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여대 한문교육과, 외국에서 대접 받는 ‘한문 전문가’ 되고 싶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9일 13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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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100]한문 전문가, 외국에서 대접받는다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92학번 졸업생 김정원 씨.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미국 콜럼비아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가 미국에서 교수로 자리잡기까지에는 성신여대 학부 시절 닦은 한문 해석 능력이 크게 도움이 됐다. 한문교육과 출신으로 원자료(한문) 접근 능력이 있다는 점이 학위 과정은 물론 교수로 임용될 때 남들과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는 ‘무기’였다. 김 교수는 이 때문에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신여대 한문교육과를 다니면서 3학년 때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에서 고대중국철학사를 수강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한국 한문학의 영어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국과 일본의 문학과 역사서들은 이미 영어로 번역돼 외국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데 반해 한국 한문과 고전문학들은 거의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한문교사의 꿈을 접고 한국의 원전 자료를 외국인에게 알리고 한국문화를 보급하는데 앞장서기로 했다. 내가 얼마전까지 재직했던 일리노이대의 경우 학부생들이 의무적으로 ‘동아시아문명사’라는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을 정도로 동아시아에 대해 관심이 많다. 후배들이 한문 해독 능력이 있으면 더 넓은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리라고 본다.”

김 교수의 말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높다. 김정원 교수의 학문 스승이자 인생 멘토이기도 한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김여주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보다 ‘논어’ 강독이나 ‘장자’ 강의가 하버드생들에게 더 주목받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한 같은 과 류준경 교수의 보충 설명.

“서구권에서 한문으로 씌어진 고전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서양에서 발달한 사유 체계로서는 더이상 이 세계를 설명하는 데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한 고대 동양의 선인들을 통해서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 현재의 추세다. 이런 점에서 한문교육과 학생들은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학생들은 한문 고전을 통해 선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직접’ 만나게 된다. 감히 단언컨대 이런 소양은 앞으로 가장 중요한 삶의 자산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남과 다른, 그렇지만 가장 근본적인 사고력을 바탕에 깔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인문학이 위축될 대로 위축돼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문송’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의 요즘 세태에서는 신선한 역발상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한문’에 대한 대접은 외국과는 사정이 다른 듯하다. 한문 교육은 중고교의 선택과목으로 편성돼 있어 입시에 목을 매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하겠다는 교육부의 정책조차 찬반 논란이 분분하다. 이와 관련해 부자 2대에 걸쳐 국어국문학 전공 출신인 류준경 교수는 “한문 교육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 라틴어 유산이 유럽의 중심 문화로서 세계를 재패했다면 앞으로는 동아시아의 유산인 한문이 세계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기원전 1세기경에 완성된 한문 체계는 중국의 고유 언어라기보다는 고대 동아시아의 공동 언어라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 오늘날처럼 언어문화의 다양성이 중시되는 시대에서는 언어에 담긴 문화가치를 재창출하거나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문화 콘텐츠를 넓혀 나가야 한다. 이것이 지금 한문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류 교수는 근대 초기에는 문맹 퇴치 차원에서 한글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우리 문화 콘텐츠를 제대로 밝히고 이를 세계화하는 측면에서 한문 교육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라 전반적으로 사범대 출신의 교사 수요가 줄어들고 있지만 한문교육과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 학과 학생들이 졸업 후 중고교 한문교사로 진출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장래에 대해 다소 불안할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자 병기 정책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고, 과거와 달리 한자와 한문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제대로 한문교육을 받은 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성신여대 한문교육과는 그 희소성 때문에 더 주목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국내에 한문교육과를 개설한 사범대학은 10개 대학. 서울에서는 성신여대와 성균관대에만 한문교육과가 있다. 특히 성신여대 사범대학은 지난 3주기 사범대학 평가에서 최우수등급(A)을 받았다. 이 평가는 성신여대와 공주대만이 받았다는 점에서 대외적, 객관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학과는 우수한 한문교사 양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선 한문교사 임용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학년별 지도교수를 두고 정례 상담을 통해 학생들의 미래를 디자인해주고 있다. 한문고전에 대한 기본 소양을 바탕으로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통해 교직 진출의 문을 넓히는 방법도 권장하고 있다. 3학년 정해인 씨는 교직 기회를 넓히기 위해 국어교육을, 김효겸 씨는 학생 상담에 관심이 많아 심리학을 복수전공 하고 있다.

둘째, 학과 수업 외에 방학 중 외부 전문가를 초청한 특강도 상시적으로 열고 있다. 특히 4학년 때 교생 실습을 잘할 수 있도록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능력강화 프로그램, 공감과 소통력 등 현장능력 강화를 위한 교수법 강의 등이 학생들에게 인기다.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고궁 답사를 하고 있는 한문교육과 학생들.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고궁 답사를 하고 있는 한문교육과 학생들.

