠났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처럼 밀라노에 사는 MIT대학 동창생 볼타 박사도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잡았다. 건실한 기계업체를 경영하는 그는 ‘볼타 전지’를 발명한 알레산드로 볼타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무척 자부심을 가진 친구였다. 전압을 나타내는 볼트(Volt)는 ‘볼타’에서 유래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페르미 박사도 외가 혈통의 어르신이란다.

“꼬라도나! 오랜만이군. 2002년 월드컵 대회 때 서울에서 만났으니 14년이 되었군. 세월이 참 쏜살같이 빨리 흐르네.”
“볼타! 자네, 날렵한 몸매는 여전하군!”
‘꼬라도나’는 S회장의 별명이다. S회장이 전설적인 축구선수 마라도나처럼 땅땅하고 가슴이 두꺼운 체형인데다 축구 실력도 거의 프로급이어서 그렇게 불렸다. ‘꼬레아 + 마라도나’의 합성어다.

1993년 가을 ‘공과대학의 최고봉’이라는 미국 MIT에 유학 간 한국인 S청년은 영어가 달려 애를 먹었다. 기숙사 룸메이트인 이탈리아 청년 볼타도 영어가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다. 영어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축구만큼 좋은 운동이 없었다. S청년과 볼타는 모두 축구광이었다. 미국에서는 미식축구와 야구가 ‘국민 스포츠’였고 사커(축구)는 변방 종목이었다. 한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축구가 ‘국민 스포츠’ 아닌가. 두 청년은 축구 덕분에 의기투합했고 한국, 이탈리아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축구 동아리를 만들어 주말이면 잔디밭을 누볐다.

MIT, 하버드, 보스턴대학 등 보스턴지역의 유학생들끼리 한·이(伊) 축구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S청년은 한국팀의 주공격수, 볼타는 이탈리아팀의 최종 수비수여서 서로 몸을 부딪칠 때가 잦았다. 공중 볼을 차지하려 점프하다 S청년의 정수리가 볼타의 아래턱을 강타한 적도 있었다. 볼타는 학처럼 목이 긴 장신 체형이었다. 한국팀이 대체로 3번에 2번꼴로 이겼다. 승리요인은 S청년의 정교한 슈팅 덕분이었다.

S군이 고2 때의 일이다. 전국 4강에 드는 축구부가 있는 학교여서 운동장은 늘 축구선수들이 활개 치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하교하던 S군은 운동장에서 ‘대통령금배 고교축구대회’를 앞두고 맹연습하는 축구선수들이 눈에 띄자 문득 공을 차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렸다.

“야! 꼬마야! 공, 이리로 차!”
터치라인 밖으로 공이 날아가자 축구부원 누군가가 S군에게 이렇게 외쳤다. ‘꼬마’라고 불렸기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지만 발 앞에 공이 다가오자 그런 불쾌감도 잊고 공 중앙부를 정확하게 찼다. 논스톱 발리킥이었다.
“골인!”
라인 밖 사각지대에서 찬 공이 골문을 뚫다니! S군은 스스로도 놀랐다.

축구감독이 S군을 불러 킥 테스트를 했다. S군은 바나나킥, 오버헤드 킥, 캐넌 슛 등 다양한 킥의 마술을 선보였다. 감독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축구부 당장 들어와!”
감독과 코치는 S군의 어머니를 불러서 설득했다.
“소질이 보이니 축구 시키세요. 우승, 준우승하면 고대, 연대 입맛대로 갈 수 있습니다. 차범근, 허정무… 고대, 연대 출신이죠.”
어머니는 황소고집을 부리며 끝내 반대했다. S군의 아버지가 H은행 소속 축구선수였는데 아킬레스건을 다쳐 20대 중반에 은퇴하고 울화병으로 일찍 저 세상으로 간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감독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저희 아들 앞길을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공부로도 일류대학에 갈 수 있으니 염려 마세요. 지금 전교 1등이에요.”

