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전국을 휩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상황 때문에 보건당국 이외에 농가들이 크게 고생했다. 종식 국면에 접어드는 듯 보였지만 9월에 전남 영암에서 다시 AI가 발생했고 11월에는 김제 종오리 농장에서 잇따라 발생했다.
최근에는 멀리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도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각국 방역당국이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AI가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질병이 된 이유는 경제적 피해와 인체감염의 우려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H5N8형 AI는 인체감염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피해는 상당했다. 500여 농장에서 1500만 마리에 육박하는 닭과 오리가 도살처분 됐다. 역대 최대의 사회경제적 피해였다.
지금까지 큰 피해를 초래한 고병원성 AI는 겨울철에 발생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겨울철새가 AI 발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매년 겨울이 오면 사람에게도 계절성 독감이 유행하듯,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기온과 습도가 낮아지면 생존 기간과 전파력이 크게 증가한다. 철새가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시기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활동성이 증가하는 시기가 겹치는 착시효과로 인해 마치 겨울철새가 AI를 가지고 온다는 믿음이 더 커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훈을 통해 보면 철새에 의한 바이러스의 전파보다는 감염된 농장 간의 이동과 같이 인위적 요인에 의한 바이러스의 전파가 주요 원인으로 평가된다. 철새와 가금의 접촉을 가능하게 하는 사육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고병원성 AI가 유행하는 이때, 철새와 가금 그리고 사육 농가를 모두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이상적인 해결 방안은 밀집 사육에 따른 새로운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출현을 막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축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시급하고 효과적인 방안은 가금과 철새 간의 접촉을 막는 농장의 생물보안을 강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가금 농장에서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유행한다고 해도 철저한 생물보안을 통해 가금과 철새의 접촉을 막고 농장 간의 전파를 막는다면 현재와 같은 AI의 대규모 확산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축산 폐기물과 상하수 처리 역시 두 집단을 완벽히 분리하기 위한 수준으로 관리돼야 한다. 물론 종오리를 관리하는 축산과학원에서의 발병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실적으로 이런 생물보안을 유지하는 것은 극히 어렵지만, 이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는 AI 바이러스에 의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이는 최소한의 대안이다.
특히 철새는 다양한 생물다양성을 보이는 자연 자원으로서 그 수가 감소했을 때 인위적인 회복이 극히 어렵다. 지금까지 AI 사태를 통해 큰 대가를 치른 만큼, 우리가 철새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알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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