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엎친데 그리스 덮쳐… 내수-수출-금융 모두 위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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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동시다발 경고음

발길 끊긴 홍천 5일장 16일 메르스 여파로 강원 홍천군의 5일장이 휴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몇 상인이 마스크를 쓴 채 좌판을 벌이고 채소 등을 내놓았지만 하루종일 손님이 뜸했다. 홍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발길 끊긴 홍천 5일장 16일 메르스 여파로 강원 홍천군의 5일장이 휴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몇 상인이 마스크를 쓴 채 좌판을 벌이고 채소 등을 내놓았지만 하루종일 손님이 뜸했다. 홍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생각지도 못한 나라 안팎의 악재들이 잇따라 출현하면서 한국 경제가 비틀거리고 있다. 경제의 외적(外的) 변수인 메르스의 확산으로 내수 경기가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다시 불거지며 국내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수출 등 실물경제마저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조만간 정책금리의 인상 시점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1100조 원에 이르는 국내 가계부채의 위험도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한 주(8∼12일)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6703억 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주간 단위로 한국 주식을 순매도한 것은 2월 둘째 주(9∼13일) 이후 넉 달 만에 처음이다. 외국인은 16일에도 하루에 3111억 원을 순매도해 올 1월 6일(3300억 원) 이후 다섯 달 만에 가장 많은 주식을 내다 팔았다. 이 같은 외국인의 매도 공세에 이날 코스피는 13.60포인트(0.67%) 내린 2,028.72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주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등 경기 부양책에도 시장이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메르스와 그리스의 디폴트 우려, 미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 등 한국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인들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일단 내부적으로는 메르스 전파와 엔화 약세 등으로 내수·수출 기업의 실적이 동반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사람이 많이 몰리는 영업점은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고 연초부터 활황이던 주택 분양시장은 본보기집 개장과 분양 일정을 연기했다.

글로벌 환율전쟁 등으로 수출 역시 고전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0.9% 줄어 월별 감소 폭으로는 2009년 8월(20.9%) 이후 5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실물경제가 둔화하며 한은은 올 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메르스로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을 모니터링한 결과 서비스업에서 소비 위축이 현실화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해 메르스의 영향으로 내수시장이 침체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밖으로는 ‘문제 국가’ 그리스를 둘러싼 잡음과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금융 안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로존 채권단과의 채무상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그리스의 디폴트 또는 그렉시트(유로존 탈퇴) 우려가 조만간 현실화될 우려가 커진 것이다. 15일(현지 시간) 그리스 증시는 5%가량 폭락했고 3년 만기 국채금리도 한때 30%에 가까운 수준까지 올랐다. 그리스의 문제는 유로존 내 취약 국가들로 전염돼 이날 스페인(2.25%→2.41%)과 이탈리아(2.21%→2.36%)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일제히 상승했다.

16, 17일로 예정된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떠오른 상태다. 만약 연준이 이번 회의에서 조기 금리 인상에 무게를 두는 성명을 내놓는다면 그리스발(發) 충격과 맞물려 신흥국의 자본 이탈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질 수 있다.

물론 그리스 사태가 이번에도 큰 문제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2년에도 그리스 우려가 심각하게 불거진 바 있지만 결국 유로존 탈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유로존이 흔들리면 안전 자산인 엔화 가치가 올라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위기가 다른 악재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금융 불안을 가중시킨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더 큰 문제는 대외 개방도가 높고 외풍에 취약한 속성 때문에 금리 인하 등 정부의 거시정책들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중국 경기 둔화 등 대외적 불확실성 때문에 한국의 거시경제 회복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8개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간소비, 수출입 등 실물 경제가 대체적으로 부진했다는 설명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그리스의 디폴트에 미국 금리 인상, 엔화 약세, 메르스 후폭풍까지 겹친다면 사방에서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박민우·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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