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대통령을 속이고 국민을 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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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10월 3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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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대국민 사기극 KFX 02]
국산화 호언장담 국과연의 무리수…방사청의 기묘한 사업추진은 ‘대통령 동기’ 청장 의식?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15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국방부 청사(펜타곤)를 방문해 공식 의장 행사(Full Honor Parade)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 출처 주간동아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15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국방부 청사(펜타곤)를 방문해 공식 의장 행사(Full Honor Parade)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 출처 주간동아

한국형전투기(KFX) 개발 사업이 혼선을 거듭하는 데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와 책임 회피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이 소망적 사고 밑에는 과욕이 죽은 듯 엎드려 있다. 욕심에 욕심을 덧칠해 소망을 키워놓자 ‘과연 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될 수 있을 거야’라는 아전인수식 기대만으로 밀어붙였지만, 미국이 4개 기술 이전 불가를 통보해 무리라는 것이 확인되자 일순간 붕괴해버렸다.

그로 인해 가장 크게 망신을 당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4개 기술은 미국이 그 어느 나라에게도 준 적 없는, ‘경찰국가 미국’을 보장하는 핵심인데 이를 달라고 했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7조3000여억 원을 들여 40대의 F-35를 사기로 했지만, 일본은 23조 원(추정)을 주고 4대를 직구매하고 38대를 조립생산하기로 했다. 그런 일본도 미국에 4개 기술을 달라고 요구하진 않았다.

한미동맹을 강조해 4개 기술을 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다면 박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말았어야 한다. 거꾸로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했으면 반파(反波)를 맞을 각오를 했어야 옳다. 그런데도 기술을 이전받으려 했으니 그야말로 소망적 사고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박 대통령에게 ‘미국에 가서 4개 기술을 달라는 부탁을 하라’는 의견을 낸 이가 누구냐는 점이다. 그런 참모야말로 대통령과 국가를 잘못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참모의 말을 믿고 따라간 대통령도 비판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관심 있는 이들에게 KFX 사업은 늘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여겨졌다. 너무 많은 욕심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KFX는 미국 기준으로는 저급(low) 전투기에 해당하는데 미국은 저급 전투기에는 1개 엔진을 넣는다. 같은 성능의 전투기를 만드는 데 작은 엔진 2개를 넣으면 큰 엔진 1개를 넣어 제작할 때보다 가격이 20~30% 비싸진다. 미국은 F-16을 현재 세대, F-35를 다음 세대용 저급 전투기로 분류하고, 이들 전투기에는 모두 큰 엔진 1개만 넣었다. 훨씬 더 큰 힘을 내야 하는 고급(high) 전투기에만 큰 엔진 2개를 넣는다. 현재 세대에서는 F-15가 대표적이고, 스텔스기가 보편화되는 다음 세대에서는 F-22가 그런 경우다.

육군에게 맡긴 ‘사상 최대 공군 사업’

미국이 저급 전투기에 큰 엔진 1개를 넣게 된 데는 엔진 기술이 발달해 사고율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배경이 있다. 미국 측 통계를 보면 1만 비행시간당 엔진사고로 인한 추락률은 단발기인 F-16이 쌍발기인 F-18보다 적다. 이러한 현실에도 한국 공군은 KFX 사업을 시작할 때 안전을 이유로 들면서 쌍발기 제작을 고집했다. 이를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가 수용해 같은 주장을 함으로써 KFX는 쌍발로 가닥을 잡았다.

