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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O2/커버스토리]도쿄 커피神 앞에서 무너지다

입력 2013-01-05 03:00업데이트 2013-01-0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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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가배무사 구대회 씨 日 커피명가 도전기 《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서울 마포구에서 작은 커피집을 운영하는 구대회 씨(39)의 일본 커피 수행(修行)기를 싣습니다.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커피의 세계에 빠진 구 씨는 지난해 12월 17∼27일, 일본 나가사키(長崎), 교토(京都), 도쿄(東京)의 30∼70년 된 카페들을 찾아 그곳의 장인급 커피장이들에게서 커피에 대한 애정과 철학을 느끼고 배워서 돌아왔습니다. 이름하여 ‘가배무사(武士·커피무사) 일본 수행기’입니다. 》
‘가배무사’ 구대회 씨가 일본 수행을 할 때 항상 들고 다니던 가배함을 그의 작은 카페에서 다시 들었다. 그는 우리나라 커피 시장의 이단아를 꿈꾼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나는 ‘가배무사’다. 가배함(函·커피상자) 하나만 들고 일본에 입성했다. 내가 디자인하고 친구 목수가 만들어준 가배함 속에는 직접 볶은 원두, 원두를 분쇄하는 핸드밀, 갈아낸 원두를 거르는 필터와 드리퍼, 서버(커피 주전자) 그리고 물을 따르는 포트가 들어 있다. 좋은 커피란 무엇인지, 맛있는 커피는 어떤 것인지, 커피에 입문한 지 만 5년이 갓 넘은 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자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드립커피 역사가 100년이 넘는 일본의 유서 깊은 커피집을 돌며 주인장에게 한 수 배움을 청한 것이다. 내가 직접 볶은 원두를 가지고 현장에서 직접 드립을 해 우려낸 커피가 제맛을 내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사전에 섭외도, 약속도 하지 않았다. 몸으로 부딪쳐 승부를 건다. 나는 가배무사다.

정(情)… 아버지 같은 주인장
가배함 내부. 드립커피를 내리기 위한 재료와 기구가 칸별로 담겨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7일 오후 2시경 나가사키 시내에 섰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서구 문물이 유일하게 드나들던 나가사키는 유럽의 드립커피가 일본에 첫발을 디딘 곳이다. 다리와 수면에 비친 그 모습이 안경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름 붙은 다리 ‘메가네바시(眼鏡橋)’를 지나 골목으로 약 50m를 들어가니 커피집 ‘남만차야(南蠻茶屋)’가 나왔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한 듯 고풍스러운 외관이다.

하얀 수염을 기르고 털실로 뜬 빵모자를 쓴 60대 후반의―나중에 알아보니 칠순이 넘었다―주인장이 커피를 직접 핸드드립으로 내려줬다. 나가사키에서 처음 마시는 커피는 기분 좋은 쓴맛이 났고, 목으로 넘어갈 때 부드러웠다. 입속에 가볍게 단맛이 남았다.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망설여졌다. 대뜸 “제 커피 실력을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주인장 나카무라 노리미 씨는 1980년부터 이 자리에서 남만차야를 운영해 왔다고 했다. 낮 12시부터 오후 11시까지가 영업시간이지만 마지막 손님이 자리를 뜰 때까지는 문을 닫지 않는단다.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열어 본 적도 있다고 했다.

그가 나무파이프 담배를 뻐끔뻐끔 빨며 말했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지만 이 안은 느리게 움직인다. 상처받고 지친 손님이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내 커피로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다.” 음악도 CD 대신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한다. 부드럽고 인간적인 것 같다고 했다.
▼ 나가사키의 情, 교토의 動, 도쿄장인 만난 뒤 “난 초보다” ▼

83년째 커피를 만들고 있는 도쿄 ‘카페 드 람브르’의 세키구치 이치로 옹이 커피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구대회 씨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다.(왼쪽) 일본 나가사키에서 30년 넘게 커피집 ‘남만차야’를 운영하고 있는 나카무라 노리미 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오른쪽 위) 교토 ‘이노다 커피’ 분점에서 젊은 바리스타가 커피를 추출 중이다. (오른쪽 아래) 구대회 씨 제공
결혼을 하지 않은 30대 딸과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밤에 와서 수금만 해가는(이 대목에서 그는 씽긋 웃었다) 아내와 같이 산다고 했다. 당신과 이야기를 할수록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1시간 반을 이야기하고 커피를 한잔 더 주문했다. 바 너머에서 커피를 건네주던 그가 비로소 가배함을 가리키며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물었다. 옳지!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를 말했다. 직접 이곳에서 내가 커피를 내리겠으니 맛을 평가해 달라, 서로 커피 퍼포먼스를 해보자고 했더니 의외로 흔쾌히 좋다고 했다. 다행이다. 나카무라 씨는 내일 보자고 했다.

