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우회전 경적’ 멈춰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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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사회부 차장
이동영 사회부 차장
왕복 4차로인 아파트 단지 앞 도로는 항상 왼쪽 차로만 붐빈다. 오른쪽 차로는 비어 있어도 왼쪽 차로에는 차량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30m만 가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 차로에 서 있다가는 우회전하겠다는 뒤차로부터 경적을 듣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차로에선 직진할 수도, 우회전할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우회전 차량은 직진하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을 향해 경적을 울리거나 상향등을 번쩍인다. 이런 위협을 받은 차량 운전자는 대개 슬금슬금 앞으로 차를 몰아 횡단보도를 침범하거나 왼쪽 차량 앞으로 끼어들곤 한다. 분명 직진차로인데도 뒤차의 요구에 떠밀려 여러 위험을 떠안는다. 멈춰 서 있어야 할 선을 넘어 전진하게 돼 왼쪽 도로에서 달려오는 차량에 들이받힐 수 있다. 실제 이런 식으로 사고가 난다면 운전석 문 쪽을 들이받히기 때문에 뒤차에 떠밀린 차량 운전자가 치명상을 입을 확률이 높다. 멀쩡하게 왼쪽 차로 맨 앞에 있던 차량 운전자는 자신 앞으로 끼어드는 차량에 짜증이 나게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보행자 안전도 위협받는다. 이런데도 우회전하는 차량 운전자는 자신의 당당한 권리라는 듯 ‘왜 빨리 비키지 않았느냐’는 표정으로 째려보기도 한다. 여성 운전자 중에는 ‘우회전 경적’이 무서워서 아예 오른쪽 차로를 달리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다.

내가 사는 동네만 수준 이하의 이런 교통문화를 보이는 건 아니다. 전국 어느 도로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고, 더 자세히 보면 도로뿐 아니라 이런 ‘우회전 경적’은 사회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경기 용인에서 발생한 ‘캣맘 벽돌 살인사건’도 이 범주에 들어갈 만하다. 아파트 화단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인데 고양이를 위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게 불만인 누군가가 ‘우회전 경적’을 벽돌 투척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그 공간을 사용할 권리가 있지만 내 권리만을 앞세운 끔찍한 범죄다.

엊그제 퇴근길에 보니 광화문 한 곳에서 50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었다. 마이크가 없어도 충분해 보였지만 이들은 사람 키 높이의 대형 스피커를 설치해 청계천 일대까지 들썩일 듯한 굉음을 내뿜었다. 무슨 주장인지 들어 주기는커녕 마이크 잡은 사람을 째려보게 됐고 욕이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까지 치밀었다. 그저 조용히 퇴근길 걷고 싶은 사람의 사소한 권리를 짓밟는 ‘우회전 경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 충분하면 이런 ‘우회전 경적’은 울릴 일이 없다.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신호 체계가 첨단화되어 있다면 우회전하려고 경적을 울리지 않아도 빨리 교차로를 지날 수 있다. 아파트가 아니라 다들 널찍한 단독주택에 살 수 있고, 고양이 보금자리도 한적한 곳에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캣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서 나와 복잡한 출근길을 걸어야 한다. 어느 때 어느 거리에 나서도 한적함을 느끼기 어려운 게 이 나라다. 물리적 공간이 부족한 탓이다.

기다리며 지켜봐 주는 마음. 공자님 말씀 같긴 하지만 물리적 공간을 늘릴 재간 없는 터이니 유일한 해법 아닐까 싶다. 앞차가 조금만 앞으로 나가 주면 내가 빨리 우회전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길어야 1, 2분 후면 켜질 직진 신호를 기다리면 우회전 경적을 울리지 않아도 된다. 남은 하고 싶어 하고 나는 원하지 않는 고양이 터전이 생겨도 잠시 기다리고 지켜봐 주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게 갈등을 줄이며 살아가는 현실적 대안이지 싶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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