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뻔한 에로틱 소설의 성공 비결은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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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소설 ‘그레이의 오십 가지 비밀’

베스트셀러 소설 시리즈 ‘트와일라잇’의 팬픽션(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을 팬이 자신의 뜻대로 재창작한 작품)으로 시작한 소설 ‘그레이의 오십 가지 비밀’이 영국 문고판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소설로 등극했다.

2011년에 처음 출간됐던 이 소설은 올해 6월 문고판으로 재출간되며 다시금 인기몰이에 나섰다. 해리 포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리고, 저작권은 무려 37개국에 판매됐으며 전자책으로도 100만 부 이상 팔렸다. 이렇게 전 세계를 휩쓴 이 책의 장르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에로틱 소설’이다.

이야기는 대학을 갓 졸업한 아나스타샤 스틸이 억만장자인 크리스천 그레이를 만나며 시작된다. 그레이는 스틸에게 ‘삶을 내게 맡기라’는 은밀한 계약을 제의한다. 이에 응한 스틸은 그레이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점차 그가 사디즘(상대에게 성적 고통을 줌으로써 만족하는 성적 취향) 등 왜곡된 성적 취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느새 그레이와 사랑에 빠진 아나스타샤는 그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사디즘과 마조히즘(상대로부터 육체적 고통을 받음으로써 만족하는 성적 취향)을 비롯한 괴상한 성적 취향에 맞춰 나가기로 결심하는데….

선정적이고 직설적인 성적 표현으로 비판받는 이 소설이 갑자기 2012년 여름 출판계의 핵으로 떠오른 데 대해 영국 출판계는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에로틱 소설이라는 장르는 항상 존재해왔지만 이같이 단숨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며 출판계의 중심에 선 적은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평도 엇갈려 가디언지의 제니 콜건 기자는 “문학적인 에로틱 소설보다 훨씬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며 후한 평을 준 반면에 텔레그래프지는 “과장이 심하고 진부하다”며 혹평했다. 정신의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에스텔라 웰던은 “이 책의 성공은 여성들의 인권을 다시 구석기 시대로 되돌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언론과 여성학자들의 의견이 상반되는 가운데 일반인의 이 책에 대한 호응도는 한결같이 높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도서관에서는 성적인 내용을 문제 삼아 이 책을 철수시켰다가 후에 독자들의 성원에 못 이겨 재배치하는 촌극을 만들기도 했다.

진부하다면 진부할 단순한 로맨스, 혹은 영국 언론에서 농담 삼아 부르듯이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인 이 소설이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영국 출판계를 잠식한 비결은 무엇일까. 가디언지는 “이 책의 성공 비결은 중년 부인들이 가진 성에 대한 판타지를 여과 없이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대중적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이 책이 ‘에로틱 소설’의 붐을 가져다줄지 혹은 이번 한 번의 반짝 인기로 사라질지 영국 언론은 주목하고 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그레이의 오십 가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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