다음 날 다시 남만차야를 찾았다. 이제 서로의 솜씨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그는 종이필터가 아니라 넬(플란넬·융이라고도 하는 얇은 모직물)로 커피를 걸렀다. 주전자를 쥔 왼손의 손목을 절묘하게 움직이고, 넬이 달린 채를 쥔 오른손은 나선을 그리듯 빙글빙글 돌리며 물을 따르고 커피를 내린다. 손과 주전자는 하나가 되어 절도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동작을 2분여 동안 만들어 낸다. 춤, 혹은 태껸의 동작을 보는 듯하다. 나도 질세라 커피에 집중하며 핸드드립을 해냈다. 그는 내가 내린 커피를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셨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커피에 대한 애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다음 날 중독된 듯 남만차야를 다시 찾았다. 나카무라 씨가 내려준 커피를 한잔 마시고 그에게 오늘이 나가사키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며 작별을 고했다. 가배함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그가 문 밖까지 배웅을 나왔다. 골목 끝에 이르러 뒤돌아보니 여전히 그가 손을 들고 서 있다. 뭉클했다. 나가사키에서 배운 것. ‘커피는 정(情)’이었다.

동(動)… 군중 속 커피 퍼포먼스
21일 교토로 향했다. 목적지는 ‘이노다 커피’. 나카무라 씨가 커피의 맛을 알려면 꼭 가봐야 한다며 추천해 준 곳이다. 그에 앞서 개점 50년이 넘었다는 ‘루쿠요사 기타텐’을 들렀다. 외국인 블로거나 여행가이드들이 추천하는 곳이다. 기대를 갖고 들어섰지만 실망이 먼저 다가왔다. 커피 장인의 숨결이 담겨 있다기보다는 시스템으로 만들어 낸다는 느낌이 강했다.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안 된다며 점원이 정중하게 주의를 줬다.

드디어 1940년 문을 연 ‘이노다 커피’ 본점을 찾았다. 본점은 손님이 바에 앉을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내가 솜씨를 펼치기 위해 바리스타와 눈을 맞추거나 이야기할 공간이 없다. 본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분점에 들어섰다. 15명이 앉을 수 있는 큰 라운드형 바가 눈에 띈다. 그 안쪽에서 바리스타 서너 명이 분주히 일을 한다. 나처럼 종이필터로 드립을 하는, 젊은 바리스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언제쯤 말을 꺼내야 할까 눈치를 살피는데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젊은 바리스타 앞에서 1시간여 주문한 커피를 마시다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이름은 기시야 겐코. 영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나도 커피를 한다. 내가 어떻게 커피를 만드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가능하겠는가?” 약간 눈이 휘둥그레지나 싶더니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했다. 잠시 뒤, 오케이!

가배함을 열고 원두와 기구들을 꺼내니 330m²(약 100평)도 넘는 점포에 와 있던 손님 20여 명의 시선이 집중된다. ‘뭐하는 거지?’ ‘재미있는 친구인데’ 같은 생각이 담겨 있을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진다. 드리퍼에 필터를 깔고 원두를 갈아 넣은 뒤 주전자로 물을 내렸다. 내 스타일에 맞게 약간 변형시킨 ‘동전 드립’을 선보였다.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왈칵 눈물이 나려고도 했다. ‘모양이나 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머릿속은 진공상태가 된 듯했다. 물을 내리는 2분여 동안 정말 한숨도 쉬지 않았다.

바리스타 기시야는 내 커피를 받아 들고 다른 바리스타와 같이 평가를 하기 위해 직원 사무실로 향했다. “쓴맛이 좋아요. 약간 신맛도 느껴지고, 마신 뒤에 단맛이 조금 나네요.” 마일드한 내 커피가 좋다고 했다. 약간 뿌듯해져 커피를 한잔 더 시켰다. 기시야의 드립 스타일을 찬찬히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남만차야에서 받았던 감동과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에 그의 손과 팔 동작은 뻣뻣했다. 저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에 약간 우쭐해졌다.

