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오바마의 ‘피벗 투 아시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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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국제부 차장
김영식 국제부 차장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의 외교 전략인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에서 그를 만났을 때 들은 얘기다. 미국 민주당 정권인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사를 지냈던 인사가 같은 민주당 정권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두고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그는 “피벗 투 아시아가 중동으로부터 벗어나 아시아에 다시 집중하고, 중국을 다루기 위한 틀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피벗 투 아시아 혹은 ‘리밸런싱(re-balancing·아시아 재균형)’이라고 불리는 외교 전략의 실체가 아직은 모호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이 러시아와 대치하고, 이란 핵문제가 난항을 거듭하면서 피벗 투 아시아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 이어 25일 한국을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순방은 안보 공약을 재확인함으로써 동맹과 우방국의 우려를 씻는 기회일 수도 있다. 물론 피벗 투 아시아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현지 실태를 확인하는 현장학습의 성격도 포함됐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라는 현장에는 곪아 터지기 직전의 이슈가 많다. 일본의 퇴행적인 과거사 왜곡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중국의 감성적인 대일(對日) 대응전선 형성→한국과 동남아 국가의 공감이라는 사이클이 만들어지는 현실은 미국의 피벗 투 아시아 전략의 착근(着根)을 어렵게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을 하루 앞둔 21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22일에는 내각 각료와 국회의원 147명이 집단으로 신사를 참배했다. 24일 미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야스쿠니신사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베 총리는 “국가를 위해 싸운 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라며 판에 박힌 대답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시선은 아래로 향했고 표정은 어두웠다. 국빈방문과 정상회담이라는 특성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쓴소리를 못했겠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는 장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이, 그의 침묵이 결과적으로는 일본 극우세력의 행보를 간접적으로 인정해준 셈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발적인 역사 왜곡 행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주요 협력자로 이끌어 내려는 큰 틀에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미국의 장기적인 국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내세우는 피벗 투 아시아의 원조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5월 급격히 떠오르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피벗 투 아시아를 강조하며 제7함대를 샌디에이고에서 진주만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말로는 강하게 외쳤지만 7함대의 전력 증강이나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결국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초래했고, 이는 미국의 참전으로 이어졌다.

또 다시 피벗 투 아시아를 외치는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도 강해 보이지만 국방비 삭감이라는 환경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나오지는 않고 있다. 미국이 경제적인 이유로 아시아 문제를 일본에만 맡겨두면 되는 손쉬운 문제로 생각하면서 말로만 피벗 투 아시아를 외치다간 역사의 실타래로 꼬인 아시아 지역 정세를 악화시킬 수 있다. 미국이 피벗 투 아시아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일본의 역사 왜곡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은 아시아 국가 간 갈등의 소용돌이에 묻혀 슈퍼 파워의 지위뿐만이 아니라 영향력까지 잃을지도 모른다.

김영식 국제부 차장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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