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지역신문에 파업 우려 호소문 낸 김 철 울산상의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현대차 노조 이대로 가면 울산경제, 한국경제 다 망합니다”

지난달 28일 울산 남구 울산상공회의소 응접실에서 만난 김철 회장은 인터뷰 내내 파업으로 인한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의 손실을 걱정했다. 울산상공회의소 제공
지난달 28일 울산 남구 울산상공회의소 응접실에서 만난 김철 회장은 인터뷰 내내 파업으로 인한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의 손실을 걱정했다. 울산상공회의소 제공
공장 안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할 컨베이어벨트는 멈춰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주인 없는 공구들만 나뒹굴고 있었다. 멈춰선 생산라인 대신 공장 밖 도로에는 ‘2013 임단협 투쟁쟁취’ 같은 노조의 플래카드만 어지러이 걸려 있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국내 최대 자동차 생산기지인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사측과의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 갈등으로 이날 4시간 부분파업에 들어간 공장 안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부분파업으로 모두 귀가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20일부터 이날까지 아산 전주 울산 3개 공장을 포함해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2시간, 4시간 부분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 측 집계에 따르면 이날까지 부분파업으로 2만3000여 대의 생산 차질을 빚었고 손실액은 약 4900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1, 2, 3차 협력업체와, 협력업체와 관계를 맺은 중소업체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훨씬 크다. 하지만 공장 내부에서 이런 상황을 걱정하는 모습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작 안달이 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김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67)이다.

김 회장은 지난달 21일 울산 지역신문에 노조의 파업을 우려하는 호소문을 냈다. ‘현대차 노조가 세계 자동차업계 최고 수준인 임금을 받으면서도 파업 투쟁만 한다, 미국 디트로이트 시의 흥망성쇠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울산 남구 울산상공회의소 응접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마치 자신의 일인 듯 “내가 몸이 달았다”며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울산이 파산한 디트로이트 시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 “도시 슬럼화 디트로이트 시를 보라”

우선 그의 디트로이트 시 방문 이야기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말이다.

“파산한 디트로이트 시를 6월 중순 노사민정 대표 15명과 함께 방문했다. 한때 180만 명이 살던 도시가 지금은 70만 명 정도로 줄었고 도시 곳곳이 슬럼화됐다. 불 꺼진 건물이 부지기수고, 어떤 주택은 ‘1달러에 판다. 세금은 5년 뒤부터 낸다’는 문구까지 붙어있었다. 그런데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건물 관리가 안돼 어떤 집은 아예 불태워지기까지 했다. 마약중독자와 부랑자들의 소굴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디트로이트 시가 망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1차적으로는 자동차산업이 침체된 것이 주 원인이지만 산업 변화에 회사와 노조 모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의 경쟁력은 생각하지 않고 임금, 복지 같은 부분에서 더 얻을 생각만 했다. 퇴직자들에 대한 건강보험료를 복지비용으로 부담했다고 한다. GM 등 3대 자동차회사 노조가 다 그랬다. 회사가 잘될 때야 상관없었겠지만 산업이 침체되면서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그는 “현지에서 노조 측 대표인 전미자동차노조(UAW) 관계자들도 만났다”고 했다.

“UAW 사무총장에게 ‘왜 이렇게 어려워졌느냐, 노조는 왜 그렇게 (경영진에) 무리한 요구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하더라.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건강하고 생산성이 높은 일터가 필요하고, 그런 회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해 회사 살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2015년까지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관련 근로자 평균 임금이 3만5000∼6만 달러 정도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3800만∼6600만 원 정도다. 현대차에 비해 상당히 낮은 임금(현대차 평균 연봉은 노조는 8000만 원, 회사 측은 9400만 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인데도 임금보다 회사의 재기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울산도 디트로이트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그는 내내 안타까운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격이고,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었기 때문이란다.

○ 인도 첸나이공장 근로자 임금 月70만원


그는 디트로이트에 이어 현대차 공장이 있는 인도 첸나이를 해외 판로 개척단을 이끌고 방문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도 공장은 연간 63만 대를 생산한다. 그곳 근로자들은 월 평균 70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국내 현대차 근로자들의 약 6분의 1수준(잔업 및 특근수당은 별도)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임금도 싸고 생산성도 높은 곳이 있다면 그쪽으로 생산을 돌리는 것이 낫지 않겠나. 더욱이 파업이 잦아 생산 차질까지 빚는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올지 뻔하지 않은가. 일감이 줄면 사람을 안 뽑게 되고 결국 회사가 죽고 회사에 의지해온 지역경제가 죽는다. 그런 전철을 밟은 것이 디트로이트 아닌가. 울산에서 현대차 협력업체든 아니든 현대차의 영향을 받지 않는 회사는 별로 없다. 함께 간 노동계 인사 중에 돌아와서 울산의 노동운동이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칼럼을 언론에 쓴 사람도 있었다.”

