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속전속결 ML 도전 박병호 “모 아니면 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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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와 달리 1루만 볼 수 있기에… 어차피 원하는 팀은 정해져 있어
이적시장 초기 대박 노리는 전략, 적중땐 몸값 2000만 달러도 가능

바둑에서 승부는 형세 판단에서 판가름 난다고 한다. 인류 최고의 병서(兵書)인 손자병법 역시 첫 페이지부터 형세 판단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핵심 요소 중 하나가 ‘타이밍’이다. 어느 시점에서 전쟁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것이다.

프로야구 넥센 박병호(사진)가 다음 달 2일 메이저리그에 포스팅(입찰)을 신청한다. 시장이 열리자마자 입찰에 나서 조기에 승부를 보겠다는 속전속결 전략이다. 지난해 같은 과정을 거친 강정호는 시장이 마무리돼 가던 시점인 12월 중순에 입찰을 신청했고 피츠버그의 선택을 받았다. 정반대의 타이밍이다.

전략에는 이유가 있고 각각에 유불리가 있기 마련이다. 박병호와 강정호의 포스팅 시점이 다른 것은 포지션 차이가 크다. 넥센 관계자는 “박병호는 1루만 볼 수 있는 선수고, 강정호는 유격수는 기본이고 2, 3루까지 소화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라는 점이 타이밍의 차이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아무리 크다 해도 모든 구단이 장바구니를 다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개장 이후 쇼핑 목록을 점검한 뒤 파장 시점이 되면 서둘러 보충 쇼핑에 나선다. 야구 변방에서 건너온 ‘메이드인 코리아 야수 1호’ 강정호는 이 시기를 공략했다. 예상대로 유격수가 필요한 팀도, 2루수가 아쉬운 팀도, 3루수가 애매한 팀도 모두 ‘멀티 플레이어’ 강정호에게 관심을 보였다. ‘대박’ 대신 ‘확률’을 선택한 전략이 성공했다.

그런데 박병호는 다르다. 한 스카우트는 “어차피 ‘1루수만’ 원하는 팀은 거의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즉, 강정호처럼 파장 시점을 겨냥하더라도 관심 구단이 많이 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시장에서 초반 구매자들은 대체로 지갑이 두둑하지만 후반 구매자들은 지급 여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상품에 자신이 있다면 시장이 열린 초반부를 공략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확률보다는 대박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대박을 노릴 때는 위험이 따른다. 전직 빅리그 스카우트는 “시장은 늘 유동적”이라고 강조했다. 박병호에게 큰돈을 쓸 빅마켓 구단으로는 보스턴과 텍사스가 꼽힌다. 그런데 보스턴의 경우 특급 스타 핸리 라미레스의 1루수 전향 등의 문제가 있고 구단 수뇌부가 바뀐 지도 얼마 안 됐다. 어떤 전략으로 포스팅에 나설지 알 수 없다. 또 다른 구단들도 11월 초면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짓지 못해 웬만한 확신이 없으면 큰돈을 쓰기 어렵다. 그들의 확신이 어느 정도인지도 불투명하다. 여기에 한국인 거포 1루수인 이대호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예고한 터라 공급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익명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박병호에게 20개 팀 정도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 중 5개 팀 정도가 포스팅에 참가할 것이다. 그중 결국 1, 2개 팀이 거액을 적어 낼 것인데 여기서 승부가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병호의 속전속결 전략은 결국 소수의 빅마켓 구단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략이 잘 통하면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이적료로만 2000만 달러까지 받아낼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금액과 선택의 폭이 줄어들 수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강정호와는 전혀 다른 박병호의 전략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윤승옥 기자 touch@donga.com
#박병호#ml#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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