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사 나갑니다” “ㅋㅋ”… 보도 하루前 문자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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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수사결과 발표]檢이 밝힌 유출-보도 경위

“드디어 내일 기사 나갑니다.”(세계일보 A 기자)

“ㅋㅋ”(박관천 경정·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세계일보 2014년 11월 28일자 ‘비선 실세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은 사실’이라는 보도가 나가기 전날 A 기자와 박 경정이 나눈 문자메시지를 검찰이 파악한 내용이다.

강원 홍천에 은거 중인 정 씨가 매월 2회 상경해 서울 강남 J중식당에서 이른바 ‘십상시’와 만나 국정에 개입한다는 경천동지할 내용이 일간지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되자 정국은 쇼크 상태에 빠졌다. 검찰엔 즉각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하지만 5일 나온 수사결과는 이 보도 내용과 정반대였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아니라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53)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57)의 비선을 자처하다 불구속 기소됐다.

○ 허위 문건 ‘유출’은 사고 성격 짙어

검찰은 문건 내용이 날조 수준에 가까운 허위라고 결론 냈다. 문건에 언급된 ‘십상시 모임’ 자체가 없었고, 이를 전제로 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설을 퍼뜨리라’는 등 문건에 나오는 정 씨 발언도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회동 장소로 지목된 J중식당 대표와 지배인을 조사하고 전 지점의 예약 장부를 확보했으나 정 씨를 포함한 고소인 중 어느 누구도 이 식당을 방문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또 최신 통합디지털증거분석시스템(IDEAS)을 이용해 정 씨의 최근 1년간 통신 내용과 이른바 십상시로 지목된 청와대 인사들의 업무용 및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놓고 발신기지국 위치, 상호 간 통신 내용, 통화상관관계 분석, 차명전화 사용 가능성까지 점검했으나 접촉 사실을 찾지 못했다. 일부가 모임을 가졌다고 볼 만한 정황도 없었다.

정 씨와 3인방의 대포폰이나 차명전화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시사저널 및 세계일보의 정 씨 관련 보도를 계기로 나눈 전화에서도 정 씨의 본인 명의 전화가 이용됐다.

검찰은 “홍천과 횡성에서 발신한 기록은 1년간 총 4회에 불과해 정윤회 문건 중 ‘정 씨는 현재 강원도 홍천 인근에서 은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부분도 역시 허위로 판명 났다. 발신지 분석 결과 정 씨 거주지는 서울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문건이 보도되자 청와대는 문건 작성자인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을 유출자로 의심했다. 3인방과 정 씨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외부로 유출시켰을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은 ‘정윤회 문건’ ‘박지만 미행 보고서’의 작성 주체임에는 틀림없지만, 문건 유출을 의도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윤회 문건’은 박 경정이 지난해 2월 청와대 파견 해제 후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에 짐을 보관할 때 그의 짐 속에 있는 청와대 문건을 발견한 한모 경위(45)가 이를 무단 복사해 최경락 경위와 공유했고, 최 경위가 이를 세계일보 A 기자에게 건네면서 유출된 것. 박 경정과 A 기자가 보도를 ‘기획’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정국을 뒤흔든 비선 실세 개입 의혹 문건이 공개된 것은 일종의 ‘정보 참사’였던 셈이다.

이는 ‘정윤회 문건’ 보도 시기를 전후해 A 기자와 박 경정의 관계에서 엿보인다. A 기자는 보도 전 문건 작성자인 박 경정에게 지속적으로 접근해 사실관계 확인을 시도했고, 박 경정도 문건의 진위를 A 기자에게 확인해주지 않으며 밥과 술자리를 지속적으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A 기자도 “취재원은 진술 못해도 유출자가 박 경정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보도와 관련해 박 경정의 가담 범위는 ‘문건 보도 사실을 안 정도 또는 이를 방조한 수준’으로 결론 냈다.

○ “인사 갈등 직후 허위정보 집중 생산”

검찰은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인사(人事) 문제를 놓고 청와대 3인방과 갈등을 겪은 시기를 전후해 허위정보가 집중 생산됐으며, 이를 박지만 EG 회장에게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악성 작문(作文) 보고서가 박 회장에게 집중 전달된 시기는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월.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 파견 경찰관 인사 문제로 3인방과 갈등을 겪은 2013년 10월 또는 11월 직후다.

박 경정은 언론에서 “박지만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육영수 여사의 역할처럼 문고리(비서진)들을 견제해야 한다”고 했고, 조 전 비서관도 “권력 실세들을 감시하는 워치도그 역할을 충실히 하려 했는데 견제가 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정윤회 문건 수사결과#박관천#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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