국과연은 고등훈련기 T-50 개발 당시 배제당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T-50이 성공적으로 개발됐다는 사실은 국과연이 전투기 개발 분야에서 핵심 기관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T-50은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미국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개발해냈다. 이후 국과연은 쌍발을 주장하는 공군과 궤를 같이함으로써 KFX 사업을 따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공군에 접근할 당시 국과연은 지금 문제가 된 4개 기술을 국산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KFX를 쌍발로 개발하면 단발로 개발할 때보다 비용과 시간이 증가한다. 국민이 더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쌍발파’는 이러한 사실을 쉬쉬했다. KFX 사업비는 선진국이 동급 전투기를 개발할 때 들인 비용보다 적게 설정돼 있다. 따라서 사업 도중 개발비가 올라갈 공산이 매우 크지만 이 역시 ‘거론 금지’였다. 이렇듯 욕심에 욕심을 더했으니 KFX 사업은 불안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KFX 사업을 주관할 정부기관은 방위사업청(방사청)이다. 방사청이 KFX 사업에 착수할 무렵 박근혜 정부는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을 만들어 방산비리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올라갔으나, 방사청은 얼어붙었다. 그 결과가 기묘하기 짝이 없는 사업 추진 조직이었다. T-50의 경우 개발을 시작할 때는 KTX-2라고 불렀다. 이 무렵에는 방사청이 없었으므로 공군이 사업을 이끌었다. 공군은 소장을 책임자로 하는 KTX-2 사업단을 만들었고 참모총장이 직접 세부사항을 챙겼다.

KFX는 T-50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흔히 건국 이래 최대 사업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방사청장이 직접 챙기는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방사청장 아래 사업관리본부장, 그 본부장 밑에 한국형 항공기사업단을 만들었다. 이 사업단이 KFX만 담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개발이 완료돼 양산에 들어간 한국형 기동헬기(수리온)와 2조 원 정도의 개발비를 들이는 한국형 소형무장헬기(LAH) 사업을 함께 담당했다.

KFX 사업을 총괄하는 팀장은 대령급이다. 정부 편제로 이야기하면 과장급인 셈이다. 청장은 과장-단장-본부장이 결재한 다음에야 이 사업을 결재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한국형 기동헬기와 한국형 소형무장헬기 사업은 육군 사업으로, 두 사업을 모두 합쳐도 규모는 KFX 사업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이들 3개 사업을 총괄하는 한국형 항공기사업단 단장에 육군 준장을 임명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공군 사업을 육군에게 맡긴 것이다.

누가 대통령을 속였나

19대 국회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10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출처 주간동아
19대 국회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10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출처 주간동아
왜 방사청은 KFX 사업 체계를 ‘비전문가+층층시하’ 시스템으로 만든 것일까. 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방산비리 수사가 그중 한 원인은 아니었을까. KFX 사업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일 개연성이 있으니 방사청장이 직접 챙기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청장 본인이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층층시하를 만들고, 결탁을 막기 위해 육군 출신을 책임자로 앉힌 것으로 보인다. 국과연 출신인 장명진 방사청장은 박 대통령과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기이니, 그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대통령에게도 부담을 주게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방산비리 수사로 방사청이 왜곡된 움직임을 보인 건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방사청은 잠수함 사업팀장에 공군 대령을 임명했다. 방산비리 수사가 해군에 집중되다 보니 방사청은 잠수함과 무관한 공군 대령을 잠수함 사업단장에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비리는 유착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면 유착이 없어 비리는 줄어들지 몰라도, 전문성도 함께 사라져버린다. ‘잠수함이 하늘로 가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렇게 늘 자신감이 부족했던 방사청이 올여름에는 미국으로부터 4개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협상에 임했다 실패했다. 그러나 쉬쉬하고 있었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질문을 받은 공군참모총장이 진실을 이야기하자 사태의 봇물이 터져버렸다. 그렇다면 현실을 인정해야 할 텐데, 미국을 방문하는 대통령에게 다시 4개 기술 이전을 요구하게 했다. 그리고 정부는 엉뚱하게도 주철기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을 퇴임시켰다. 주 수석은 무리하게 커지는 KFX 사업을 정상화하려고 애썼던 사람 중 하나였다.

정보와 정책을 다루는 이들은 냉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이들에게 소망적 사고가 금기 중 금기인 이유다. KFX 사업을 바로세우려면 과욕과 책임 회피, 그리고 소망적 사고부터 걷어내야 한다. 그 시작은 바로 대통령을 속인 참모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년 10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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