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치영]정부정책이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

  • 동아일보

신치영 경제부 차장
신치영 경제부 차장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5월 정부 산하 중소기업특별위원회는 대통령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영세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했다. 생계가 어려운 자영업자를 돕는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 대책에는 황당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너도나도 자영업으로 뛰어들어 같이 망하는 걸 막기 위해 세탁, 제과·제빵, 미용 등 일부 자영업은 자격증을 따야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대책이 발표된 뒤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직장에서 쫓겨나 조그만 가게라도 차리려 했는데 자격증을 따란 말이냐”, “세탁소를 개업해 겨우 자리 잡았는데 나이 60에 무슨 자격증 공부를 하라는 건가”, “자격증이 필요한 건 책상머리에 앉아 이런 정책이나 만드는 공무원들이다”. 위원회가 5개 정부 부처와 5개월 가까이 작업을 해서 만든 대책은 며칠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정책 수요자인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4월 경찰청은 4색 신호등을 3색 신호등으로 교체키로 하고 서울 도심 주요 사거리에 3색 신호등을 시범 설치했다. 이후 이곳을 지나는 운전자들로부터 “도대체 언제 좌회전을 하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하지만 경찰청은 4색 신호등이 좌회전과 빨간색 정지신호가 함께 표시돼 혼란스럽고 국제표준에도 맞지 않는다며 교체 방침을 고수했다. 그러다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갈수록 늘자 경찰청은 결국 한 달 만에 방침을 철회하고 시범 설치한 3색 신호등을 철거했다. 역시 정책 입안 과정에서 정책 수요자의 의견에 귀를 닫은 결과였다.

동아일보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가 공동 기획한 대한민국 정책평가 프로젝트는 이처럼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정책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감시하고 체계적으로 평가하면 정책의 질이 전반적으로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올해 대표적인 정부 정책 40개를 선정해 국민 여론조사와 전문가 심층인터뷰 등을 거쳐 5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 40개 중 13개 정책이 2점대의 낙제점을 받았다. 잘된 정책과 미흡한 정책의 공통점을 분석해 보니 이들을 가른 기준은 ‘국민과의 소통’이었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인 정책들은 전반적으로 평가가 좋았고 그렇지 못한 정책은 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은 정책들을 보면 소비자 혜택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라면서도 정작 소비자 의견을 듣는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것이 있고, 명분은 좋았지만 서둘러 만드는 바람에 대(對)국민 홍보 절차를 무시하다 혼란을 자초한 정책도 있었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불통(不通)’ 정책의 문제점이 현 정부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평가에서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이런 불통 정책이 계속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책 입안자들이 국민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위’만 보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평가 과정에서 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정책 수립 단계에서 여론을 수렴하기가 쉽지 않다. 정책을 조용히 마련해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쩔 수 없는 공무원들의 생리”라고 귀띔했다.

정부 정책이 추진되다 중간에 좌초되면 적잖은 예산과 인력이 낭비된다. 그리고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막가파식’으로 계속 추진하면 두고두고 국민생활에 해악을 끼친다.

정부 정책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정책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국민이 감시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정부#정책#평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