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케이블카 아래 들꽃의 손짓… 문제는 ‘사람 스트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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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케이블카의 반면교사, 덕유산 가보니

덕유산 국립공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풍광은 숨이 탁 트이는 절경이다. 멀리 인공호수인 설천호와 신곡리 마을, 가을 단풍이 여인의 붉은 치마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적상산’ 등이 한눈에 보인다(위 사진). 케이블카를 이용해 정상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향적봉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해발 1614m까지 등반이 쉽지 않은 어린 소녀도 가족과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무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덕유산 국립공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풍광은 숨이 탁 트이는 절경이다. 멀리 인공호수인 설천호와 신곡리 마을, 가을 단풍이 여인의 붉은 치마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적상산’ 등이 한눈에 보인다(위 사진). 케이블카를 이용해 정상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향적봉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해발 1614m까지 등반이 쉽지 않은 어린 소녀도 가족과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무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해발 1500m에서 내려다보이는 케이블카 밑의 삼림은 무성했다. 대형 지주(支柱)의 아랫부분은 무성한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케이블카가 상부 정류장으로 미끄러지듯 접근하자 시멘트 기둥 주변에 피어 있는 하얀색 들꽃 ‘마거리트’가 눈에 들어왔다. 덕유산 국립공원 케이블카의 상부 정류장에서 정상인 향적봉까지의 거리는 불과 600m. 나무 덱과 울타리로 연결된 탐방로 주변에는 작은 별 모양의 멸가치가 피어 있었다. 각시투구꽃 참취 엉겅퀴 송이풀 같은 들꽃들도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이 꽃, 머리 쪽이 살짝 구부러진 것이 꼭 오리처럼 생겼죠? 오리꽃이라고도 불리는데 원래 이름은 진교예요. 이런 야생화들이 계절을 바꿔가며 30종류쯤 이 일대에 피어납니다.”

현장에 동행한 덕유산국립공원관리공단의 차회찬 계장이 들꽃들의 이름을 하나씩 설명했다. 분홍색 오이풀, 노오란 짚신나물, 잎 뒷면이 흰색인 수리취…. 주변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벌새와 꿀벌들도 날아다녔다. 줄무늬 다람쥐를 발견한 탐방객들이 반가운 듯 탄성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덕유산이 설악산에 보내는 메시지

지난달 28일 국립공원위원회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7가지 조건부로 승인한 것을 계기로 케이블카의 환경 훼손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환경부 장차관의 퇴진은 물론이고 국립공원위원회의 해체까지 요구하며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10일 국회의 환경부 국정감사는 ‘케이블카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련 이슈에 거센 질문이 쏟아졌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실제 환경은 어느 정도 훼손될까. 그 해답을 부분적으로나마 찾을 수 있는 곳이 덕유산 국립공원이다.

덕유산은 국립공원 내에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는 3곳 중 하나이고,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이 정상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승인 심사를 앞두고 ‘반면교사’ 사례로 거론돼 왔다. 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라는 큰 국제 행사와의 연계 인프라 개발 차원에서 설립된 배경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되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이 산은 올해 초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조사한 스트레스지수 1위에 올라 있다.

