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현장에 구카이라이 DNA… 헤이우드 마약死로 위장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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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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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신화통신, 재판 전말 공개

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重慶) 시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 씨가 영국인 닐 헤이우드 씨를 살해한 것은 부동산 개발을 둘러싼 이익 갈등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 씨는 헤이우드 씨를 술에 잔뜩 취하게 만든 뒤 물을 주는 척하면서 독극물을 마시게 했으며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범행 현장을 조작하는 등 치밀한 계획 아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구 씨의 범행은 현장을 조사한 충칭 시 공안국 간부가 몰래 보관하고 있던 헤이우드 씨의 심장 혈액 샘플을 통해 확인됐다.

이 같은 내용은 9일 재판을 취재한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10일 방청기 형태로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보도하고 재판에 참여한 인물들이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증언함으로써 밝혀졌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사건 전날인 지난해 11월 12일 구 씨는 집사 격인 장샤오쥔(張曉軍) 씨를 베이징(北京)에 보내 헤이우드 씨를 충칭으로 불렀다. 이튿날 오후 9시경 헤이우드 씨는 충칭의 난산리징두자(南山麗景度假) 호텔 16동 1605호실에 들어갔다. 구 씨는 로열살루트 1병을 함께 마신 뒤 헤이우드 씨가 만취해 화장실에서 쓰러지자 방 밖에 있던 장 씨를 불러 헤이우드 씨를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한 마약 가루를 바닥에 흩쳐 놓았다. 마약 과다복용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서다.

이어 헤이우드 씨가 물을 찾자 장 씨가 구해 놓은 시안화물(청산가리)을 작은 주전자에 넣고 물을 탄 뒤 마시게 했다. 장 씨는 법정에서 “구카이라이가 헤이우드와 대화를 나누면서 입에 시안화물 용액을 흘려 넣었다”고 말했다. 구 씨는 방을 나올 때 ‘방해하지 마세요(Do Not Disturb)’라고 쓰인 등을 켜놓았으며 호텔 종업원에게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헤이우드 씨의 시신은 살해 이틀 뒤에 발견됐다. 당시 충칭 시 부시장이자 공안국장으로 보시라이 전 서기의 오른팔이었던 왕리쥔(王立軍) 씨는 궈웨이궈(郭衛國) 공안부국장에게 사건을 맡겼다. 궈 부국장은 왕펑페이(王鵬飛) 공안국 기술수사총대장 등에게 현장 조사를 지시했다. 이들은 구 씨의 혐의를 확인하고도 알코올 과다 섭취로 결론을 내리고 시신을 서둘러 화장했다. 이들도 9일 구 씨 비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2005년 영국에서 유학하던 구 씨의 아들 보과과(薄瓜瓜) 씨를 헤이우드 씨가 도우면서 구 씨와 헤이우드 씨가 알게 됐다. 하지만 살인에 이를 정도로 사이가 틀어진 것은 충칭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 때문인 것으로 검찰의 공소 내용에서 밝혀졌다고 WP가 전했다.

구 씨는 헤이우드 씨에게 충칭 시 장베이(江北) 구에서 대규모 개발투자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헤이우드 씨는 사업이 무산돼 1억3000만 파운드(약 2300억 원)의 개발수익을 얻을 수 없게 되자 구 씨 측도 책임이 있다며 수익의 10% 보상을 요구하며 사업에 관여했던 보과과 씨를 위협했다고 WP는 전했다. 다만 신화통신은 어느 지역의 개발사업 갈등인지와 액수 등은 자세히 전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보 전 서기의 부패 혐의로 연결되고 나아가 중국 지도부의 부패로 영향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 씨는 법정에서 “목숨을 걸고 그의 미친 짓을 막아야 했다”고 진술했다.

구 씨의 범행은 왕리쥔 공안국장이 올해 2월 6일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에 있는 미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하면서 불거졌다. 조사 과정에서 헤이우드 씨의 혈액 샘플에서 시안화물 성분이 검출됐고 호텔 객실에 있던 술병 마개와 찻잔 뚜껑에서 구 씨의 유전자(DNA) 성분이 발견됐다.

신화통신은 혈액 샘플 제공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왕펑페이 기술수사총대장이 보관 중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구 씨는 최후 진술에서 “지금 회상해 보면 악몽이었다. 아들이 위협을 받고 있었고, 나는 정신이 붕괴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헤이우드 씨가 살해됐을 당시 보과과 씨는 이미 영국을 떠나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어서 ‘아들에 대한 위협’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왕 국장은 청두 미 총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시도한 데 대해 반역죄 등의 혐의로 다음 주에 재판을 받는다. 왕 국장이 어떤 신변의 위협을 느껴 망명을 시도했는지, 당시 충칭 시 서기였던 보 씨가 왕 국장의 수사 내용을 얼마나 상세히 알고 있었는지가 재판에서 드러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구카이라이#보시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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