“현대차 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이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구체적인 수치는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그나마 지금 알려진 것도 현대차의 직접 생산 차질에 따른 피해이고 협력업체나 협력업체와 관계를 맺은 중소기업들의 피해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울산에 현대차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4만여 명이나 된다. 현대차 직원은 정규, 비정규직을 포함해 3만4000여 명이다. 가족까지 생각하면 30만 명 정도의 생계가 걸린 문제다. 울산 인구가 118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현대·기아차와 관계된 협력업체 종사자가 약 34만 명이다. 현대차 파업이 한 회사와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전국적인 문제가 되는 이유다.”

○ 중소 협력업체들은 도산공포

그는 “현대차 노조 파업이 고임금 귀족 노조의 파업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는 기자의 말에 수긍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확한 임금 액수에 대해서는 회사와 노조의 주장이 엇갈리지만 임금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현대차 협력업체 종사자들의 평균 연봉은 380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같은 근로자 입장에서 이들도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들과의 격차에서 오는 이질감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노조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파업을 한다지만 그로인해 협력업체 등의 근로자들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면 당연히 임금이 줄지 않겠나. 파업으로 생산을 못하면 납품을 못하고, 돈을 못 받지 않은가. 큰 협력업체는 좀 낫겠지만 작은 협력업체에는 도산 위험까지 생긴다. 현대차 내부 노사 문제도 잘돼야 하지만 같은 노동자인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어려움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는 일명 ‘희망버스’로 넘어갔다. 그는 울산지역의 시민·사회·경제단체 등과 함께 ‘희망버스’ 반대 운동을 하기도 했다.

“2007년 울산지역의 102개 단체들과 함께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협의회(행울협)’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행복한 울산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현대차 파업은 외부 인사들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7월 20일에는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을 빚고 죽봉, 쇠파이프가 난무했다. 이런 방식으로 해결이 되겠나. 그래서 제발 오지 말라고 반대 운동을 한거다.”

현대차 노사의 임단협 협상은 5월 말부터 시작됐으며 노조는 세부조항을 포함해 180여 개의 요구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대학 미진학 자녀에게 기술취득지원금 1000만원 지급 △만 61세로 정년 연장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노조는 대학 미진학 자녀에 대한 지원금의 경우 대학생 자녀를 둔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학자금과의 형평성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워낙 비상식적인 일인 데다 설사 지급하더라도 추후 해당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 회수하기도 곤란하다는 반론이 있다. 노조는 또 △사내하도급 금지, 정규직만 채용 △정당한 조합활동을 이유로 어떠한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을것 등도 요구해 갈등을 빚었으나 워낙 여론이 좋지 않자 지난달 30일 이를 철회했다.

한편 회사 측은 △현대차 노조의 상급단체인 전국금속노조를 유일 교섭단체로 못 박은 단체협약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노조는 이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 현대차 파업에 외국 기업들은 웃는다

김 회장은 구체적으로 노조의 요구안이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에 대해 예상외로 말을 아꼈다. 자칫 희망버스처럼 개별회사 노사 문제에 상의가 개입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협상이 잘 타결돼 현대는 물론이고 지역경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매일 매일의 삶이 불안한 국민들 입장에서는 파업하는 노조를 보며 불매운동이라고 벌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하자 김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울산 안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조가 국민정서나 회사 경쟁력 같은 것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현대차가 값이 아주 싼 것도 아니고…. 진짜 국민의 마음이 떠나면 어떻게 하겠느냐. 파업이 길어져 손해가 커지고, 국민의 마음도 떠나고 그러면 누구만 좋아하겠나. 일본 독일 등 경쟁국들이겠지. 그들은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망하기를 바랄 것이다.” ―울산에서

● 김철 회장은

2012년 3월 울산시내 2000여 개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제17대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에 선출됐다.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협의회(행울협)’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울산상의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71개 상의를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종합평가에서 최우수 상의로 선정됐다.

인터뷰=이진구 오피니언팀 차장 sys120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