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대지진 참사가 터지자 전 세계 지진 전문가들이 “예고되었던 참사”라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사실 네팔 정부는 최근까지도 대형 지진의 발생 가능성을 파악했으나 시스템 미비, 대응능력 부재로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네팔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한국 미국 영국 등 주요 해외공관들은 최근까지 매년 지진 대비 훈련을 실시해왔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난 최용진 네팔 주재 한국 대사는 “지난해만 해도 미국 대사와 영국 대사로부터 네팔은 80년을 주기로 지진이 발생하니 조만간 대형 지진이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내용을 네팔 정부에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최 대사도 미국 영국 대사관 재난 관련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아 군의 지휘소 훈련(CPX)과 비슷한 형태로 네팔 주재 한인들을 대상으로 2차례 실시했다고 한다. 그는 “네팔을 9개 지역으로 나누고 지역책임자를 정해 단계별로 대피장소로 이동하는 모의훈련은 물론 통신 두절에 대비해 무전기까지 나눠줬다”며 “이번 참사에서 부상자만 3명 발생했을 뿐 한국인 희생자가 없었다는 것은 사전 훈련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에비해 그동안 네팔 정부가 한 지진대비는 “지진이 나면 건물 밖으로 나가라”는 간단한 행동 요령을 방송으로 알렸던 수준으로 보여 진다.
네팔 공무원들은 정부가 긴급 사태를 선포하자 가족을 돌봐야 한다며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2009~2010년 선거 감시 및 치안유지 등을 맡은 유엔네팔임무단(UNMIN)에서 근무했던 네팔한인회 이해동 사무총장은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는 국장 등 일부 간부들만 출근하고 일선 실무 담당자들은 출근하지 않아 복구 관련 업무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다”며 “게다가 네팔은 읍면동에 해당하는 행정 조직이 없을 정도로 행정력이 매우 약해 대형 재난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행정력 공백’은 대지진에 버금가는 재앙이라고 일컫는 ‘구호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정부와 구호단체들이 네팔에 막대한 구호 물자를 보내고 있지만 체계적인 배포 시스템이 부족하다보니 이재민들에겐 구호품이 도달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통관절차까지 까다로워 구호물자들이 공항과 국경에서 방치되고 있다. 제이미 맥골드릭 유엔 네팔 상주조정관은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구호품들이 공항에 묶여 있다. 네팔 정부가 관세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팔 현지 언론들도 인도 국경에 수백 톤의 구호품들이 적체돼 있다고 보도했다. 네팔 정부는 1일 텐트, 방수포에 한해 수입세를 철폐했지만 참치, 마요네즈처럼 불필요한 구호물품도 있다며 세관이 모두 검사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럭, 헬기 같은 운송수단이 없는 것도 큰 문제다. 구호단체들은 “고지대나 시골 지역에는 구호품이 거의 전달되지 않고 있다”며 “현재 운영되는 헬기는 20여대에 불과한 데 더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팔 경찰은 정부가 구호 관련 업무를 통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민간단체의 트럭이 피해지역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마을 대부분이 무너진 신두팔촉 지역에는 지난주 한 구호단체가 방수포와 쌀을 전달한 것을 빼면 정부의 구호 복구 지원이 전혀 없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한편 4일 현재 확인된 지진 사망자는 7276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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