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은 그냥 남겨두자” 서독 대타협의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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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1976년 정치인-교육자들 원칙 도출
① 학생들에게 특정 의견 주입 금지… ② 수업시간에 논쟁적으로 토론
③ 학생 개개인의 관심사항 중시

통일 전 서독에서 벌어졌던 역사 교과서 갈등 끝에 도출된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 갈등에 시사점을 준다.

1950∼60년대 냉전의 대결 분위기 속에서 서독의 우파는 좌파를 “지나치게 좌파적 내용을 교육에 집어넣었다”고 비판했고, 좌파는 우파를 “반공과 민족주의를 너무 강조해 민주주의 규범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념 전쟁 속에 정치적 갈등과 상호 비방이 심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1976년 독일의 소도시 보이텔스바흐에서 정치가, 연구자, 교육자들이 일주일간의 토론 끝에 민주시민교육·정치교육에 관한 3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이것이 바로 보이텔스바흐 합의다.

먼저 이 합의는 ‘학생들에게 강력한 영향력 행사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바람직한 의견을 전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특정 의견을 주입하거나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저해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정 의견을 주입하는 교육은 교사의 역할이 아니고, 학생들이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시민교육의 목표로 합당하다는 원칙이다.

두 번째는 ‘논쟁적인 주제는 논쟁적으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학문이나 정치적 문제에서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이를 가르치는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내용이다. 서로 다른 입장 중 일부를 숨겨두고 논의하지 않으면 결국 특정 의견을 주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 교사의 역할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 교사가 개인적 입장, 이론적 관점,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다면 그 반대 의견도 그만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학생 개개인의 관심을 중시한다’는 원칙이다. 학생들이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적인 행위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성택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장(철학과 교수)은 “이념적 대립은 얼핏 봐서는 화해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서독처럼 극복한 사례가 있다”며 “우리도 충분히 이념적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고, ‘논쟁은 논쟁으로 남겨두자’는 부분 등은 우리에게도 훌륭한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통일#독일#국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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