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전설의 중개상… 추억 속 정윤희를 깨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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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윤희 곡 담은 LP 복각해 재발매 ‘좌판뮤직’ 윤세운 대표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 정윤희. 가운데는 재발매된 정윤희 음반 표지. 가수에 비하면 가창력이 달리지만 20대 정윤희의 풋풋한 목소리가 담겼다. 두 곡은 당시 소설가 고 최인호가 정윤희를 위해 작사했다. 동아일보DB·열린음악 제공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 정윤희. 가운데는 재발매된 정윤희 음반 표지. 가수에 비하면 가창력이 달리지만 20대 정윤희의 풋풋한 목소리가 담겼다. 두 곡은 당시 소설가 고 최인호가 정윤희를 위해 작사했다. 동아일보DB·열린음악 제공
‘종로좌판’과 ‘윤 사장’(57)이 언론에 노출된 적은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종로좌판’은 서울 종로에 존재하는 신기루여야 했으니까. 그 물리적 실체는 종묘공원 맞은편 세운상가 골목 초입에 간판도 없이 들어앉은 ‘한 평 반짜리’(약 5m²) 가게다.

24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에서 만난 윤 사장.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24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에서 만난 윤 사장.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이 멋대가리 없는 무채색 구멍가게에서 총천연색 꿈이 팔려나갔다. 1980, 90년대 일본 헤비메탈 그룹 엑스저팬, 여성 듀오 윙크의 LP레코드며 지브리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레이저디스크(LD)는 까만 비닐에 싸여 마니아들 손에 들려 나갔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한참 전 일이다. 불법 거래였지만 당대의 ‘힙스터 문화’는 여기서 출발했다. 군 제대 후인 1980년부터 미8군과 대한해협, 세운상가를 떠돌며 ‘나카마’(일종의 중개상)를 하던 윤 사장은 ‘빨간 날’과 비 오는 날을 빼면 매일 오후 2∼6시 거기서 손님을 기다렸다. 인터넷 이전 세대의 심야 라디오 DJ, 음악평론가들이 선진 문물로 통하던 좁은 문이었다. PC통신, 인터넷 동호인 사이에서도 ‘그걸 구할 수 있는 곳은 종로좌판뿐’이란 덧글은 전설의 잠언이었다.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2길에서 만난 윤 사장은 손사래를 여러 번 쳤다. “이렇게 자세히 (기사가) 나가면 안 된다니까∼.” 그는 ‘윤세운’이란 가명을 내세웠다. 심야 라디오 DJ 전영혁 씨가 붙여줬다는 별명이다.

34년간 남의 물건만 떼다 팔던 그가 처음 직접 음반 제작에 나섰다. 올해 초 음반사 ‘좌판뮤직’을 차린 거다. 1호 음반은 1970년대 인기 배우 정윤희(60)의 것이다. “1975년 고교 졸업하고 혼자 (서울) 마포 대성극장에 갔어요. 포스터에 홀려 ‘욕망’이란 영화를 봤는데 처음 본 스크린 속 정윤희 씨 모습이 환상 같았죠.”

이후 윤 사장은 정윤희가 출연한 작품은 모조리 봤고 1977년과 1979년에 나온 정윤희 1, 2집 LP레코드며 그의 얼굴이 나온 잡지도 전부 모았다.

최근 LP레코드 바람이 다시 불고 부활, 들국화, 전람회의 LP레코드가 재발매되는 것을 지켜보며 윤 사장은 소장 중인 2만 장의 LP레코드 중에서 단 두 장을 꺼내들었다. 30년 전 사둔 정윤희 1, 2집에서 디지털로 음원을 추출했고 판권 보유자를 수소문해 재발매 계약을 맺었다. 음반사 열린음악과 함께 전문 스튜디오에서 음질 보정을 하고 독일 레코드 공장에 의뢰해 판을 찍어냈다.

그는 “올해가 정윤희 씨 환갑이다. 꼭 본인에게 전달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윤희가 1984년 조규영 당시 중앙산업개발 회장과 결혼하며 연예계에서 은퇴한 뒤에도 윤 사장은 그의 복귀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윤 사장은 좌판뮤직 2호 음반으로 영화 ‘별들의 고향’ 사운드트랙을 올가을 재발매할 계획이다. “잊힌 가요 명반을 차근차근 부활시키는 게 꿈이에요.” 왜? 1968년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황금기를 보냈지만 1990년대 용산전자상가, 2000년대 인터넷 쇼핑에 밀린 세운상가 좌판을 아직까지 지키는 이유로도 윤 사장은 같은 답을 내놨다. “추억, 의리…. 저곳에 가면 아직 그 물건이,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그런 것 때문 아닐까요.”

정윤희 1, 2집에서 정윤희가 직접 부른 8곡만 발췌해 LP 1장에 담은 ‘정윤희-왜 내가 슬퍼지나요/목마른 소녀’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에서 구입할 수 있다. 500장 한정판이다. 문의 02-322-4307 열린음악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정윤희#세운상가#좌판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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