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만 선박 80여척 뒤엉켜 물대포 쏘며 전쟁터 방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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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박했던 센카쿠 충돌 현장
하토야마 前총리 “방중 거부”

25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의 영해(영해기선에서 12해리)에서 일어난 일본과 대만 선박의 ‘물대포 교전’은 ‘정부 순시선’ 간의 충돌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만 당국은 조기경보기와 전투기, 해군 함정까지 준비해 놓고 계획적으로 일본 측과 충돌했다.

대만 당국은 앞으로도 순시선을 매일 1척 이상 센카쿠 인근 해역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중국 정부 선박 10여 척이 센카쿠 인근 해역에 있고 200여 척의 중국 어선도 센카쿠 근해에서 조업하고 있다. 센카쿠를 둘러싼 충돌이 일어날 개연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 센카쿠 둘러싼 첫 물리적 충돌

25일 오전 9시 반 센카쿠 영해에서 선박 100여 척이 뒤엉켰다. 물대포를 기관총으로 바꾸면 영락없는 전쟁터였다.

대만 어선 40여 척이 센카쿠 영해에 들어와 센카쿠 섬으로 돌진하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30여 척은 물대포를 쏘며 막았다. 물대포는 약 20m를 날아가 어선을 강타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쏘지 않으면 물이 분산돼 큰 위력은 없었다.

대만 어선이 물대포 공격을 받자 대만 해상경비당국의 순시선 12척도 반격에 나섰다. 공격 받는 자국 어선 옆으로 가 일본 순시선에 물대포를 쏘며 맞대응했다. 대만 어선들은 ‘댜오위다오는 대만 영토다’, ‘생존 위해 어업권을 지키자’와 같은 깃발을 내걸었다. 대만 선박에는 방송 기자 60여 명도 함께 타고 있었다. 이들은 실시간으로 물대포 교전을 보도하고, 센카쿠 섬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보도했다.

대만 선박들은 11시 40분경 모두 센카쿠 영해를 빠져나왔다. 몇 척은 센카쿠 인근 해역에 남았지만 대부분은 전날 출항한 대만 이란(宜蘭) 현 쑤아오(蘇澳) 항으로 향했다.

일본 정부는 총리관저 내 위기관리센터에 관저대책실을 설치하고 대만과 중국 선박들의 동향을 파악하며 대응책을 검토했다. 센카쿠에 상륙하면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체포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해상에서의 무리한 진압은 하지 않았다.

이번 물대포 충돌은 센카쿠를 둘러싼 전선이 대만으로도 본격 확장된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한국-일본-대만으로 연결되는 미국의 대중 방어라인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센카쿠 문제에서 일본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특별한 견해가 없다고 하는 배경에는 중국뿐 아니라 대만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반면 중국은 센카쿠 문제에 중국과 대만이 공동 대처해야 한다며 양안 간 결속을 높이는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대만 타이베이 주재 일본교류협회 이마이 다다시(今井正) 이사장을 대만 외교부로 보내 센카쿠 국유화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하며 갈등 수습을 시도했다. 양국은 국교 관계가 없어 일본교류협회가 사실상 일본대사관 역할을 한다.

○ 얼어붙는 중-일 관계

일본과 대만 간 물대포 교전이 한창일 때 중국 외교부 장즈쥔(張志軍) 상무부부장과 일본 외무성 가와이 지카오(河相周夫) 사무차관은 베이징의 외교부 청사에서 만났다. 양측은 센카쿠 갈등 해법을 논의했지만 의견 차가 커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가와이 차관은 “국유화하는 것이 더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했고 장 부부장은 “국유화를 되돌리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일 관계는 더욱 냉각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달라는 중국의 초청을 거부했다고 25일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센카쿠 국유화를 둘러싸고 양국 관계의 긴장이 높은 상황에서 방중해 사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센카쿠#댜오위다오#물대포 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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