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면접파-논술파, 정시파… 혼란의 고3 교실 ‘각자도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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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증가로 고3 ‘파행 수업’

대학별로 내신, 논술, 비교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조합해 학생을 선발하는 등 수시전형 방법은 늘어났는데, 일선 고교의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미흡한 편이다. 고교 3학년 수험생들은 “학교에서 수능에 들어가는 교과는 EBS 수능 연계 교재만 풀고, 나머지 시간엔 자습만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동아일보DB
대학별로 내신, 논술, 비교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조합해 학생을 선발하는 등 수시전형 방법은 늘어났는데, 일선 고교의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미흡한 편이다. 고교 3학년 수험생들은 “학교에서 수능에 들어가는 교과는 EBS 수능 연계 교재만 풀고, 나머지 시간엔 자습만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동아일보DB
“요즘 교사들은 ‘고등학교는 2학년까지만 가르친다’라고 말해요. 3학년 1학기는 자기소개서 쓰느라 다 보내고, 2학기는 각자 지원한 전형에 맞춰 알아서 공부하라고 시키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3학년 땐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지요.”

최근 고교 3학년 교실이 무력감에 빠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대입 수시전형 지원자 상당수가 “입시가 끝났다”고 말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공부하는 학생도 ‘면접파’ ‘논술파’ ‘정시파’ 등으로 갈려 각자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3000여 개나 되는 다양한 전형 때문에 학생을 컨설팅해줄 역량이 없어 자습만 시키는 경우도 많다. 입시제도가 급격하게 변하고 경우의 수도 많아진 대입전형에 교사들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들 교사 중 일부는 “학교는 학생들이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길 기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 혼란스러운 고3 교실

7일 서울 성북구의 한 인문계 고교 3학년 교실. 27명 중에서 다음 달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통해 대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학생은 7명이다. 이 중 수시전형에 지원하지 않고 수능 중심의 정시에 ‘올인’한 학생은 1명뿐.

수시 합격 후 합격 기준인 최저등급만 맞추겠다는 생각으로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도 많다. 이들은 ‘물수능’을 믿고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큰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도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 수능만 준비하는 고3 학생은 소수로 밀려난 것.

이 학교 3학년 김모 군(18)은 최근 수능을 준비하는 다른 반 학생들과 함께 “수시 준비생들은 면접, 논술 준비 등으로 어수선하니 같이 수업을 하면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된다. 차라리 수업을 들어가지 않고 자습실에서 하루 종일 모의고사라도 보게 해달라”고 교무부장에게 말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수시 합격생들을 모아 놓는 수시합격반은 있지만 정시 준비생만 따로 모아 놓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것. 정시 준비생들은 “수능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면접 준비한다면서 교실을 들락거리고, 논술 준비한다며 떠드는 수시생들과 한 반을 써야 한다는 것이 고충”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처럼 수시전형이 주요 대입전형이 되면서 소수에 그치는 정시 수능 준비생에게는 학교가 여력을 쏟지 못한다. 수업시간에는 수능에 포함되는 과목이라면 해당 과목의 EBS 수능연계 교재를 풀고 나머지는 자습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고충은 있다. 면접과 논술을 준비하려면 최근 출제 경향 등을 알아야 하는데 학교가 이를 학생별로 하나하나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 결국 학생이 알아서 확인하고 준비해야 하다 보니 교무실과 컴퓨터실을 자주 찾아야 한다. 자기소개서와 논술, 면접 등을 준비하려면 결국 사교육에 더 의존해야 한다는 불만까지 있다.

서울 은평구의 한 고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은 장모 교사(33)는 “워낙 전형이 많고 학생들도 지원하는 학교 수가 보통 4, 5개나 돼 학교별로 일일이 챙겨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각자 다른 방법으로 대입에 골몰하다 보니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진다. 수업을 할 수 없으니 2학기 기말고사도 EBS 교재나 프린터로 정리해준 요약본에서 출제한다. 교사들은 공부의 필요성을 설명할 때에도 “대학 다니다가도 전공이 안 맞아 혹시라도 재수를 하면 2학기 성적이 들어간다”고 설득한다.

○ 수시전형만 3000여 개, 합격자마저 일찍 발표

이처럼 고3 교실이 혼란에 빠진 가장 큰 원인은 수시전형이 확대되면서 수험생이 대학을 가는 전형 방법은 늘어났는데, 학교의 프로그램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은 6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수시 대입전형 방법 수만 3000여 개라고 밝혔을 정도다. 여기에 올해 대입에서 수시전형 모집 비율은 전체 대학 정원의 67.4%(24만976명)다. 즉, 대학 신입생 3명 중 2명은 수시전형으로 선발하다 보니 대입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은 수시전형에 지원한다.

대교협에 따르면 올해 대입에서 수시에 지원한 수험생은 약 52만 명. 학생 1명당 대입전형 지원은 4.32회이다. 이 중 특히 고3 수험생의 경우 수능 중심인 정시전형이 재수생들이 강세를 보이다 보니 수시전형이 더 유리하다고 여겨 의존한다.

그러나 수년간 교과 중심으로 가르쳐온 고교에서는 학생부 내신과 수능, 비교과, 논술 등을 조합한 각각의 대학별 수시전형에 일일이 대응하지 못한다. 여기에 재수생 강세 속에 수능 위중의 정시전형을 통해 재학생을 대학에 보내기 어려워지면서, 여기에 집중하는 수험생에 대한 지원도 약해졌다.

최근 대학의 수시 결과 발표마저 빨라지면서 입시에서 손을 털어버린 합격자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주요 대학 중 가장 빨리 합격자를 발표한 한양대는 이미 지난달 23일에 학생부교과전형 합격자를 발표했다. 전형을 간소화하고 지원자가 빨리 결과를 알 수 있는 이른바 ‘착한입시’라는 것. 대학 측은 고교와 충분히 상의한 뒤 발표했다는 입장이다. 학생 처지에서는 기다리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입시전형에도 대비하지 못하는 학교에서는 이들 합격생에 대한 교육은 부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교총에서는 최근 “3학년 교실의 혼란을 막으려면 3학년 2학기 내신까지 대입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이렇게 교실이 혼란스러울 바에는 수능을 8월로 앞당겨 시행하는 것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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