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견 말하면 집단의 公敵으로 몰아… 아예 입다물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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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탐사기획 프리미엄 리포트/강경파의 나라]
[강경파에 왜 휩쓸리나/‘숨겨진 다수’의 이야기]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 그룹 실험에서 강경파 도우미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나머지 피험자들은 말이 잠시 끊기거나 좀 더 오래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그룹에 있던 피험자들은 “(도우미가) 너무 세게 주장을 하고 들을 생각을 안 하니까 더이상 말하기가 싫었다”거나 “오히려 반발심이 생겨 동조하기가 싫어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인 집단 당사자들 사이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외부에 공개적으로 나서 의견을 내세우는 ‘주도파’와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이가 상당수였다. 그 이유로는 집단의 공적(公敵)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반복적인 묵살에 의한 무기력함이 가장 컸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그동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숨겨진 이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 세월호 유가족 “우리 입장만 얘기할 때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유가족 A 씨는 “집행부가 주도하는 유가족 총회에 참여율이 적어지고 있다. 다른 부모들은 ‘너무 힘들다. 끝내자’는 소리도 한다”고 말했다. 기존 집행부의 사퇴로 9월 21일 학부모 총회가 열렸지만 새 집행부는 사실상 ‘추대’되다시피 했다는 게 A 씨가 느낀 인상이었다. 대변인 후보로 3명이 나왔지만 이미 분위기는 앞 선에 앉은 이들에 의해 기존 유경근 대변인이 유력한 쪽으로 흘렀다. 결국 나머지 후보 2명은 중간에 기권했고 대변인은 표결 없이 재선출됐다.

희생된 단원고 교사 유가족 B 씨는 “저는 학생 유가족이 아니기도 하고, 대표 분들이 앞에서 정한 것들을 그냥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각 유가족들은 자기 반 학부모들의 얼굴만 겨우 알 뿐 다른 부모들은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표를 뽑아야 했다. 결국은 앞에 나선 각 반 대표가 추천하다시피 하는 이들이 선출됐다. 일반 학부모들의 ‘현실적인 절충안’은 총회에서 자주 묵살되거나 공개 비판을 받았다.

A 씨는 “부모 중 3분의 1은 ‘집행부가 국회로, 청와대 앞으로 여기저기 너무 끌고다녔다’고 생각한다”며 “사회는 결국 함께 살아갈 곳이고, 우리도 이제 제정신을 차리고 현실적인 항의를 해야 하는데 앞에 나선 분들은 너무 자기 입장만 이야기하니까… ‘우리들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당신들이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 공무원 “연금개혁 필요하지만…”

최근 연금개혁 토론회가 거센 반발 속에 무산되는 등 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공무원 사회 안에서도 침묵하는 이들은 있었다. 지방 공무원 김모 씨(48)는 “국가 재원이 고갈되는 일에 공직자로서 현실적인 연금개혁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간 낮은 월급을 받고 이제 퇴직 수혜만 남겨둔 세대 앞에서 이런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직장 안에서 동료들끼리 이런 얘기를 하면 10명 중에 3명 정도는 동의를 하는데도 막상 공개적으로는 누구도 나서지 못한다. 노조가 거세게 이끌고 가는 분위기에서 조직 내 왕따나 공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김 씨는 덧붙였다.

올해 행정고시에 합격한 일부 예비 사무관도 “고시 준비할 때부터 이미 연금 혜택이 약해질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며 연금개혁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예비 사무관 C 씨(26)는 “공무원 노조를 심정적으로는 응원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사실 현재의 공무원 연금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데 동감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 쌀 전업 농민 “우리 지역 농민은 관세율 찬성”

올해 말이면 쌀 관세화 유예조치가 종료돼 시장이 개방된다. 최근 ‘고춧가루 사태’ 등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관세화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일반 농민은 현재 관세가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현 관세율 513%는 10여 년을 이어온 정부와 농민 측 의견 조율 끝에 어렵게 찾은 합의점이라는 인식이 컸다. 충북 진천 농민 김동규 씨(64)는 “수년간 정부와 협상해왔고 고투 끝에 내놓은 안에 대해 ‘우리만 살자’고 무조건 관세화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우리도 처음엔 관세화 반대가 최선인 줄로만 알았지만 그게 임시 바람막이는 될 수 있을지라도 침체한 한국 농업에 기본적인 개혁안은 되지 못한다. 800여 명으로 구성된 우리 지역 농민회 대부분은 이제 현실적으로 기울고 있다”고 김 씨는 말했다.

경남 거창에서 20년째 쌀 농사를 지어온 최홍구 씨(67)도 ‘양측 입장’이 골고루 농민들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언론에 주로 나오는 일부 농민 단체는 지역에 내려와서도 ‘정부가 농업 말살 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 물론 부분적으로 맞는 지적들도 있지만, 그들이 현재의 상황에서 살길을 찾아나가길 원하는 대다수 평범한 농민들의 심정을 모두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곽도영 now@donga.com·백연상 기자
#강경파#세월호#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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