S군은 어머니 기대 수준을 넘어서 S대학교 자연계 수석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과학 영재’ 출신답게 S군은 공을 찰 때 베르누이 정리, 마그누스 효과 등 물리학이론을 응용한다. 킥 순간에 강약, 방향을 컴퓨터처럼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계산해서 발 동작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킥 실력만큼은 웬만한 프로 선수를 뺨쳤다. 키는 작지만 탄탄한 하체를 바탕으로 한 서전트 점프력이 농구선수급이어서 제공권 다툼에서도 장신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90분 내내 뛸 수 있는 지구력은 갖추지 못해 후반전에서는 허덕거리는 게 큰 약점이었다.
S군은 대학에 들어가서 ‘총장배 쟁탈 축구대회’ 등 교내외 아마추어대회에서 군계일학의 기량을 발휘했다. 심심찮게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MVP로 뽑히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S청년이 유학 온 이듬해인 1994년에 들어서자 미국에서도 축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여름에 열리는 미국 월드컵 축구대회 덕분이었다. 언론에 축구 소식이 자주 보도되었고 동네 잔디밭에서 ‘사커’를 즐기는 청년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한·이 유학생 축구대회도 주말마다 벌어졌다.
S청년은 지구력을 늘리려 룸메이트 볼타와 함께 한동안 새벽마다 보스턴 시내를 달렸다. 장거리 달리기에서는 볼타가 훨씬 뛰어났다. 심폐기능이 뛰어난 볼타는 MIT 교내 육상대회에서 1만m, 5000m 종목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볼타는 내친 김에 1994년 4월에 열리는 보스턴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고 주말이면 장거리 달리기에 몰두했다. 그럴 때 S청년은 자전거를 타고 볼타 옆에서 달리며 보스턴 교외 풍경을 구경했다.

“꼬레아노(한국인)들은 마라톤도 잘 하는가봐?”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라는 선수가 금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땄지.”
“민계식… 꼬레아노 선수, 알아?”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선배인데… 자네가 어떻게 민 박사 이름을 기억하는가?”
“MIT 육상선수들에겐 신화적인 인물이야. 1만m, 5000m 교내 대회에서 불멸의 기록을 세웠어. 전문 선수급 기록이지!”

S청년은 민계식 박사가 ‘육상 천재’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렇게 유명한 줄은 몰랐다. 볼타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은 김에 민 박사에 대해 알아봤더니 과연 놀라운 인물이었다.
경기고, 서울대 조선공학과 졸업. 미국 MIT 공학박사. 1961년 9·28 서울 수복 기념 국제마라톤대회 7위 입상(2시간 23분 48초).
서울대회에 참가한 당시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인 아베베 선수는 1년 전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달려 우승해 ‘맨발의 아베베’라는 별명을 얻은 세계적인 스포츠 영웅이었다. 아베베는 1961년 서울대회에서도 2시간 17분 04초 기록으로 우승했고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민계식 청년은 서울대 공대 1학년생일 때 아베베와 같은 주로에서 달려 상위 입상한 것이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도 않은 아마추어 달림이가 그렇게 좋은 성적을 냈으니 전문육상인들도 깜짝 놀랐다.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돼 합숙훈련을 받으려다 아버지의 반대로 전문선수 길은 포기했다.
S청년은 자기도 전문 축구선수의 길로 갔으면 어느 수준에 도달했을까, 상념에 젖어봤다.

1994년 4월 어느 날 S청년은 여느 때처럼 자전거를 몰고 기숙사를 나왔다. 볼타가 달릴 보스턴 마라톤대회 코스를 미리 점검하는 훈련이었다. 이른바 ‘심장 파열 언덕’이라는 곳을 지나다 마라톤코스를 답사하는 황영조 선수를 만났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몬주익 언덕길을 힘차게 달려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건 영웅!
“꼭 우승하세요!”
S청년은 황영조 선수에게 이렇게 덕담을 건넸다. 케냐, 이디오피아 선수들이 세계의 유명 마라톤대회에서 상위 입상을 휩쓴 지 오래되었다. 보스턴대회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47년 대회에서 서윤복 선수가 우승했고 1950년 제54회 대회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1위(함기용), 2위(송길윤), 3위(최윤칠)를 ‘싹쓸이’했다.

1994년 4월 19일 열린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S청년은 보스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웰슬리 여자대학 앞에까지 가서 응원했다. 여대생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나와 응원한다는 풍문을 듣고 ‘눈요기’라도 할 겸해서 왔는데 과연 10여 명의 여학생이 그런 복장으로 나왔다. 그녀들은 ‘Kiss Me’ 따위의 글을 쓴 종이판을 흔들며 환호했다.

S청년은 선두그룹에서 달리는 황영조, 이봉주 선수를 발견하고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파이팅 황영조! 파이팅 이봉주!”
전문 선수들이 지나간 후 한참 뒤 아마추어 달림이들이 무더기로 몰려왔다. 볼타도 그 무리 속에 보였다. 이 대회에서 황영조 선수는 2시간 8분 9초라는 한국 최고기록을 세우며 4위로 들어왔다. 이봉주 선수는 11위(2시간 9분 7초)를 차지했다.
볼타의 기록은 2시간 59분 33초. 아마추어 마라토너로서는 3시간 이하의 대기록인 ‘썹(sub) 3’을 이룬 것이다.

