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스토리텔링 in 서울]민초의 恨-역사 아픔 서린 ‘통곡의 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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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만에 시민품으로… 중구 광희문

“광희문 지켜라” 합동 소방훈련



19일 오후 서울 중구 광희문에서 소방대원들이 합동소방훈련을 하고 있다. 시신이 드나든다 하여 ‘시구문’이라고도 불렸던 광희문은 수백 년 동안 이 땅의 아픈 역사와 수많은 죽음을 묵묵히 지켜봤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광희문 지켜라” 합동 소방훈련 19일 오후 서울 중구 광희문에서 소방대원들이 합동소방훈련을 하고 있다. 시신이 드나든다 하여 ‘시구문’이라고도 불렸던 광희문은 수백 년 동안 이 땅의 아픈 역사와 수많은 죽음을 묵묵히 지켜봤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지하철 2·4·5호선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3번 출구로 나오면 한양도성 4소문(小門) 가운데 하나로 동남쪽 성문인 ‘광희문(光熙門)’이 반갑게 손짓한다. 그동안 철책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불가능했지만 지난달 정비를 마치고 39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광명의 문’이라는 뜻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문의 역사는 어두웠다. 청계천(오간수문)·이간수문이 가까워 수구문(水口門), 도성의 장례 행렬이 통과하던 문이어서 시구문(屍軀門)으로도 불렸다. 이 때문인지 광희문 밖 일대는 공동묘지가 자리 잡고 무당이 많이 살아 ‘신당(神堂)’이라 불렸다. 이를 갑오개혁 때 발음이 같은 ‘신당(新當)’이라 고쳤는데, 이곳이 지금의 중구 신당동이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가던 길에 황급히 광희문으로 빠져나갔다. 1800년대 천주교 박해 때에는 천주교인들의 시체로 산을 이뤘다. 양반 계급 신자들이 주로 순교한 새남터, 서소문, 절두산과 달리 이곳에선 이름 없는 민초들이 죽음을 맞았다. 1880년대 후반 서울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는 전염된 사람들이 문밖에 산 채로 버려져 생지옥을 연상케 했다.

광희문은 국권 상실의 상처가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면서 시내 곳곳에서 시가전이 벌어졌다. 일제는 사망한 조선군 시신 120여 구를 광희문 밖에 늘어놓고 가족들에게 찾아가도록 했다. 이 때문에 광희문 앞에선 며칠간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광희문은 숱한 아픔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봤다. 오죽하면 ‘한양 가면 시구문 돌가루를 긁어오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아무리 지독한 병마라도 수많은 원귀에 단련된 시구문에는 못 당할 것이라 하여 ‘시구문 돌가루’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옛 사람들의 믿음이 슬프면서도 섬뜩하다.

광희문은 일제강점기에 문루가 망가졌다가 1975년 문을 남쪽으로 옮겨 문루와 함께 복구했다. 지난달부터는 연중무휴로 24시간 개방되고 있다. 2층 문루 내부는 서울 중구가 운영하는 문화유산탐방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매주 토요일 오후 2∼4시에 역사문화해설사와 함께 광희문 내부를 관람하고 인근 흥인지문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둘러볼 수 있다. 중구 홈페이지(www.junggu.seoul.kr)의 문화관광 메뉴로 들어가 신청하면 된다.

서울시는 12월까지 한양도성 무료 해설투어 ‘도성 길라잡이와 함께하는 한양도성투어’를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30분∼5시에 진행한다. 매달 4개 코스를 주별로 돌아가며 진행한다. 1주차 ‘광희문∼숭례문’, 2주차 ‘숭례문∼창의문’, 3주차 ‘창의문∼혜화문’, 4주차 ‘혜화문∼광희문’을 방문하며, 매회 80명씩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한양도성 홈페이지(seoulcitywall.seoul.go.kr) 참조.

시가 발간한 한양도성 스토리텔링 북 ‘이야기를 따라 한양도성을 걷다’를 보면 광희문 이야기를 포함해 한양도성에 관련한 이야기 100가지를 접할 수 있다. 이야기지도를 따라 광희문이 포함된 낙산·흥인지문 구간을 걷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문의 서울스토리 홈페이지(seoulstory.org), 서울시 관광정책과 02-2133-2817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광희문#통곡의 문#동대문 역사문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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