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헤드윅’ 박건형, 능글맞거나 훈훈하거나 외롭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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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2일 11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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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건형. 사진ㅣ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배우 박건형. 사진ㅣ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더 예뻐지고 싶어요.”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건형(35)은 알록달록 네일아트를 한 양손을 빛내며 수줍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박건형은 지난 8월부터 시작한 뮤지컬 ‘헤드윅’에서 트랜스젠더 ‘헤드윅’ 역할을 맡았다. 그는 ‘헤드윅’을 통해 기존에 그가 브라운관에서 보여주었던 훈남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그는 실제로 “내가 ‘헤드윅’에 출연 중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쟤 박건형 아니야? 저러고 다녀?’ 라며 수군거린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는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평소에도 ‘헤드윅’처럼 생각하고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이야기했다.

뮤지컬 ‘헤드윅’은 주인공 ‘헤드윅’(개명 전 이름 ‘한셀’)이 성전환 수술에 실패해 연인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모놀로그 형식으로 담은 작품이다.

박건형은 무대 위에서 풍성한 금빛 가발을 쓰고 화려한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채 ‘헤드윅’의 아픔과 성장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리고 그 ‘헤드윅’ 속에는 박건형이 지닌 다양한 모습도 고스란히 담겼다. 능글맞거나 훈훈하거나 외롭거나.

박건형과 그가 표현하는 ‘헤드윅’이 가진 매력들을 마주했다.

▶ 1. 능글맞은 박건형

인터뷰를 하며 “기자님, 정말 예쁘네요”라는 말을 한 다섯 번 정도 들은 것 같다.

“에이, 기사 재미있게 잘 써드릴게요”라고 웃으며 넘겼지만, 내심 기분이 좋아 인터뷰 분위기가 무척 긍정적으로 흘러갔던 게 사실이다. 박건형에게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밝은 에너지, 혹은 사회생활을 할 줄 아는 능글맞음(?)이 배어있는 듯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범상치 않았다.

뮤지컬 ‘헤드윅’에 출연하며 역대 걸출한 실력의 ‘헤드윅’들과의 비교가 부담되지 않았냐는 물음에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어릴 적 예화를 들려주며 설명했다.

“학창시절 엄마가 옆집 사는 친구와 나의 성적을 비교하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 걔 이겨서 뭐해? 세상에 얼마나 공부 잘하는 애가 많은데’라고 대꾸했죠. 그러면 엄마가 ‘걔라도 이겨’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됐어. 공부 말고 내가 걔보다 잘 하는 것도 있는데. 엄마는 그게 뭔 줄 알아?’라며 엄마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어요.”

그는 ‘우위’에 관심이 없었다. ‘다름’에 집중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헤드윅’이 있잖아요. 그분들 보다 잘할까?는 신경 안 쓰여요. 큰 의미도 없고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죠.”

박건형은 최근 엄마와 나눈 대화도 공개했다. 그의 나이 올해 서른다섯. 집에서 결혼 압박이 들어올 만한 나이다. 다음은 박건형이 재연한 엄마와의 대화를 그대로 옮긴 것.
(엄마가 박건형의 집에 반찬을 가져다주며 난장판인 집을 보고)

엄마: 아휴, 집이 이게 뭐니? 옷도 여기다 막 벗어놓고…

박건형: 엄마, 여기 내 집이야. 지저분해 보일 수 있지만 이건 나의 시스템이야. 정리하지 마. 엄마가 정리하면 못 찾으니까 치우지 마.

엄마: 휴, 네가 빨리 장가를 가야지~ 엄마가 반찬이나 이런 거 안 해줘도 되고, 청소도 해서 집도 깔끔하게 살고 그러지 않겠니?

박건형: 엄마, 빨래하고 밥 차리려고 남의 귀한 여자 데려오면 좋아? 엄마는 좋겠어? 같은 여자로서?