국감을 앞둔 이달 초, 실제 케이블카를 타고 돌아본 덕유산 정상 주변은 그 불명예스러운 성적표에 비해서는 풍성한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키가 낮은 아고산대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하늘을 덮었고, 정상인 향적봉에는 판판한 돌들을 깔아놓아 답압(踏壓)으로 흙이 파이거나 무너진 부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누렇게 시들어버린 조릿대는 “인간의 영향이 아닌 자연 현상”이라고 했다. 기후변화로 온도가 올라가면서 너무 많이 번식해 되레 발육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덕유산국립공원관리공단의 김양겸 계장은 “해마다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의 의견도 청취하는데 자연 보전의 측면에서 큰 문제로 지적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스트레스지수 1위는 연간 60만 명에 이르는 탐방객 수를 좁은 탐방로 면적으로 나눠 점수를 매기다 보니 억울하게 선정된 측면도 있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케이블카 정류장과 정상이 연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조차 없던 시절, 두 지점이 연결되는 바람에 훼손된 정상 부근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목재 덱과 난간 설치에만 10억 원 가까이 투입됐다. 그래도 사람들이 몰리는 성수기에 일부가 이 탐방로를 이탈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상부 정류장에서 정상까지 거대한 인간 띠가 형성된 채 극심한 이동정체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탐방 인원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15년 넘게 덕유산의 환경 모니터링에 참여해온 전북대 환경생명자원대의 김창환 교수는 “현재 생태계의 상태나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덕유산에 큰 문제는 없다”며 “2000년대 초부터 10년 넘게 각종 복원사업과 환경보호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스키 리조트 건설이라는) 대수술 후 상처가 잘 아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케이블카라는 시설 자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와 환경보전 노력이라는 것이다.

과거 심하게 훼손됐던 덕유산 정상 ‘향적봉’은 10여 년간 탐방로 통제를 위한 시설 설치, 주변 식생 복원 프로그램 등의 노력을 통해 풍성한 자연의 모습을 회복해 가고 있다. 복원 과정을 설명하는 덕유산국립공원관리공단의 윤대원 과장 옆으로 탐방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팻말이 보인다. 무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과거 심하게 훼손됐던 덕유산 정상 ‘향적봉’은 10여 년간 탐방로 통제를 위한 시설 설치, 주변 식생 복원 프로그램 등의 노력을 통해 풍성한 자연의 모습을 회복해 가고 있다. 복원 과정을 설명하는 덕유산국립공원관리공단의 윤대원 과장 옆으로 탐방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팻말이 보인다. 무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국립공원은 유원지가 아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의 주장은 다르다. 국립공원을 사랑하는 시민 모임(국시모)의 지성희 협동처장은 “겉으로 보이는 케이블카 주변의 녹음과 풍광이 전부는 아니다”며 “인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았을 때의 모습과 비교해야 문제가 더 정확하게 보인다”고 지적했다.

1997년 스키 리조트를 짓는 과정에서 희귀 식물인 주목과 구상나무 수천 그루가 밑동까지 잘려나간 악몽이 환경단체에는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능선을 쭉 긋고 내려오는 밋밋한 스키 슬로프들이 좌우의 생태계를 갈라놓아 야생동물들의 이동이 차단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김재병 전북환경운동연합 생태디자인센터장은 “나라에서 주목과 구상나무를 복원하겠다며 여기저기 이식했지만 많이 죽어버렸다”며 “복원이 말처럼 쉬운가”라고 되물었다.

현재 국내에 설치돼 있는 관광용 케이블카는 모두 21개. 이 중 자연공원(국립 및 도립)에 설치된 케이블카는 모두 9개다. 국시모의 조사에 따르면 이 중 내장산 국립공원은 상부 정류장부터 걸어 내려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천연기념물 제91호인 굴거리나무 군락지가 훼손됐다. 설악산 권금성케이블카는 권금성 일대에 풀이나 나무가 말라죽는 결과를 가져왔고, 대둔산도립공원은 육중한 철근과 시멘트 기둥이 기암절벽의 경관을 훼손했다.

환경단체들은 “우리도 케이블카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국립공원이 보호할 가치가 높은 야생 동식물과 경관을 위해 지정, 관리되는 측면이 강한 만큼 유원지와는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윤주옥 국시모 협동처장은 “1970년대 케이블카 붐이 일었던 일본에서도 이후 이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경관 훼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돼 지금은 몰락해가는 사업이 됐다”고 설명했다. 케이블카 성공 사례로 흔히 거론되는 스위스의 융프라우나 체르마트는 국립공원이 아닌 데다 40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개발한 사례여서 한국 산악지형과는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인간과 환경의 조화

환경이 어느 정도 훼손되더라도 그로 인해 얻는 혜택이 더 크다면? 최근 한국갤럽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3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에 찬성한 응답자가 전체의 43%, 반대는 25%였다.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로 인한 경제적 이익 증가, 일자리 창출, 장애인과 노약자의 편익 등이 예상되는 혜택이다.