교토를 떠나 도쿄로 향했다. 꿈에 그리던 카페가 있는 곳.

경외… 무릎을 꿇다
‘카 페 드 람브르(Cafe de l'Ambre).’ 1948년 문을 연 이곳의 창업주 세키구치 이치로 옹은 98세로 여전히 주인이다. 이곳은 도쿄 지하철 긴자(銀座)역 5번 출구로 나오면 10분 거리에 있다. 50m²(약 15평) 남짓한 공간에 의자가 8개 있는 ‘ㄴ’자 모양의 바와 2인용 테이블 6개가 전부다. 명성에 비해 규모는 작다. 오직 커피만 판다.

하지만 커피를 갈고 물을 내리는 직원 4명의 솜씨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랍다. 보통은 주전자만 회전시키는 게 일반적인데 이들은 넬이 달린 채까지 회전시키며 때로 물의 양을 늘리고, 때로 뚝뚝 떨어지게 한다. 이 모든 동작이 군더더기가 없고 절도 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원두였다. 내가 고른 메뉴는 ‘cuba 74’라고 적혀 있었다. 설마 1974년에 쿠바에서 수확했단 말인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정말로 그렇단다. 상온에서 38년간 보관했고, 사흘 전에 볶았다고 한다. 할 말이 없다. 원두 18g을 써서 커피 70cc를 뽑아낸다. 내가 하는 방식보다 3배가 진하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약간 혀를 마비시키는 듯, 정말 숙성이 잘된 와인을 마시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주문한 커피는 ‘콜롬비아 54’. 58년 된 원두다. 커피를 마셔 보니 맛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잘 삭힌 홍어 같고, 묵은 김치 같다. 맛과 향이 배 안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입안을 가득 메운다. 어떻게 이 맛을 흉내 낼 수 있을까. 내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곳의 원두가 진검이라면 내 원두는 목검이 아닌가….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미련한 일이었다.

마키라는 바리스타에게 내가 온 취지를 설명했다. 매니저 하야시 후지히코 씨가 그 말을 전해 듣더니 내일 다시 올 수 없느냐고 했다. 창업주 세키구치 옹이 내일 나오니 그 앞에서 커피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인 25일 카페 드 람브르를 다시 찾았다. 83년간 커피와 살아온 세키구치 옹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나에게 핸드드립을 해보라고 했다. 2002년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에게 처음으로 내가 쓴 시를 보여드렸던 때가 떠올랐다. “자네 핸드밀은 입자가 고르지 않게 깎이지. 매장에 있는 전동 그라인더를 쓰게나.” 내가 커피를 추출하는 동안 세키구치 옹은 내 동작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받은 커피를 마셨다. “음…, 첫 맛은 좋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약간 좋지 않은 쓴맛이 느껴지네. (종이필터 대신) 넬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네.” 그는 나에게 충고를 해줄 때마다 “퍼펙트한 커피를 원한다면 말이지…”, “미안한데…”라며 최대한 자신을 낮췄다.

세키구치 옹은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운 다음 로스팅 룸으로 향했다. 예열해 놓은 로스터에 원두를 넣고 볶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허리는 굽고 어깨는 좁아지고 손을 떠는 98세 노인이 현업에서 아직도 커피를 볶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던 커피에 대한 개념이 산산조각 났다. 그동안 커피농장을 견학하고 커피에 대해 공부하고 카페를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배우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83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이 우려내는 장인의 커피 앞에서 나는 무너져 버렸다. 그의 조카인 하야시 씨도 그 아래서 35년째 배우고 있다고 했다. 나오면서 넙죽 큰절을 했다. 옆에 있던 마키가 90도 각도로 맞절을 했다. 세키구치 옹은 엷게 미소를 지었다. “카페라는 데는 이런 곳이라네”라고 말하는 듯했다.

에필로그… 초심
일본에 가기 전에 나는 왜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정성스레 만든 커피를 마시지 않을까 고민했다. 일본에 다녀오고 나니 이런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게을렀고, 간절함이 부족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세키구치 옹에게 작별을 고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 내 머릿속은 어지럽다. ‘저런 원두를 만들어 봐야지’, ‘저런 식으로 카페를 운영해야지’ 하는 다짐도 하게 됐지만, 반면 ‘10년을 하면 커피에 대한 개념이라도 잡히는 걸까’ 걱정도 된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겠다. 떠나기 전에 나는 일본행이 커피 기술을 배운다기보다는 커피에 대한 초심을 다잡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 무엇이었지? 그래,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야 말겠다.
▼ 유명직장 “재미없다” 사표… 아내와 14개월간 35개국 커피농장 훑어 ▼

● 서울 마포에 커피점 ‘카페꼬모’ 낸 구대회 씨의 인생반전


“잘하는데, 좋아지지는 않았어요.”