엄마:…

박건형: 그렇게 얘기하지 마. 엄마가 자꾸 그러면 정말 사랑하는 여자라며 데려오는데 엄마보다 다섯 살 어린 여자 데려온다?
박건형은 “그 이후로는 엄마가 절대 그런 이야기를 안 꺼내신다”며 ‘하하’ 웃는다. 박건형의 능글맞은 말솜씨에는 어머니도 당해낼 수 없다.
▶ 2. 훈훈한 박건형

키 183cm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덕분에 박건형은 그간 드라마 속 훈남 이미지를 도맡아왔다.
배우 박건형. 사진ㅣ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배우 박건형. 사진ㅣ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지난 7월 종영한 MBC 드라마 ‘아이두 아이두’에서 박건형은 인기 최고의 완벽한 산부인과 의사 '조은성' 역을 맡았다. 독신주의였던 그가 김선아(황지안 역)를 만나 사랑에 빠져 이후에는 김선아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감싸주려고 한다. 외모뿐 아니라 마음까지 넓은 키다리 아저씨 같은 역할인 것.

그 전작인 JTBC 드라마 ‘신드롬’에서도 병원에서 인기 많은 까칠한 의사 강은현 역할을 맡았다. 이외에도 드라마 ‘바람의 나라’, 영화 ‘댄서의 순정’, ‘뚝방전설’ 등에서도 매력적인 남성상을 연기했다.

그렇기에 박건형의 이번 ‘헤드윅’ 출연 소식은 의외였다. 그간 쌓아온 훈남 이미지와는 다른 트랜스젠더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도 주변에서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주변 사람들이 저를 ‘상남자’라거나 ‘마초스럽다’고 표현했거든요. 그런 제가 ‘헤드윅’을 한다고 하니 처음에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다가도 이제는 정말 여성성이 보인다고 말해요. 말투나 행동도 달라지고, 수다도 많이 늘고요.”

하지만 여장을 한 자신의 모습은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는다는 솔직한 평가를 했다.

“처음 하이힐을 신고 원피스 입었을 때 끔찍했던 내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결국 3주 동안 8kg을 감량했죠. 지금도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늘 어떻게 하면 더 예뻐질까 고민해요. ‘눈화장 쉐도우 칼라를 바꿔볼까?’라며 매일 화장도 바꿔보고, 의상 선생님한테 ‘뭐야, 나 살 빠졌는데 더 타이트하게 잡아줘. 날씬해 보이고 싶어’라며 졸라대기도 하고요.”
▶ 3. 외로운 박건형

박건형의 능글맞음과 훈훈한 모습 이면에는 외로움이 깃들어 있다.

박건형은 처음 ‘헤드윅’ 대본을 읽었을 때 느낀 위로를 잊을 수가 없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제가 이 작품을 통해 큰 위로를 얻었거든요. 그 느낌을 꼭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헤드윅’의 삶이 정말 외롭고 힘들지만 그것을 그대로 다 끌어안고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로 위로를 얻었어요. ‘헤드윅’뿐 아니라 너도나도 모두가 각기 다른 소수자고, 외로운 존재거든요.”

하지만 공연은 ‘헤드윅’의 외로움만을 부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박건형은 “‘헤드윅’이 불쌍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며 “오히려 멋있다”고 눈을 빛냈다.

“‘헤드윅’은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내요. 커밍아웃을 포함해 가난, 시련 등 자신의 아픈 부분을 남들에게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헤드윅’은 자신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 중간, 베를린 장벽에 비유하죠. 정말 밑바닥 인생 같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견뎌나 가는 모습, 정말 멋있지 않나요?”

그는 스스로 자신이 출연하는 ‘헤드윅’이 ‘힐링 뮤지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다른 배우들과 달리 공연이 끝난 후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며 재연해보였다.

“이 커튼콜이 공연의 끝이 아니에요. 공연의 연장일 뿐. 당신들, 외로워 하지마! 당신들이 모두 ‘헤드윅’이니까!”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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