볼타와 함께 완주 축하 점심을 보스턴시내 맥도널드에서 먹고 기숙사로 돌아온 S군은 관리인에게서 메모 쪽지를 건네받고는 부리나케 택시를 탔다. 공항 부근에 있는 힐튼호텔로 급히 오라는 내용이었다. 발신인은 미국 유학 장학금을 제공하는 J회장.

“고생 많제? 용돈은 안 모자라고?”
“회장님 덕분에 아무 불편 없이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우야튼동(어쨌든) 묵는 것도 잘 챙기(챙겨) 묵고!”
“예! 어쩐 일로 보스턴에 오셨습니까?”
“마라톤대회 후원 쪼매이 한다꼬… 한국에서 사업 하다 보모(보면) 이런저런 인연으로 서포처(스포츠) 돕는 일에 끼어들게 되능기라.”
“보람 있는 일이지요.”
“자네, 기말고사 운제(언제) 끝나노?”
“6월 22일입니다.”
“그라모(그러면) 잘 됐다!”

J회장은 6월에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도 후원한다고 했다. 그때는 도저히 미국에 올 짬을 내기 어렵다면서 한국팀 대(對) 독일팀 경기 관람권 2장을 꺼냈다.
“경기가 텍사스 달라스에서 6월 27일 열린다는데… 보스톤에서 엄청 먼 데 앙이가? 비행기 값을 줄낑게 머리 식힐 겸해서 구경하고 오시게.”
J회장은 두툼한 돈봉투를 S청년의 손에 쥐어주었다.
“회장님께 해드린 것도 없는데….”
“자네가 우리 딸내미 가정교사 할 때 마음고생 심하게 한 거, 다 안다. 그라고 에무아이티(MIT)에서 공부 마치고 우리 회사 들어와서 도와주모 될 거 앙이가?”

봉투에 든 돈은 100달러짜리 지폐 50장이었다. 유학생 용돈으로는 거액이었다. S청년은 J회장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 말이 귀에 내내 맴돌았다.
“코쟁이들한테 기죽지 말고! 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 가운데 똘똘한 놈들 보이모(보이면) 밥도 술도 팍팍 사멕여서 자네 사람으로 만들게. 이 친구들이 앞으로 세계 기술계 이끌어갈 인재 아잉가베?”

기숙사에 돌아와 은색 홀로그램 무늬가 번쩍이는 월드컵 입장권을 볼타에게 보여주었더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볼타? 이것 구경하러 댈러스에 갈까?”
“정말? 와우!”
기말고사가 끝나던 날 S청년과 볼타는 허름한 승용차를 빌려 머나먼 서부행 여행을 나섰다. 보스턴에서 텍사스주 댈러스까지 가는 데 이틀 반이 걸렸다. 운전은 교대로 했다. 숙박은 고속도로 인근의 ‘데이 인(Day Inn)’ 같은 대중 모텔에서 해결했다.
“이탈리아와 비교해 미국 생활에서 불편한 게 뭔가?”
“유럽에서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200㎞로 달려도 별 문제가 없어. 미국에서는 제한속도가 대체로 55마일이잖아. 88㎞? 이탈리아에 비하면 굼벵이 속도이지. 그리고 거리를 킬로 대신 마일로 표기하는 것도 생소해. 무게도 파운드, 온도는 화씨… 국제 표준과는 동떨어진 계량단위를 대명천지 미국에서 여전히 고집하고 있으니!”

댈러스 코튼보울 경기장에 들어서니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화씨(F) 온도를 섭씨(C)로 환산해보니 무려 42도다. 이런 폭염 속에서 축구 경기를 벌이다니! 하지만 관중석에 앉으니 그늘인데다 습도가 낮아 견딜 만했다. 그러나 얼음을 채운 큼직한 종이컵 콜라를 3잔이나 마셔도 목이 여전히 말랐다.

경기가 시작되자 한국팀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대회 우승팀 독일에 투지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의욕만으로는 실력차를 줄이기 어려워 전반전에만 3골을 내주고 말았다. 한국 응원단은 꽹과리와 징을 요란하게 두드렸으나 이렇게 무기력하게 뒤지자 응원 열기도 시들해졌다.
후반전 들어 독일 선수들은 체력이 고갈되었는지 수비에 급급했다. 한국팀은 죽기살기식 정신력으로 총반격에 나섰다. 황선홍 선수가 한 골 만회한데 이어 홍명보 선수가 여러 독일 수비수들을 젖히고 멋진 골을 성공시켰다. 후반전은 한국팀이 시종 우세했다. 한국은 2무 1패로 예선 탈락했지만 세계 최강팀을 상대로 선전했다는 점에서 찬사를 들었다.

