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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 꿈을 이루다

입력 2015-09-07 03:00업데이트 2015-09-0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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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영씨, 伊 부소니 콩쿠르 아시아인 첫 1위
기초생활수급 딛고 한예종 수석입학… 화려함보다 깊고 섬세한 연주 돋보여
“시상식서 말 못 알아들어… 상 타고 내려와서야 1등 깨달아”
제60회 부소니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뒤 상장을 들고 있는 문지영 씨(오른쪽)와 콩쿠르 개최지인 이탈리아 볼차노 시의 루이지 스파뇰리 시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제공
“시상식 때 말을 알아듣지 못해 제가 1등을 했는지도 모른 채 상을 받았어요. 무대에서 내려오고서야 제가 1등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6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는 아직 얼떨떨한 듯 수줍게 말했다. 피아니스트 문지영 씨(20)는 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막을 내린 ‘제60회 부소니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인 최초는 물론이고 아시아 피아니스트로서도 처음이다. 한국인으로는 1969년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금상을, 1980년과 1997년에 각각 서혜경과 이윤수가 ‘1위 없는 2위’를 했다. 부소니 콩쿠르는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페루초 부소니(1866∼1924)를 기리기 위해 1949년 창설됐으며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다. 특히 2001년 격년제로 바뀐 이후 지금까지 1위를 3명만 배출했을 만큼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제가 무대에서 좀 떠는 편이어서 첫 라운드에선 긴장을 많이 했는데 갈수록 편안해져서 마지막 라운드는 아주 기분 좋게 연주했어요.”

그가 최종 라운드에서 연주한 곡목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8년째 그를 가르치고 있는 김대진 교수(수원시향 상임지휘자)는 “외국 지인들로부터 제자가 엄청난 상을 탔다고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며 “지영이는 화려한 기교를 내세우기보다는 깊고 섬세한 연주로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연주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처음 접한 문 씨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로 불리기도 했다. 부모가 기초생활수급자로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각종 피아노 대회에서 입상했고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이후 한국예술영재학교를 거쳐 지난해 한예종 음악원에 수석 입학했다.

문 씨는 국내외 무대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 2009년 폴란드 루빈스타인 청소년 국제 콩쿠르 공동 1위에 이어 독일 에틀링겐 청소년 콩쿠르 1위(2012년), 동아음악콩쿠르 2위(2013년), 다카마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2014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2014년)를 차지했다.

이번 콩쿠르에는 어머니 이복례 씨(52)도 동행했다. 문 씨는 “어머니가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1위 기념 공연을 마치는 대로 귀국할 예정이다.

“선생님(김대진 교수)이 우승 후 축하해 주시면서 ‘이제 연주 인생의 50분의 1밖에 가지 않은 거니까 겸손하게 연습하자’고 하신 말씀을 듣고 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앞으로 좋은 연주자가 돼 어려운 형편의 지망생들을 많이 이끌어 주고 싶습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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