셋째, 학생들의 동아리인 서도부도 학과의 자랑거리다. 한문교육과는 서도부 학생들을 위해 전용 서예실습실을 마련해줬다. 현재 서도부장을 맡고 있는 3학년 황예진 씨의 말.
한문교육과 류준경교수의 연구실에서 동아리 간부 학생들이 방학중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한문교육과 류준경교수의 연구실에서 동아리 간부 학생들이 방학중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서예실습실은 항상 개방돼 있기 때문에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이나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 서예 연습을 할 수 있다. 방학 때는 서예 전문 교수님이 일주일에 1, 2회 집중 지도를 해주는데 선후배들이 거의 다 참가한다. 서도부 학생들은 ‘임서전(1학기 전시회)’과 ‘향란전(2학기 전시회)’을 통해 방학 때 배운 서예 솜씨를 뽐낸다. 한문전문가로서 한자를 올바르게 쓰는 법을 익힐 뿐만 아니라 심신안정의 효과도 있어 많은 학생들이 서도부를 지원한다.”
한문교육과 서도부 학생들이 교내 전시회인 ‘임서전’에 출품한 서예 작품들.
한문교육과 서도부 학생들이 교내 전시회인 ‘임서전’에 출품한 서예 작품들.

마지막으로 특이한 장학금 제도를 들 수 있다. 이른바 멘토링 장학금이다. 학생이 전공, 취업, 창업 등의 계획서를 제출하면 먼저 계획서를 검토해 수혜자를 선정한다. 이어 한 학기 동안 4회 이상 지도교수와 면담을 하고, 계획 대비 실적이 70% 정도에 도달했다고 판단하면 장학금(150만 원)을 주는 제도다. 2013년 2학기부터 실시하고 있는 이 제도를 통해 30명 정도가 이 장학금을 받았다.

학과는 1973년 한문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영광’보다 미래를 생각한다. 1회 졸업생인 김여주 교수는 “학과의 목표는 한문학이라는 학문을 기본 소양으로 삼아 사회 발전과 미래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인재 양성”이라고 밝혔다.

“교직과목을 이수해 교단에 서는 사람만이 교사가 아니다. 사회 공동체에서 남들을 배려하고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도록 감동을 주는 사람들도 다 교사들이라고 가르친다. 우리 학생들은 1학년 때 ‘소학’을 배우면서 인성과 도리를 자연스럽게 익히며 ‘한시’를 통해 옛사람들의 감성과 자연에 대한 관찰력을 배운다. 학문을 닦는 과정에서 올바른 인성을 갖춘 지성인으로서, 또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한문교육과 학생들이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직접 탁본해보는 행사. 이를 통해 조상들이 남긴 한문 문장과 글씨체를 배울 수 있다.
한문교육과 학생들이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직접 탁본해보는 행사. 이를 통해 조상들이 남긴 한문 문장과 글씨체를 배울 수 있다.

인성과 지성을 갖춘 한문교육과 학생들은 졸업 후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다. 류 교수는 09학번(대부분 2013, 2014년 졸업)들의 취업 상황을 조사해본 결과 27명의 졸업생(30명 입학)중 9명이 교사로 재직 중이며(33%), 대학원 진학 4명(15%), 일반 취업 2명, 교육 공무원 1명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교사직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대학원 진학은 전문 학자의 길을 걸어가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문학은 아직도 번역한 것보다 번역하지 않은 원전 자료들이 부지기수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노다지인 셈이다. 김정원 교수의 예처럼 한문학을 세계화하는 데 열정을 둔 학생들은 한문해독 능력을 길러 외국으로 진출하거나, 국내 고전번역원 등에서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이기에 오히려 각광받을 수 있다는 게 류 교수의 설명이다.

이외에 인문, 사회계열 출신 학생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전공과는 달리 공무원, 신문 및 방송, 출판사 등 다양한 직종으로 진출할 수 있다. 류 교수는 “사범대 출신들은 교사와 일반 취업 두 가지 다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모두 4명의 전임교수가 이끄는 성신여대 한문교육과의 입학 정원은 30명. 수시에서 18명을 뽑고 나머지는 정시에서 뽑는다. 2015학년도 수시 합격자의 내신 평균은 1.84등급(학생부 100% 반영, 최종 등록자 기준)이었다. 사범대학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면접 대신 교직 적성과 인성 평가를 한다(10% 반영). 정시는 수능백분위로 약 88%였고, 수능 성적(90%)과 교직 적성 인성 평가(면접 10%)를 반영한다. 교직 적성 인성 평가는 예비 교사로서의 자질을 평가하기 위해 ‘교직소양’, ‘상황파악능력’, ‘상황대처능력’ 등을 종합적 정성적으로 평가한다는 게 입시 관계자의 말이다.

안영배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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