‘가배무사(武士)’ 구대회 씨(39)가 커피를 삶의 두 번째 길로 선택한 계기다. 서울 사립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과 투자자문사에서 나름 잘나갔다. 동기보다 몇 년 빠르게 승진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지가 않았다. 이렇게 늙어간다면 싫을 것 같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커피였다.

2007년, 회사를 그만두고 커피 관련 일을 하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말했다. “고등학교를 나와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하려고 해?” 그는 “나는 다르게 할 거야”라고 답했다. 그가 생각했던 ‘다르게 한다는 것’이란 커피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었다. 이후 2년여 커피를 배우면서 해봤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번에는 좋아지기는 하는데 잘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고민을 하다 정작 커피 관련 일을 한다고는 했지만 한 번도 커피나무를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벼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쌀장수는 없을 터다. 그렇다면 커피농장을 둘러보자. 그것도 전 세계의 것들을. “미쳤다”던 아내를 설득해 전세자금 2억 원을 뺐다. 1억 원은 돌아온 뒤 거주 및 생활자금으로 쓰기 위해 옛 전공을 살려 주식을 사뒀다. 아내와 둘이서 2009년 5월 출발해 1년 2개월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35개국의 커피농장을 찾아다니며 보고 또 봤다. 돌아오고 한 달 뒤 조그만 커피집 ‘카페꼬모’를 서울 마포구 구수동에 냈다. 그리고 2년여, 이번에는 무작정 일본 커피수행(修行)을 다녀온 것이다. 당돌하다.

그의 당돌함은 연원이 깊다. 2002년 어느 날, 고교 시절 법정 스님의 저서와 함께 무척이나 많이 읽었던 글의 저자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1910∼2007)을 무작정 찾았다. 삶의 멘토를 찾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무턱대고 114에 전화를 걸어 선생의 자택전화를 얻어 역시 막무가내로 걸었다. 덜컥 선생과 통화가 되고는 허락을 얻어 찾아뵈었다. 그러고는 선생이 작고하실 무렵에는 이미 노작가의 ‘어린 제자’가 돼 있었다.

“중학교 때는 유도를 해서 소년체전 충남대회에도 나갔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성악을 하고 싶어서 정식 레슨을 받기도 했습니다. 약간 기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평범하지 않음 때문일까. 그는 부잣집 아들 같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대학 다닐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네 군데나 해 학비에 보탰다. 종종 가게 문을 닫고 커피와 여행 강의를 하러 가거나, 이번처럼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문을 꽤 닫다 보니 ‘역시 돈이 많은가 보다’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월세 55만 원의 5평 남짓한 가게와 전셋집이 그의 자산 전부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어떻게 보면 제가 자신감이 있는 것이고, 또 달리 보면 그만큼 교만한 것일 테지요.”

그러나 그가 커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교만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커피 원두를 구입해서는 쭉정이를 일일이 손으로 골라낸다. 원두를 볶고 나서도 혹 너무 탔거나, 알맹이가 빠진 것들을 손으로 골라낸다. 그는 이런 정성이 언젠가는 인정을 받으리라고 믿고 있다.

그의 꿈은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맛있는 커피란 마시는 사람의 기분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맛을 결정짓는 비율로 보자면 대략 원두(생두) 90%, 볶기(로스팅)와 추출 9%, 그리고 마시는 사람의 기분 1%라고들 한다. 그런데 그 1%가 99%를 압도하는 때가 있다. 그가 집중하는 것도 바로 1%다. “우리 가게에 올 때 뭔가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저를 만나러 오는 것일 수도 있겠고, 어떤 스토리일 수도 있겠지요.” 그것이 바로 작은 커피집이 사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바리스타인 내가 만드는 것이니 마셔’ 하는 커피는 폭력적인 커피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커피를 그는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이 아니라 본사가 돈을 버는 구조 또한 마찬가지로 폭력적이라고 본다. “체인점 중심의 커피시장을 바로잡는 이단아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저부터 바로 서야 합니다. 끝없이 커피를 공부해야 합니다. 최고가 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커피수행으로 그는 긴 호흡으로 커피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30∼40년을 내다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행착오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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