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朴 대통령, ‘문고리 권력’ 싸고돌며 민심 돌릴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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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정윤회 동향 문건’으로 촉발된 비선(秘線) 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오래전에 곁을 떠나 연락도 끊긴 사람과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는 사람이 갈등을 빚고 국정 전횡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정윤회 씨와 박지만 EG 회장의 권력 암투설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았다.

박 대통령은 이번 문건 파문을 ‘실체 없는 국정 흔들기’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공직기강비서관실 산하 박관천 전 행정관이 보고서를 작성했는데도 김 실장은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태를 키웠으니 김 실장의 책임이 크다. 정 씨와 지만 씨는 미행설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인정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로 인해 나라가 흔들리게 된 상황에 대해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부터 가져야 했다. 그런데도 “저는 항상 비리를 척결하고 국민의 삶이 편안해지는 생각만으로 일한다”며 찌라시 탓만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지켜봐 달라”고 했지만 ‘터무니없는 얘기들’이라고 강조했으니 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난이 나올 것이 뻔하다.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박 대통령의 인식처럼 실체 없는 찌라시성 전문(傳聞)으로 결론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1999년 실체 없는 로비로 매듭지어진 ‘옷로비 사건’도 특정 지역·학맥으로 채워진 사정 라인의 인사 때문에 국민이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하고 특검까지 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파문 역시 박 대통령의 비밀주의와 불투명한 인사, 1인 국정 운영 스타일 때문에 커졌다는 점을 왜 인식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비선이니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인사·국정 개입 의혹이니 하는 얘기 또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정부에서 장관, 비서관을 지낸 인사들의 입에서 나왔다. 이 정부 들어 계속된 ‘인사 참사’에 황당해했다가 이들의 폭로에 뒤늦게 내막을 알게 됐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인책론이 거론되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이른바 핵심 비서관 3인방의 거취 문제에 대해 어제 박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계속 한배를 타고 갈 작정인 듯하다. 박 대통령은 김 실장을 포함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비판을 받는 3인방 퇴진 같은 청와대 쇄신 없이는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고리#민심#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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