특히 수익은 환경 이슈를 잠재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최근 ‘대박’을 터뜨리며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통영 케이블카는 지역 경제를 되살린 대표적 효자 시설로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2008년 4월 개통 이래 매년 탑승객이 급증해 올해 안에 탑승객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한 해에만 92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국립공원을 벗어난 곳에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케이블카 공사와 운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거론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고된 등산을 하지 않고도 쉽고 편하게 명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일반인들도 반색할 또 다른 장점이다. 덕유산 정상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던 50대 후반의 여성들은 “케이블카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우리는 이게 없으면 여기까지 올라올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엄마 손을 붙잡은 4세 남자아이와 판소리를 흥얼거리는 70대 노인도 해발 1614m의 정상에 올랐다. 국내에서 4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는 환경 훼손 논란과는 별개로 보고서 변조 의혹을 비롯한 절차적 하자와 승인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점 때문에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고민할 기회는 사업의 재검토를 둘러싼 날 선 공방 속에 묻혔다. ‘나에게서 좋은 점만 배워가라’는 덕유산의 메아리는 설악산까지 전달될 수 있을까.


▼설악산 다음 순서는 지리산?▼

“지리산 제안노선 문제투성이” vs “설악산도 하는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에 이어 지리산 케이블카 추진 계획이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1967년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2012년 설악산과 함께 케이블카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됐다. 국립공원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됐지만
“이왕 시범사업을 벌이려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낫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한국의 대표 명산 두 곳이 나란히 실험
테이블에 올랐다. 지리산의 탐방객은 연간 약 260만 명으로, 북한산과 설악산에 이어 3번째로 많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지리산에는 반달가슴곰 하늘다람쥐 구렁이 삵 담비 황조롱이 등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이 모두 40종 넘게 분포하고
있다. 483km²(약 1억4600만 평)의 넓은 면적이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3개 도에 걸쳐 있어 노선을 둘러싼
지자체 간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설악 오색케이블카보다 더 첨예하게 벌어질 수 있는 개발 논쟁의 뇌관인 셈이다.
지리산은 2012년 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함양군 등 영호남 4개 시군에서 각각의 노선으로 신청했다가 한 차례 부결됐다. 당시
함양군은 상하부 정류장 도면 같은 상세 자료조차 갖추지 못했고, 산청군은 지주 형식을 결정하지 못해 토공량 산정 등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로 준비가 부실했다.

함양과 산청은 올해 2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공동 추진을 제안해 단일화에 합의한
상태다. 백무동∼장터목∼중산리로 이어지는 9.3km 구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원시와 구례군도 단일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당초 제시했던 노선은 각각 6.6km와 4.3km에 이르는 데다 일부 노선이 반달가슴곰 특별보호구역 및 생태경관보전지역을
지나는 것으로 확인돼 대폭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는 환경 훼손 논란에도 불구하고 재신청이 들어오는 대로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심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그 대신 나머지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사업은 2023년까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의
사후 모니터링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올스톱’시키겠다고 환경부 당국자들은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기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자체들은 벌써부터 들썩이는 분위기다. 산악 개발과 관련된 규제들이 점차 완화되는 추세인 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민심을 붙잡을 공약 수요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 ‘영남알프스 행복 케이블카 설치 범시민추진위원회’는 설악산 승인 결정이 내려진 직후 발대식을 갖고 설치 추진을 위한
100만 명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충청북도도 속리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이 밖에 전남의
월출산과 전북 마이산, 충북 소백산 등의 산악지대와 해상의 케이블카까지 합치면 전국적으로 유치전에 뛰어드는 지자체는 대략 30곳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케이블카#설악산#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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