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수]박승일의 유일한 소원

  • 동아일보

김상수 사회부 차장
김상수 사회부 차장
침묵이 대화보다 소중할 때가 있다. 박승일 씨(43)와의 만남이 그랬다.

농구선수 출신 박 씨는 루게릭병 환자다. 운동신경세포만 서서히 없어져 결국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질환이다. 우리나라에 약 3000명의 환자가 있다. 왜 발병하는지 모르고 치료법도 없다.

루게릭병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으로 불린다. 전신 마비지만 시각 청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감옥’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 자가호흡이 어려워 목에 구멍을 뚫고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기 때문에 말도 못한다. 박 씨는 2002년 처음 진단받은 뒤 13년째 투병 중이다.

26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 자택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의 눈은 맑고 또렷했다. 의사소통은 글자판을 통해 이뤄졌다. 자음과 모음이 있는 글자판을 보고 박 씨의 눈동자가 움직이면 문장이 이뤄졌다. 눈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눈동자와 눈꺼풀의 움직임으로 글자를 만들어내는 ‘안구 마우스’를 사용했지만 그것도 힘들어져 그만뒀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얼음물 샤워)’에 대해 물어봤다. 루게릭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캠페인이지만 그들의 고통도 제대로 모른 채 재미로만 흐른다는 비판이 있어서다.

“몇몇 분이 처음에는 정말 재미로만 하는 것 같아서 전 그래도 괜찮지만 다른 환우들이 상처를 받지 않나 그게 걱정입니다.” 그는 자기 대신 남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 루게릭병 환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뭔가요?” 이번 질문에는 글자판을 통해 그가 아주 길게 얘기했다. 20여 분 뒤 답변이 돌아왔다.

“사회적인 관심을 받으려고 그동안 무지 애써왔고 그로 인해 지금과 같은 기회가 생겼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보다는 금전적인 도움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기부금을 모으는 데는 우리가 하는 것보다는 기업이나 정부에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옆에 있던 어머니 손복순 씨(73)는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손 씨는 10여 년간 자식의 손발이 됐다. 루게릭병은 가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곁에서 하루 종일 돌봐줘야 하기 때문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한 명은 박 씨와 마주앉아 눈을 마주쳐야 한다. 박 씨는 필요한 게 있으면 오른쪽으로 눈동자를 굴려 상대를 부른다. 밤에 그가 잠잘 때에도 가족들이 3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박 씨의 누운 자세를 바꿔준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 알람을 맞춰 놓는다. 아예 집에서 먹고 자는 간병인도 두고 있지만 루게릭병 환자의 간병은 피를 말리는 일이다.

박 씨의 소원도 루게릭요양병원 건립이다. 가족들의 고통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승일희망재단’은 지난해까지 8억여 원을 모았다. 건립에 45억∼50억 원(토지비용 제외)이 필요하다.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계속돼 미국처럼 500억 원은 아니더라도 10분의 1이라도 모이면 올해 안에라도 지을 수 있어요. 그게 안 되면 제 평생에 짓는 걸 못 볼 수도 있죠. 요양병원 건축하는 걸 꼭 보고 싶어요.”

박 씨는 요즘 어머니에게 자꾸 복권을 사달라고 한다. 혹시라도 복권에 당첨되면 요양병원을 짓기 위해서다. 얼음물 샤워를 하는 분들이 박 씨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의 꿈을 이루게 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하는 뜻에서 이 글을 쓴다. 기부도 즐기면서 하는 게 뭐 어떤가. 하지만 그 즐거움이 결실을 본다면 더 큰 기쁨으로 이어질 것이다.

도움을 주고 싶은 분들은 승일희망재단(www.sihope.or.kr, 02-3453-6871)으로 연락하시기를….

김상수 사회부 차장 ssoo@donga.com
#루게릭병#박승일#아이스버킷 챌린지#승일희망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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