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고용 화답하라”… 당근-채찍 병행해 기업 길들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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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경기부양-비리척결’ 이중 메시지]

정부가 20일 장관급 회의에서 기업 친화적인 재정 정책을 내놓고, 같은 시간 차관급 및 1급 회의에서는 기업 부패 척결을 강조한 것을 두고 경기 부양 정책에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경제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대기업 수사 소식 등으로 인해 정부 정책의 무게가 당근보다 채찍에 실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가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의 여유가 있는 기업들을 움직여 경기를 띄우려는 정부 의도와 달리 기업 활동이 얼어붙어 투자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정부, 기업 모두 헷갈리는 이중 메시지

이날 정부가 ‘기업 투자 유도’와 ‘기업 부패 척결’이라는 극단의 메시지를 동시에 던진 것은 최근 정치 경제 상황이 그만큼 힘들다는 방증이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부터 46조 원의 재정을 순차적으로 투입해 경기회복에 집중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여기에 기업소득환류세제, 임금 인상 정책 등으로 가계의 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 회복을 추진했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자 부패 척결 카드를 꺼내 국정 전반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월 말에 대통령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지자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역대 정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재벌 때리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염려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청년 취업을 늘리겠다, 중동 붐을 전문직 취업의 돌파구로 삼겠다, 재정 조기 집행을 하겠다, 민자 유치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등 대책을 무더기로 쏟아 냈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만큼 나랏돈을 선제적으로 투입해 민간 투자를 끌어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 지난해 12월 이후 석 달 만에 부양책을 또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기업이 적극 호응하지 않으면 효과를 내기 어렵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 기업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정책에 맞장구를 치라’라는 직접적 메시지를 기업에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사정기관들은 이미 구체적인 조사 계획까지 세웠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기업의 자금 세탁, 정보 유출, 주가 조작에 집중해 성과를 내기로 했다. 국세청은 기업 자금 유출, 편법 상속과 증여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검찰은 불법 비자금, 방위산업 및 해외 자원 개발 비리 수사를 지속하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공기업이 지역과 유착된 ‘토착 비리’를 캐는 데도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 살리기가 마음대로 안 되자 부패 척결 쪽으로 국민의 시선을 돌려 국정 운영의 고삐를 죄겠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평했다.

사정 바람이 갑자기 몰아치는 상황에 대해 정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 부처의 한 관료는 “이런 식의 기업 조사는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 기업은 ‘불안, 불만, 당황’

부패 척결 방침에 대해 정부는 “비리의 환부만 제거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한다. 부정부패가 심하면 자금의 흐름이 왜곡되고 시장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경기 부양과 부패 척결이 동시에 추진되는 상황에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 A 씨는 “3% 성장률을 이어 갈 수 있을지, 아니면 고꾸라질 것인지 기로에 선 때에 전방위적 사정을 왜 벌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부터 줄인다”며 “포스코 등 조사 대상에 오른 기업들은 당장 투자 계획을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체 관계자 B 씨는 “고용 창출, 임금 인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현재의 사정 정국은 기업들을 오히려 움츠러들게 하고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들이 앞으로 달리게 정부가 격려해 줘야 하는데 오히려 칼을 들고 위협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경기 부양책이 반부패 드라이브 때문에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C사 관계자는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부양책을 써 왔는데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부패 척결 논의로 실효성이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부패 척결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기업이 정부 정책에 일시적으로 동조해 임금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투자를 줄이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 / 김지현·고성호 기자
#경기부양#비리척결#이중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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