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터놓고 톡]<8>영리병원 도입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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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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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늘어 의료서비스 향상” vs “의료비 폭등-양극화 불보듯”

《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찬반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 설립을 허가하는 시행규칙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시행규칙 적용 대상은 경제자유구역 안에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외국인으로 한정했다. 그러나 영리병원 반대론자들은 이 조치로 결국에는 영리병원의 물꼬가 터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의사와 비영리법인만이 의료기관을 세울 수 있다. 국내 대형병원은 모두 비영리법인이다. 병원 수익금을 외부로 갖고 나갈 수 없고 외부에서 투자도 받지 못한다. 개인병원과 의원은 사실상 영리를 추구하지만 주식회사 형태는 아니다. 그러나 영리병원을 도입하는 법이 시행되면 누구나 제한 없이 ‘주식회사’로서의 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영리병원 도입을 둘러싼 찬반 의견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
■ 이래서 찬성

‘병원 간 경쟁이 일어나 고품질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다수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영리병원 찬성론자들은 국내 의료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려면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병원들의 의료 수준과 서비스가 그리 낮은 편은 아니지만 3%대의 열악한 수익률 때문에 의료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필요한 자본을 쉽게 조달할 수 있어 의료기술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영리병원 간에 수익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환자의 선택권이 늘어날 것으로 찬성론자들은 전망한다. 해외 환자 유치 실적도 껑충 뛰며 관련 일자리도 크게 늘어날 것이란 주장도 있다.

○ “의료서비스 품질 높아질 것”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병원들은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자본을 쉽게 조달할 수 있다. 병원이 더 많은 실적을 내면 그만큼 투자를 끌어들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이 영리병원의 첫째 장점으로 지목된다. 실적을 위한 병원 간의 경쟁은 치열해질 테고, 그럴수록 의료서비스 품질이 높아지며 그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것. 이왕준 관동대 의대 명지병원 이사장은 “당장은 이런 첨단 의료서비스가 고가에 제공되겠지만 경쟁이 장기화하면 서비스 가격도 점차 떨어질 것이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환자들의 의료 선택권이 보장된다는 것도 찬성론자들이 내세우는 장점 중 하나다. 병원들이 소비자를 의식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고, 소비자는 그 모든 것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서비스 가운데 상당수가 현재의 국민건강보험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다. 가령 고혈압 당뇨병 신경계질환 등 만성질환의 경우 의료와 돌봄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예방 원격진료 등의 서비스는 배제된다.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정기택 교수는 “의료와 헬스케어를 통합한 U헬스의 필요성은 크지만 현재의 건강보험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영리병원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글로벌 헬스케어의 교두보 될 것”

싱가포르 인도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많은 병원이 영리병원을 통해 연간 100만∼200만 명의 해외 환자를 유치함으로써 국부(國富)를 창출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 지난해 12만 명을 유치하는 데 그쳤다. 이를 통해 벌어들인 진료수입은 1809억 원. 싱가포르가 2009년 47만 명을 유치해 1조17억 원을 벌어들인 것에 비하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찬성론자들은 해외 환자를 더 많이 유치하고 의료 수출을 확대하려면 영리병원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정 교수는 “의료 한류를 지속시키고 의료 수출을 활성화하려면 국내 병원들과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게 필수다. 그렇게 하려면 병원이 주식회사 형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병원들의 연간 수익률은 평균 3%대다. 이 정도의 수익으로는 의료 수출에 적극 나설 수 없다는 것.

일자리 창출도 장점으로 꼽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9년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필요성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영리병원을 도입할 경우 생산유발 효과, 고용창출 효과 같은 경제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했다.

정 교수는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하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더욱 높이며 이곳에서 나온 재원으로 국민 복지 증대에도 힘쓸 수 있다”고 말했다.

○ “병원 투명성 높일 것”

현재도 의사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의원이나 병원은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병원 형태다. 김선욱 변호사는 “현재에도 비영리법인을 세워 병원 사업을 하는 재벌 병원이 있는 만큼 사실상 회사에 의한 병원 사업 진출은 이미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개인병원은 탈세나 리베이트 등에 대한 외부 감독이나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다. 김 변호사는 “개인 의료기관은 자율적 규제가 전부지만 주식회사 형태가 되면 법률적 규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게 투명성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이래서 반대


‘의료비가 폭등하고 의료 양극화가 심화하며 건강보험이 무너진다.’

영리병원 반대론자들은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보완을 하더라도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현재의 의료 시스템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62.7%인 현행 건강보험 보장률이 더욱 낮아지는 등 현행 의료체제의 불완전한 요소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리병원 운영으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요소가 나타나 의료시스템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는 점 또한 반대논리의 근간이다.

이들 대부분은 경제자유구역 또는 제주도에서 외국인이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반대한다.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한 곳을 허용하면 다른 곳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 “의료비 폭등할 것”

2007년 한국의 의료비 지출은 66조 원으로 추계됐다. 국민 1인당 126만5000원씩을 냈다. 2009년 12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국민의료비가 최대 4조3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영리병원 반대론자들은 국민의료비 증가를 우려한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영리병원의) 이윤 추구를 위한 과잉진료 경쟁이 국민의료비를 폭등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 극대화가 영리병원의 목적인 이상 환자들이 내는 진료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용덕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도 ‘영리병원 의료서비스의 상품화’에 반대한다. 박 국장은 “영리병원은 투자자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급화된 의료를 상품으로 개발한다. 이것을 국내 다른 병원들이 따라 하게 되면 우리나라 전체 의료비는 비싸진다. 미국 의료비가 비싸진 것은 영리병원의 행태를 비영리병원이 따라 한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송상호 건강보험공단 사회보험노조 정책실장은 “의료비 증가 폭은 영리병원이 얼마나 허용될지에 달렸지만, 한 곳만 허용돼도 국민의료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천 송도나 제주도내 외국 병원도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

○ “건강보험 무력화될 것”

현재 국내 의료는 건강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이 모든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체제다. 모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가입 환자를 의무적으로 진료해야 한다.

영리병원 반대론자들은 이 같은 당연지정제가 영리병원 도입 이후 유명무실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박 국장은 “영리병원 도입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민영보험 활성화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의료민영화 정책의 물꼬를 트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 사이에 계약이 성사되면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과 경쟁을 벌이게 되고, 나아가 민간의료보험이 건강보험을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09년 64.0%에서 2010년 62.7%로 떨어졌다.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보장률은 더 떨어지고 공공의료가 붕괴한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전망이다. 송 실장은 “2005년 생명보험사의 실손형 상품판매 허용으로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된 마당에 영리병원과 결합된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또 나온다면 건강보험의 미래는 더 암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의료 양극화 심화할 것”

이 교수는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상류층만 질 좋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의료 서비스가 극단적으로 양극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영리병원이 도입된 뒤에는 ‘영리병원-민간의료보험-상층 국민’의 축과 ‘건강보험 요양병원-건강보험-중산층과 서민’의 축이 따로따로 발전할 것이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지불 능력이 있는 고소득층은 민간보험에 가입해 영리병원의 호사스러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중병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영리병원의 주요 수혜자는 병원에 투자하는 ‘자본’과 대기업이란 것.

박 국장도 “의료서비스 이용이 경제적 능력에 따라 양분될 것”이라고 말한다. 박 국장은 “젊고 건강한 고소득 계층은 민간보험회사에, 늙고 병든 저소득계층은 공공보험에 의존하게 된다. 의료 이용에 따라 국민은 두 개의 층으로 갈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영리병원 도입#의료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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