S청년과 볼타는 그 후 ‘댈러스 추억’을 공유했다. 월드컵대회가 끝나자 미국에서는 축구 열기가 식었고 이들은 박사과정 수업을 따라가느라 축구를 즐길 시간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학위를 받고 귀국한 S박사는 2001년 4월 16일 볼타가 보낸 e메일을 받았다. 그해 제105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한 볼타의 글은 다음과 같았다.

42.195km의 풀코스를 달리는 동안 자네의 얼굴이 내내 내 눈앞에 어른거렸네. 마침 코레아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올해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2시간 9분 43초)해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자네는 상상도 못할 거네. 자네와 함께 MIT에서 뒹굴던 추억, 댈러스에 월드컵대회 보러 갔던 때가 요즘도 자주 머리에 떠오르지. 마침 2002년 월드컵이 서울에서 열린다 하니 그때 한국을 방문하겠네.

2002년 6월 18일 밤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S사장과 볼타 박사는 나란히 앉아 한국 대 이탈리아 경기를 관람했다. 이탈리아가 선제골을 유지해 경기는 곧 끝날 듯했다. 그 후반 43분 설기현 선수가 동점 골을 차 넣었다. 한국과 이탈리아가 월드컵 8강 진출을 놓고 맞붙은 그 대결에서 연장전에 안정환 선수의 멋진 헤딩골이 터지면서 한국이 2대1로 이겼다.

경기가 끝나자 볼타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께스따 에 라 비타(Questa è la vita)!”
S사장이 조심스럽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이것이 인생’이라는 뜻이란다. 환호했다가 금세 나락(奈落)으로 떨어지는 게 인생이라는 의미 아니겠는가.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16년 밀라노에서 해후한 S회장과 볼타 박사.
“요즘도 마라톤 하시나?”
“사업이 바빠 취미 삼아 조깅 정도만 한다네. 서울에서도 매년 3월 국제마라톤대회가 열린다며? 언젠가 나도 그 대회에 나가고 싶네. 자네는 축구 계속하는가?”
“한국에서는 조기 축구회라고 새벽에 축구하는 모임이 활발하다네. 나는 요즘도 꾸준히 운동하지.”
“꼬라도나 슈팅 위력은 여전하겠군?”
“요새는 다리에 힘이 빠져 볼을 정확하게 차지 못한다네. 모두 과거의 영광이지, 하하하!”
“자네가 온다기에 오늘 저녁 축구경기 입장권을 확보해놓았네. 인터밀란, SSC 나폴리 대결이야.”
S회장과 볼타 박사는 인터밀란 전용구장의 VIP룸에서 화려한 정찬을 먹으며 이탈리아 축구의 진수를 구경했다. S회장은 심정적으로는 마라도나가 활약한 나폴리팀을 응원했다. 그러나 인터밀란이 2 대 0으로 이겼다.

“자네, 나폴리팀의 본고장에 가서 응원해보지 않겠나? 며칠 후 나폴리팀이 AS로마와 한판 붙는데 자네와 함께 그곳에 구경 가고 싶은데.”
“좋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가보겠나.”
“마라도나도 그날 참관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자네와 마라도나가 만나도록 내가 주선해보겠네.”
“내가 마라도나 같은 축구영웅을 만날 자격이 있나?”
“무슨 소리야? 축구를 사랑하는 한국의 성공한 기업인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지. 그리고 두 사람이 체격이나 축구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인연이 있잖아.”
“나로서는 영광이지.”
“이왕이면 만남의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보세. 자네가 약간의 분장을 하는 게 좋겠네.”

S회장은 나폴리공항에서 내릴 때 볼타 박사가 건네준 마라도나 헤어스타일의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를 꼈다. 행인들이 S회장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산파올로 구장으로 들어가던 S회장은 주변의 입장객들이 지르는 환호성에 귀를 쫑긋 세웠다.
“마라도나!”
실제로 마라도나가 왔나 보다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입장객들의 환호성은 그치지 않았다.
“비바(Viva)! 마라도나!”
어느 육덕 좋은 젊은 여성이 S회장에게 다가오더니 잽싸게 포옹했다. 그녀는 S회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띠아모(사랑해요) 마라도나!”
S회장은 당황했다. 관중들이 S회장을 진짜 마라도나로 착각한 것 같았다.
구장에 들어서니 6만 관중의 엄청난 함성이 들렸다.
“리또르나(Ritorna, 돌아오라)! 마라도나!”
전광판을 보니 S회장의 모습이 비친다. S회장은 얼떨결에 두 손을 V자 모양으로 들고 흔들었다.
“와!”
환호성과 함께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고승철 소설가 songche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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