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Study]“청소 아닌 진드기 제거” 가전 블루오션 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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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청소기부문 판매1위 ‘레이캅코리아’의 시장공략 비결

이성진 레이캅코리아 대표는 “글로벌 가전 기업과 똑같이 경쟁해서 이기기는 힘들다. 그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게 레이캅코리아가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도 틈새시장을 만들고 확대시켜 1등을 하겠다”고 말했다. 레이캅코리아 제공
이성진 레이캅코리아 대표는 “글로벌 가전 기업과 똑같이 경쟁해서 이기기는 힘들다. 그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게 레이캅코리아가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도 틈새시장을 만들고 확대시켜 1등을 하겠다”고 말했다. 레이캅코리아 제공
글로벌 시장 가운데 가장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이 있다. 2013년 닛케이 트렌드의 ‘히트 상품 베스트 30’에서 한국 가전 업계 사상 가장 높은 순위인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침구 살균청소기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70%대, 판매 대수는 350만 대를 넘었다. 대표 제품 ‘레이캅 RS’는 21개월(2016년 1월 현재) 연속 일본 전체 청소기 부문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어떤 기업 이야기일까. 가전 분야의 강자인 삼성이나 LG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토종 중소기업 ‘레이캅코리아’ 이야기다. 레이캅코리아는 침구 살균청소기라는 새로운 제품으로 전체 청소기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일본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가전 기업들도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레이캅코리아가 선전한 비결이 무엇인지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취재했다. DBR 198호(4월 1호)에 실린 기사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웰빙가전’의 탄생

이성진 레이캅코리아 대표(46)는 한때 의사였다. 한림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 강동성심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밟았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알레르기 환자를 치료했다. 환자에게 추천할 만한 예방약과 치료제를 찾기 위해 자료를 찾아 보니 알레르기 환자의 80%는 모두 집 먼지가 원인이었다. 부친이 세운 자동차 부품 회사에 들어가 관련 사업을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업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들었다. 협력업체에 신제품 개발비를 먼저 보증금으로 모두 지불한 후에야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의사면허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가까스로 보증금을 충당했다. 그렇게 2006년 ‘침구 살균청소기’가 세상에 나왔다. ‘집을 깨끗하게 만드는 청소기’가 아니라 ‘건강한 삶에 도움을 주는 웰빙가전’이 핵심 콘셉트였다.

이름 없는 중소기업이 만든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홈쇼핑에서 염가로 팔기, 부녀회장 뚫기, 인터넷 판매 등 매출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대형 가전 브랜드와의 경쟁을 뚫고 실적을 올리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해외로 발길을 돌렸다.

○ 일본 진출


일본인들은 청결을 중시하는 데다 청소 관련 용품의 시장 규모도 컸다. 인터넷을 제외하고 양판점 청소기 시장 규모만 보더라도 약 2조 원에 이른다. 한국보다 10배 정도가 크다. 또 일본은 주기적으로 이불을 털어 말리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미세먼지로 대기오염이 심해지고, 고령화로 인해 노인들이 직접 무거운 이불을 말리는 것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 대표는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다.

침구를 청소해 주는 제품의 품질은 좋았지만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못하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소비자를 설득하기로 했다. 모든 홍보활동의 초점을 ‘계몽’에 맞추고 일을 진행했다. 침구 살균청소기가 가진 장점과 가치를 전달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소비자가 찾아오면 ‘의사가 개발한 제품이기 때문에 전문성이 있다’ ‘이를 통해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사용 후기는 이렇다’ 등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소비자 계몽 운동과 함께 이 대표가 주력했던 것은 주요 양판점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일본 주요 가전회사의 판촉 직원들이 손님이 많은 주말에만 매장에 나와 판촉 활동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양판점의 주인들은 손님도 많지 않고 판촉 사원도 나오지 않는 주중에 매출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착안해 이 대표는 주말 대신 주중에만 자사가 고용한 판촉 직원을 주요 양판점에 내보내기로 했다. 사람이 많은 주말에만 판촉 직원을 고용하는 기존 기업의 전략을 감안하면 얼핏 불합리한 것처럼 비치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계산이 숨어 있었다. 그는 주중에 판촉 사원을 내보내 줄 테니 자사 제품을 좋은 자리에 배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양판점주들은 이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침구 살균청소기는 일본 주요 양판점에서 청소기 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에 전시됐다. 결과는 생각보다 더 좋았다. 판매원들이 투입되는 주중에는 물론이고 고객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도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다.

침구 살균청소기가 대중화되면서 미투(Me-too) 제품들이 속속 출시됐지만 레이캅코리아는 지속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기존 청소기 제품과 달리 먼지를 모으는 상자를 키워 소비자들이 청소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도록 만들었다. 침구 표면의 유해 세균을 살균해 주는 기능도 추가했다. 2013년 일본 도쿄환경알레르기연구소의 실험에 따르면 레이캅코리아 제품은 침구 속 집먼지를 3분에 90% 이상 제거한다. 가전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집먼지진드기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도 다른 대형 가전 브랜드가 갖지 못한 레이캅코리아만의 장점이다.

○ 시사점 및 성공 요인 분석

레이캅코리아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 혁신과 시장 혁신이 같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집먼지진드기 연구소 설립과 같은 투자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에 대한 레이캅코리아의 노력을 반영한다. 하지만 기술 혁신이 반드시 더 높은 고객가치를 창출하는 건 아니다. 레이캅코리아는 ‘청소’라는 보편적 편익을 추구하기보다 이불 먼지 및 진드기 제거라는 구체적 편익에 집중함으로써 기존 청소기가 간과한 문제를 해결하는 시장 혁신을 이뤄냈다.

둘째, ‘관찰’의 중요성이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들 스스로도 어떤 제품, 어떤 기능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레이캅코리아는 일본 시장에 진입할 때 현지 소비자들이 어떤 청소기를 원하는지 묻기보다 일본의 기후, 가옥 구조, 주거문화, 사람들의 행동 등을 직접 관찰했다. 이를 통해 일본 소비자들의 잠재적 욕구를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셋째,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레이캅코리아가 강조한 판매 현장에서의 효과적인 정보 전달, 소비자 교육 등과 같은 노력은 혁신적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을 극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또 소비자와의 대화를 통해 ‘침구 살균청소기’ 대신 ‘이불 전용 진드기 클리너’라는 제품명을 사용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름을 통해 제품의 사용처와 기능을 명확히 드러내자 소비자들의 이해 수준이 높아졌다. 소비자가 제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이처럼 시장 중심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정지영 기자 jjy0166@donga.com
이종국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 jongkuk@ewha.ac.kr
#가전#블루오션#일본#진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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