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메이지유신의 원동력은 신지식 축적한 海軍혁명”

김상운 기자 입력 2014-11-22 03:00수정 2014-11-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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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의 탄생과 근대 일본’ 펴낸 박영준 국방대 교수
일본 나가사키 항에 정박한 ‘간코마루’호. 1855년 일본 정부가 네덜란드 해군에서 도입한 군사연습용 함선이다. 저자 박영준 교수(작은 사진)는 일본 근대화 요인의 하나로 해군력 증강을 들고 있다. 박영준 교수 제공
섬나라 일본이 근대 초기 대륙침략의 첫 단추로 여긴 것은 해군력 강화였다. ‘해군의 탄생과 근대 일본’(그물)의 저자는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정부 초기까지 진행된 일본의 해군 창설을 추적해 근대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화를 다룬 수많은 연구가 나왔지만 이 책처럼 해군에 초점을 맞춘 것은 드물다. 사관학교 교관을 거쳐 현재 국방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경력이 독특한 연구를 가능케 했다.

―왜 하필 해군에 초점을 맞췄나.

“석사과정을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 사관학교에서 전쟁사를 가르쳤는데 자료가 주로 서구 전쟁사 위주였고 동아시아 전쟁사는 거의 없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아시아 전쟁사 연구를 했다.”

―육군이나 공군도 근대화가 이뤄졌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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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일본 근대화에선 해군력 증강의 사회적 파급력이 더 컸다. 당시 군함에 들어가는 산업적, 학문적 수준은 현대의 정보기술(IT)처럼 첨단을 달렸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도 목조 범선에서 철제 군함으로의 혁신이 1860년대에 일어난다. 바야흐로 ‘해군 혁명’의 시대였다.”

―일본 ‘해군 혁명’의 원인은 뭔가.

“원래 막부는 반란을 막기 위해 대선(大船) 제조를 금지했다. 하지만 막부 말기에 이르면 아시아로 밀려들어오는 서구 열강에 맞서기 위해 금지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결국 막부는 물론이고 지방의 번(藩)들이 독자적으로 대형 군함을 만드는 등 해군력 강화에 나섰다. 그러다 1853년 미국 페리함대의 출현으로 서구 군함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 우위에 섰다. 반면 우리나라에도 제너럴셔먼호 같은 이양선이 들어왔지만 이를 배척하는 데 급급했다.”

―당시 조선이나 청은 왜 해군 혁명에 성공하지 못했나.


“일본은 단순히 군함만 도입한 것이 아니다. 항해술과 지리학, 조선공학, 관료제 등 다양한 근대 지식과 제도를 꾸준히 축적해 나갔다. 반면 조선은 성리학 체계에 갇혀 새로운 지식 습득에 뒤처졌다. 중국은 1860년대에 근대적 해군 함대인 북양함대를 만들었지만 황제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전시용에 그쳤다. 이로 인해 예산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청일전쟁에서 북양함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간코마루#해군의 탄생과 근대 일본#메이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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