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이끈 판 할 감독의 검은 손가방
각종 자료 빼곡 경기중 항상 지참, 멕시코전 9분만에 수비위치 변경
후반 선제골 먹자 포메이션 바꿔… 막판 투입 휜텔라르, PK 결승골
GettyImages 멀티비츠
“검정 마법 상자예요.”
네덜란드 루이스 판 할 감독(사진)이 경기를 나설 때마다 항상 가지고 나오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검은색 가죽으로 만든 크고 납작한 손가방이다. 경기 중에도 틈틈이 손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메모를 한다. 학구적인 분위기까지 풍긴다. 다른 감독들이 맨몸으로 벤치에 앉아 지시를 내리는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네덜란드 취재진은 “판 할 감독의 전술은 모두 손가방 안에서 나온다. 우리도 무엇이 들어 있나 궁금하다”고 말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판 할 감독의 마법 상자가 빛을 발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30일(한국 시간) 브라질 포르탈레자의 카스텔랑 경기장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네덜란드의 두 골은 종료 직전과 추가시간에 나왔다.
이날 날씨는 네덜란드의 편이 아니었다. 기온은 32도에 습도마저 70%에 달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였다. 이런 날씨는 네덜란드 선수들이 겪어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네덜란드는 경기 초반 조별리그 때와는 달리 물 먹은 솜처럼 느린 움직임을 보였다. 반면 멕시코는 자국 날씨와 비슷한 환경 속에 펄펄 날아다녔다. 하지만 날씨도 판 할 감독의 지략을 이기지는 못했다.
“역전승이야” 깃발 차기 세리머니 멕시코와의 월드컵 16강전 후반 교체 멤버로 투입된 네덜란드의 클라스얀 휜텔라르가 후반 추가시간에 아리언 로번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뒤 날아서 코너 플래그(깃발)를 걷어차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후반 42분까지 0-1로 뒤지던 네덜란드는 경기 막판 두 골을 몰아넣으며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뒀다. 포르탈레자=GettyImages 멀티비츠첫 번째 눈에 띄는 지시는 경기 시작 9분 만에 나왔다. 중앙 미드필더 나이절 더용이 부상을 당하자 판 할 감독은 지체 없이 수비수 브루누 마르팅스 인디를 투입했다. 왼쪽 풀백 디르크 카위트는 중앙 미드필더로 이동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준비했다는 듯 곧 안정감 있게 경기를 펼쳐나갔다.
두 번째 지시는 후반 3분 히오바니 도스산토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뒤 나타났다. 그 전까지 줄곧 사용했던 3-5-2 포메이션 대신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이와 함께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 멤피스 데파이가 투입됐다. 이후 네덜란드는 공격에 활기를 띠며 멕시코 골문을 수차례 위협했다.
세 번째 지시는 ‘쿨링 브레이크’ 때 나왔다. 이날 전반과 후반 30분을 조금 넘은 시점에 선수들이 경기를 잠시 멈추고 땀을 식히며 물을 마시는 휴식 시간인 ‘쿨링 브레이크’가 주어졌다. 이번 월드컵 첫 공식 ‘쿨링 브레이크’다. 농구의 작전타임처럼 선수들이 벤치로 몰려가 물을 마시는 동안 판 할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이때 네덜란드 공격의 선봉장인 로빈 판페르시가 빠지고 클라스얀 휜텔라르가 그라운드에 나섰다.
판 할 감독의 전술은 적중했다. 휜텔라르는 후반 43분 베슬레이 스네이더르의 동점골을 도왔고 후반 추가시간에 아리언 로번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판 할 감독은 경기 뒤 “우리는 물을 마시는 휴식 시간을 전술 시스템을 수정하는 기회로 활용하며 플랜 B를 가동했다. 이번 경기에서 모두 3번의 다른 전술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이번 월드컵 4경기에서 모두 12골을 넣었다. 이 중 후반에 터진 골은 10골로 교체 선수가 도움을 주거나 직접 골을 넣은 것이 6골에 달한다. 판 할 감독의 ‘검정 마법 상자’에서 나온 결과다. 판 할 감독은 경기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모두 받고 일어나기 전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오늘 한 거 잘 봤죠?” 넘치는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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