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신영]인생을 바꿀 과학자와의 만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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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매년 여름이 끝날 무렵이 되면 나는 습관적으로 가을철 달력을 펼쳐 든다. 10월이 되면 조바심을 내며 메일함을 여닫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알림 창을 확인한다. 그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오면 만사 제쳐 두고 일정부터 메모한다. 내가 한 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감동적인 행사, 과학자들의 재능기부 과학 강연 ‘10월의 하늘’이 열리기 때문이다.

‘10월의 하늘’은 과학자와 공학자, 과학작가 등 과학과 관련이 있는 재능기부자들이 한날 한시(매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2시·올해는 31일)에 전국 각지의 도서관으로 퍼져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학 강연을 하는 행사다. 예술가나 기업인처럼 과학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도 과학과 연관이 있는 소재만 준비하면 강연을 할 수 있다. 조건은 단 둘, 자발적으로 뜻을 밝힌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고 금전적인 도움이나 기업의 후원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오히려 사비를 털어 먼 낯선 도시에 갈 여비를 마련하고 수업을 듣는 청소년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이 행사는 2010년 가을 처음 시작됐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발단이었다. 1년 중 나머지 날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고 대신 딱 하루만은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자는 외침에 수십 명의 과학자와 공학자가 화답했다. 과학기술계의 언저리에 반 발 걸치고 있는 나도 그 외침에 공감해 강연자로 참석하기 시작했고 그게 벌써 여섯 해째 이어지고 있다. 첫해에 전국 29개 도서관에서 열렸던 행사는 이후 점점 규모를 키워서 많을 때에는 전국 43개 도서관에서 거의 200명의 재능기부자가 강연을 열기도 했다. 올해는 규모가 다소 축소돼 전국 10개 도서관에서 29개 강연이 열린다.

‘10월의 하늘’에는 다른 강연 행사와 다른 독특한 특성이 여럿 있다. ‘10월의 하늘 스피릿(정신)’이라고나 할까. 먼저 표면적인 주인공은 강연자인데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강연 진행을 맡은 행사 운영 기부자와 현장 진행 기부자들이다. 이들은 강연 기부자들과 달리 과학기술계 전공자가 아닐 수도 있는데, 강연장 섭외부터 강연자 배치, 당일 행사 진행까지 힘든 일을 모조리 도맡는 숨은 일꾼들이다. 이들의 공은 표면적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10월의 하늘’ 참여자들은 누구나 이 행사의 진짜 영웅이 이들임을 알고 있다.

두 번째는 자발적인 행사인 만큼 어떻게든 즐겁게 만든다는 점이다. 청중이 즐거운 것은 둘째 치고, 강연자와 진행자들이 즐겁다. 이들은 서로 모여 소풍 가듯 도서관으로 향하고, 가는 도중 흥이 나면 즉석에서 하늘 사진을 찍거나 해시태그 놀이를 하며 강연에 참여하는 하루를 떠들썩한 축제로 만든다. 강연이 모두 끝나면 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조촐한 파티가 열리는 것도 흥미롭다. 파티는 주로 서울에서 열리는데, 가까운 도시에서 강연을 한 기부자들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먼 도시에서 강연한 기부자들을 기다리며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운다.

문득 생각이 나 2010년의 첫 ‘10월의 하늘’ 홈페이지에 가봤다. ‘행사 이후 1816일 지남’이라는 문구가 선명했다(20일 기준). 바라는 것 없이 나눔만으로 기쁨을 누린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위대한 행사가 처음 열린 지 이제 곧 2000일을 넘기겠다. 2만 일을 넘길 때까지 오래 이어지면 좋겠다. 누가 알겠는가. 그 강연을 듣고 처음 과학자의 꿈을 꾼 새싹이, 그땐 강연 기부자가 돼 다음 세대의 새싹을 만나고 있을지.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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