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한기흥]MB가 중용한 ‘똥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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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흥 논설위원
한기흥 논설위원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08년 3월 17일 4성 장군 인사를 단행했다. ‘합동참모의장 김태영,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이성출, 육군 참모총장 임충빈, 해군 참모총장 정옥근….’ 군(軍)에서 노무현 컬러를 지우는 대대적 물갈이였다. 강력한 대북 안보 태세를 다질 최적임자들을 나름으론 고르고 또 골랐다.

그렇게 심사숙고해 뽑은 정 전 해참총장이 어이없게도 지난달 31일 구속 수감됐다. 2008년 10월 STX로부터 모두 7억7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다. STX가 미사일 고속함 등을 대거 수주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보고 있다. 앞서 그는 재직 중 장병들에게 써야 할 해군 복지기금 5억2000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2011년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정보함 납품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정황이 최근 추가로 드러나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해군의 불명예를 넘어 국가의 수치다. 이 전 대통령이 도대체 뭐에 꽂혀 이런 사람을 중용했는지, 국민에게 해명하고 사죄하는 게 옳다.

정옥근에 대한 배신감이 증폭되는 건 그가 군납 비리를 양심선언한 김영수 전 해군 소령을 오히려 비난했던 기억 때문이다. 김 전 소령은 육해공군 통합 기지인 계룡대 근무지원단에서 간부들이 최소 9억4000만 원의 혈세를 빼돌린 사실을 2006년 군 수사기관에 신고했다. 그러나 번번이 기각당하자 결국 2009년 10월 TV에 출연해 비리를 고발했다.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옥근은 김 전 소령의 폭로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태연히 답했다. “지금 군인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고 자기 일신을 위해서 그런 책임 없는… 그런 사람의 말을 빌려서 그것이 마치 사실인 양 해군이 매도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별 넷을 단 도둑이 올곧은 소령을 매도했으니, 그야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 아닌가.

김지하가 담시(譚詩) 오적(五賊)에서 군 장성을 장성(長猩·큰 오랑우탄)이라고 야유한 것도 부패한 장성을 보고 의분이 끓었기 때문일 것이다.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 먹고…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이런 장성이 진화한 게 정옥근이다.

이 전 대통령은 최근 회고록에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으로 장병 46명이 희생된 데 대한 안타까움을 거듭 토로했다. 정옥근이 임기를 채우고 예편한 지 1주일 만에 터진 이 사건을 되돌아보니 그때 해군의 위기대응이 왜 그리 부실했고, 사후보고도 엉터리였는지 알 만하다. 썩은 장수 밑에서 강한 전투력이 나올 리 없다.

MB정권 때 북한은 핵실험, 미사일 발사, 연평도 포격 등 고강도 도발을 일삼았지만 우리 군은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 오명을 뒤집어썼으나 궁극적인 책임은 군 통수권자인 이 전 대통령에게 있다.

이 전 대통령이 군을 잘 몰라 깜냥이 안 되는 이들에게 안보를 맡긴 과오를 회고록에서 솔직히 인정했더라면 역시 군을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외부의 감시와 검증이 쉽지 않은 군 요직에 지금은 정말 사심 없는 용장들만 있는지, 박 대통령이 깐깐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말로만 ‘충성’하는 ‘똥별’들에게 속아 또 다른 ‘장성(長猩)’들이 군을 망칠까 걱정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이명박#정옥근#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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