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금융’이 성완종 사태 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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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게이트/금융권에도 불똥]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 도마에
금융당국 “경남기업 워크아웃때 곳곳서 감사 완화 청탁”

“머리가 다섯 개쯤 달린 뱀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 중견 건설업체 A사의 구조조정 작업을 마친 정부 당국자는 이렇게 푸념했다. 그는 “부실기업을 처리하면서 이렇게 온갖 군데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그나마 큰 탈 없이 마무리된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국회의원 지위를 이용해 자기 회사의 워크아웃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국의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기업의 생사나 금융회사의 지원 여부가 경제 논리가 아니라 로비, 인맥 등 정치력에 좌우되고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채권단이 경남기업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는 과정에 금융당국과 국회의원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설이 금융권에 파다하다.

‘정치(政治) 금융’의 폐해가 금융회사의 인사(人事)에 이어 부실기업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좀비 기업’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 기업 생사, 로비·인맥이 좌우

현재의 부실기업 처리 과정은 채권단이 회생 가능성을 ‘자율적’으로 판단해 구조조정 방식을 결정하되, 채권단 내부에 이견이 생겨 조율이 필요하면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 지분을 갖고 있는 채권은행들을 통해 ‘자금줄’을 틀어쥐고, 이를 얼마든지 ‘관치 금융’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의원과 이익단체, 지역 유지 등의 압력과 로비에 채권단이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경남기업은 이런 시스템의 부작용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다. 금융권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이던 성 회장은 경남기업이 3차 워크아웃에 돌입한 2013년 10월을 전후해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고위 간부들을 거의 매일같이 접촉했다.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경남기업을 지정감사제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민원이 여러 경로로 들어왔지만 결국 무산됐다”고 귀띔했다. 지정감사제란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을 선정해 금융당국이 지정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 즉 기업의 부실을 숨겨 채권단의 지원을 더 끌어내기 위해 민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경남기업 구조조정을 지휘한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주채권은행이던 신한은행에 지원을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이나 정치권의 핵심 인사들이 ‘윗선’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권 안팎에서는 신한금융 최고위층과 지연, 학연으로 얽혀 있는 중진 의원이 청탁을 넣었다는 소문도 돈다.

○ 기업 부실 키우는 정부와 정치권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권과 정치권이 개입하는 일은 과거에도 많았다. 금융당국이나 채권단 관계자들은 이 과정에서 권력자를 등에 업은 로비, 청탁이 없었던 사례가 오히려 드물다고 말한다. 한 정부 당국자는 “기업은 ‘생물’과 같아서 죽이려고 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발버둥을 친다”며 “그래서 당국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업무가 구조조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치 금융’ 관행은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2013년 STX그룹의 구조조정 때도 정부가 전년도에 있었던 대선을 피해 구조조정을 늦추다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여파로 산업은행은 그해에 13년 만에 대규모 적자를 냈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지금 경남기업에 빌려 준 5200억 원을 대부분 떼일 위기에 처해 있다. 경남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2013년 수출입은행의 대출 규모는 전년 대비 9배로 급증했다. 당시 재임 중이었던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은 NH농협금융 회장에 내정된 상태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한국에서는 기업이 쓰러질 때 그 파급효과를 우려해 금융당국이 적극 개입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좀비 기업이 더 양산되고 있다”며 “금융사의 위험을 줄여야 하는 당국이 오히려 잘못된 구조조정으로 금융 부실을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송충현 기자
#정치금융#성완종#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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